그동안 한국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너무나 미약했다. 사실 한국의 기부 지수는 세계 60위 정도밖에 안 된다. 높은 경제력에 비하면 순위는 매우 낮다. 영국의 ‘자선 원조 재단’이 발표한 결과로 보면 한국의 기부 지수는 영국, 미국 같은 선진국에 못 미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보다도 크게 뒤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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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2015년 8월 17일 한 기업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공익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2,000억 원 정도의 거액이었다. 그동안 재벌 중에 사회에 끼친 잘못을 씻기 위해서 큰돈을 내놓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순수한 기부로 2,000억이라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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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뜻 깊은 결단을 내린 이가 바로 대림산업의 이준용 명예회장이다. 사람들은 그의 결단을 두고 ‘온 국민이 칭찬하는 몇 안 되는 경사’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의 씨앗’ ‘우리 사회 모든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대사건’ ‘우리 사회 지도층이 해야 하는 역할의 모범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칭찬했다. 이준용 명예회장의 뜻 깊은 기부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언제 미국의 팀 쿡이나 사우디의 알 왈리드 왕자, 빌 게이츠, 워런 버핏 같은 인물을 우리 대한민국에서 만나게 될까 고대했는데, 드디어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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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용 명예회장의 ‘아름다운 결단’은, 현재 조금씩 자리 잡아 가는 대한민국의 기부 문화를 더욱 성숙시킬 것이고, 아울러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 p.12~16
이준용 회장은 나지막하게 기사를 따라 읽고 있었다. 통일과 나눔 재단은 7월 7일 통일 나눔 펀드 출범식을 가졌다. 남북 동질성 회복, 통일 공감대 확산, 북한 어린이 지원, 이산가족 상봉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여러 단체들을 지원하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펀드를 조성한다는 취지였다. 그 펀드가 출범한 지 한 달 남짓 됐는데 참가한 사람이 5만 명이 넘는다는 기사였다.
펀드에는 매달 1만 원에서 2만 원씩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저 작은 열망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마음속에 맺혀 있었구나.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모일 곳을 기
다리고 있었구나.”
--- p.22
6?25 남침전쟁 때 전쟁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부산항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산항에 들어오자마자 피난민을 나르기 위해 흥남부두로 향했다. 1950년 12월 15일부터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배의 선장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라루였다. 라루가 흥남부두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아비규환이었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피난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리고 있었다. 중공군은 코앞까지 밀고 내려와 있었다. 국군과 연합군이 사력을 다해 막고 있기는 했지만 흥남부두까지 적군이 밀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사람들을 옮길 배편이 없었다. 만약 사람들이 흥남부두를 떠나는 배에 올라타지 못하면 그들의 생사는 보장할 수 없었다.
“제발 저 사람들을 부탁합니다. 저 사람들이 부두에 남겨지면 생사를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제발, 제발 부탁합니다. 저 사람들을 배에 태워 주세요.”
빅토리 호의 선장 라루는 고민 끝에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선원들에게 말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구출한다.”
라루는 선원들에게 배에 있는 짐을 모두 버리게 했다. 그런 다음 피난민들을 태웠다. 정원 60명을 훌쩍 넘었다.
“선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이러다가는 배가 가라앉을 수도 있어요.”
선원들이 항의했다. 그럴 만했다. 60명 정원인 배에 무려 1만 4,000명을 태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저들을 부두에 놓아두고 떠날 수 없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한다. 불평하지 마라.”
--- p.27~29
유한양행을 맡은 초대 전문경영인 이종대 회장은 “딸이고 아들이고 그 이후 회사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그게 너무 놀라웠다.”고 회고한다. 본인의 결심도 결심이지만, 자녀들이 그 결심을 두말 않고 따라 준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유일한 박사는 언제나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을 잊지 않고 살았다. 그랬기에 세금에 대해서도 남달랐다.
‘국민을 위해 쓰일 돈이다. 그러니 세금은 무조건 원칙대로 납부해야 한다.’
유 박사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그 신념대로 단 한푼의 세금도 누락시키지 않고 국가에 납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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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소탈하고 검소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회사를 운영했기에 유한양행에는 일체의 비리나 탈세가 없었던 것이다. 살아서는 민족의 독립과 나라의 번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쳤던 유일한 박사는, 작고하면서 대한민국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남기게 됐다. 이준용 회장은 유일한 박사를 생각해 보며 마지막 결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 p.177~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