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벼꽃의 미
샛강의 봄맞이
봄바람이 분다. 여의동東로 벚꽃 길을 걷는다. 줄 선 벚나무가 한껏 꽃을 피웠다. 예년보다 일찍 핀 꽃이 실바람에 한 잎 두 잎 휘날린다. 그 꽃잎을 밟을세라 조심조심 걷는다. 저만치 샛강의 갯버들이 손짓한다. 63빌딩 옆길로 내려선다. ‘섬 속의 섬’, 샛강 생태공원이다.
공원 들머리에 한강 물이 흘러든다. 아침 햇살에 금빛 물결이 찰랑거린다. 이 공원의 젖줄이다. 그 물길 따라 걷는다. 푸드덕 새 떼가 날아오른다. 갈대밭 붉은머리오목눈이들, 저희끼리 눈 맞춘다. 고개를 끄덕이며 짹짹거린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봄이 참 좋지’라며 춘기春氣를 즐기는 것 같다. 길에서 먹이 쪼던 한 쌍의 까치도 깍깍거린다. 따스한 바람을 기뻐하듯 꽁지를 흔든다. 춘기春機라서 그럴까. 서로 눈 맞춰가며 엎치락덮치락거린다.
바람이 분다. 푸릇푸릇한 갯버들 가지가 넘실댄다. 밥알만 한 잎눈들을 부풀리고 있다. 풀밭에도 여러 생명이 시나브로 제 얼굴을 드러낸다. 밑바닥을 기면서도, 어느 누가 봐주지 않아도 제 모습을 뽐낸다. 제비 올 때 핀다는 보라색 제비꽃, 좁쌀 같은 흰 꽃을 다닥다닥 피운 냉이, 거친 땅을 뚫고 둥근 얼굴을 드러낸 민들레, 피멍 같은 검붉은 속살을 가진 할미꽃, 황금 술잔 같은 모양의 복수초 그리고 갖가지 잡풀이 파릇한 새싹을 돋운다.
봄바람은 힘이 세다. 살랑살랑 불지만, 뭇 생명의 뿌리를 흔든다. 깊은 잠을 자던 식물을 일깨운다. 나뭇가지에 움을 틔우고 단단한 땅을 뚫고 싹을 돋게 한다. 나는 이 봄에 무슨 싹을 틔우고 있을까? 가린 데 없는 평평한 땅에서 많은 생명이 봄이 온다고 잎과 꽃을 피우는데, 그날이 그날 같은 나날이다. 수많은 생명이 부스럭거리는 이 봄날에 계절감을 잃고 사는 자신이 아닌가.
클로버 잎들이 살랑댄다. 진초록 풀밭이다. 샛강이 분지라서 그럴까. 풀들이 잘 자란다. 샛강 남북 양쪽이 고층 아파트에 에워싸여 바람을 막아준다. 한강 물이 끊임없이 흘러들어 뿌리를 적셔주는 자연 습지다. 이런 생태공원이 곁에 있어 가끔 여기를 들른다. 하지만 처음이다. 초목들의 파릇한 생기를 보면서 무기력한 자신을 의식하기는, 뉘우치기는.
10여 대의 자전거가 달려온다. 여의교 지하도를 지난다. 남녀 젊은이가 페달을 밟으며 봄을 길어 올린다. 내 곁을 지나가며 활기를 불어넣는다. 앞서 달리던 자전거 리더가 멈춰 서서 “이 꽃밭 좀 보십시오.”라며 사진을 찍는다.
길 양쪽이 온통 꽃이다. 왼쪽 올림픽 도로변엔 노란 개나리꽃이, 오른쪽은 조팝나무 흰 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여의교에서 800m 거리의 샛강 다리까지 꽃 무더기가 이어졌다. 고향이 어딘지 모르지만, 이 공원으로 옮겨 온 식물이 달라진 환경에 잘 적응했다. 여기가 제 터전인 양 여기며 꽃동네를 이뤘다. 오는 봄을 놓치지 않았다.
서로 어깨를 기대어 살며 다 같이 꽃을 피웠다. 늦을세라 우르르 함께 피어 더 아름다운 꽃밭이다. 아파트 한 울타리 안에 여러 세대와 더불어 사는 나는 어떤 꽃밭을 일구고 있을까. 씨앗 하나라도 뿌렸을까? 이 봄날에.
버드나무 습지대에 들어선다. 높이 자란 능수버들 줄기에 물기가 보인다. 물오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가지마다 털 벌레 같은 길쭉한 꽃들을 피웠다. 그 꽃들의 무게로 가지가 축 늘어졌다. 커튼을 드리운 것 같다. 연못엔 청둥오리들의 헤엄이 빠르다. 겨우내 움츠렸던 날개로 물장구를 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먹이 찾기에 분주하다.
생동하는 봄, 샛강의 뭇 생명이 바쁘다. 붉은머리오목눈이?까치?청둥오리들도 봄맞이에 걸음이 빠르다. 갯버들?냉이?민들레?개나리?조팝나무 등이 경쟁하듯 잎과 꽃을 피운다. 클로버?능수버들도 제 존재를 드러낸다.
따스한 바람이 분다. 버들가지를 흔든다. 그 바람을 가슴 깊숙이 들이마신다. 달다.
박석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삼청동 가로수 길을 걷다가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에 발길이 간다.
북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근정전, 조선 시대 최초의 궁궐인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다. 왕이 앞에서 조회하던 곳이라서 찾는 게 아니다. 문무백관이 품계品階에 따라 임금 앞에 늘어서 의식儀式하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정전 앞마당에 깔린 넓적한 박석을 만나고 싶어서다.
박석薄石은 제 이름처럼 얇은 돌, 화강석이다. 땅에 깔려 흙을 덮어주고 걷는 사람들의 디딤돌이 된다. 눈에 부담스럽지 않은 회색이다. 구들장 두 배 정도 크기로 12cm 두께다. 돌 단면을 그대로 살려 끼워 맞춘 바닥이다. 다른 나라의 궁궐 마당처럼 매끈한 대리석 바닥이 아닌 게 특징이다.
얼굴이 거칠었기에 정궁正宮 앞에 올 수 있었다. 우툴두툴한, 고르지 못한 얼굴이 근정전 마당에 놓이게 된 까닭이다. 지난날 가죽신을 신었던 문무백관에게 미끄러움을 방지해 주었다. 햇빛을 난반사亂反射시켜 땡볕에 서 있어도 눈이 부시지 않게 하였다.
울퉁불퉁한 표면의 높낮음이 빗물을 고이지 않게 하였으며, 돌과 돌 사이 이음매를 따라 흘러가게 하였다. 또한, 거친 돌을 디디며 늘 긴장하고 조심스러운 몸가짐과 마음을 다잡으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 뜻이 내게도 일러준다. ‘마음을 다잡으라’고.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박석도 나도 산골에서 서울로 왔다. 가림막 하나 없는 마당에서 많은 풍파를 견뎌 온 그는 1395년 근정전 창건 이래 지금의 자리를, 밑바닥을 지켰다. 임진왜란?일제강점기?광복?육이오전쟁?수복 등의 격랑을 겪으면서 일제의 군홧발에 밟히기도 하고, 전쟁의 포화에 몸이 찢기기도 하고,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살결이 벗겨지기도 하고….
바닥 돌이기에 긴 세월 동안 밟히며 살아온, 갖은 아픔을 견뎌온 박석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따뜻한 삶이었나. 그런데 불평한다. 밀리는 승하차장에서 신발이 조금만 밟혀도, 옷깃이 스쳐도 얼굴을 붉힌다. 일상에 긴장하기는커녕 퇴직 후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어영부영 산다.
빈들대는 나날이니 바닥 인생이 아닌가.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일까. 석 달이면 바뀌는 ‘디지털 시대’의 물결을 타지 못한다. 앞서 달리는 행렬을 그저 바라보며 아쉬워만 한다. 신세대와의 소통에도 한계를 느낀다. 빨라져 가는 문명의 끈을 놓고 살아서다. 왕의 근엄한 자세 앞에 수련했기 때문일까. 늘 긴장하며 제 역할의 고삐를 놓치지 않는 박석에게 배울 일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침묵할 줄 아는 삶’도 배워야 한다. 더러는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아니 들은 척’하는 게 ‘원만한 삶의 방법’이라고 한다. 하긴 말이 말을 만드는 세상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말이 많아 실언한다. 그 때문에 책상 앞에 ‘삼사일언三思一言’을 써 붙이고, ‘한마디 말을 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기’를 다짐해 오기 몇 년이었던가.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때때로 남이 하는 말에 참견하거나, 중언부언重言復言하기 일쑤다.
듬직한 박석이 부럽다. 오랜 세월 하고많은 근정전의 얘기를 듣고 살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제 얼굴을 밟아가고 있지만, 입이 없어 말을 하지 않을까.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는 묵언?言의 표상이다. 그런 박석 앞에 스스로 민망해진다.
하찮은 일에도 불평한다. 긴장의 끈을 놓고 바닥에서 산다. 말 많은 세상에 나까지 나선다. 그래선지 내 마음의 작은 마당에도 돌 몇 개 깔았으면 하고, 오늘도 박석을 밟는다.
---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