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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이화글빛문학상 수상작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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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02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128*188*20mm
ISBN13 9791158901219
ISBN10 115890121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왜, 그런 기분 안 들어요? 여기선 항상 이진법에 갇혀 있는 기분. 만들어진 답에 나를 맞추고, 몸집보다 작은 틀에 자신을 구겨 넣는.”
“거기는 다른가요?”
“…… 뭐, 다르다기보다는 다르길 바랐죠.”
--- p.57

“여주인공 말이야. 절벽까지 가서는 왜 살인마 손에 죽었을까.”
“리안이요?”
“음, 절벽이면 그냥 뛰어내리는 편이 나으려나.”
“……?”
“연우 씨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앞에는 오빠를 죽인 살인마가 있고, 뒤에는 몇백 미터 낭떠러지야. 뛰어내릴 건가, 아님 죽임을 당할 건가?”
나는 두 가지 답안 모두 못마땅했기에 머뭇거렸다. 그의 표정에서 피할 수 없다는 강압적인 사인이 읽혔다. 잠시 고민하던 내가 평소처럼 답했다.
“어차피 죽는 거라면, 둘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러고는 현실적인 고려 끝에 덧붙였다.
“이왕이면 좀 덜 고통스러운 쪽을 선택하는 게…….”
앙리는 말을 바로 끊더니 혼을 내듯 혀를 내둘렀다.
“에이, 뭘 생각해. 도망가야지, 그럴 땐.”
--- p.83-84

앙리는 잠자코 듣는가 싶더니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나는 솔직하게 말한 걸 바로 후회했다. 뱉고 보니 내 자신이 더욱 별 볼일 없게 느껴졌다. 결혼과 같은 중대사를 결정하기에는 참 맥없는 이유였다. 나의 말 속 그 어디에도 진철에 대한 사랑 같은 건 담겨 있지 않았다. 차라리 ‘오래 만난 정 때문에요’, 라거나 ‘그 사람이 날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가 나은 답이었을 것이다. 나는 탓할 거면 탓하라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앙리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은 입원한 환자보다도 창백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연우 씨,”
짧은 순간 그의 표정에 안타까움과 비애감이 스쳤다.
“살면서 그냥 견뎌지는 건, 없어요…….”
--- p.123-124

“정말, 실수였어요?”
그는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서 부탁하듯이 이야기했다.
“말해줄까요? 연우 씨는 매사에 솔직하지 않죠. 견디긴 뭘 견뎌. 그래서 지금, 본인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나? 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하고 결혼하려고 해요? 세상이 무서워서?”
“……네.”
나는 곪은 속내를 힘을 주어 터뜨려냈다.
“무서워요. 부모님, 동생, 친구, 동료들. 다 무서워. 그 사람들이, 세상이, 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겁이 나, 난.”
“그래서, 그게 본인 감정보다도 중요해? 그래?”
“…….”
“연우 씨, 그냥 견뎌지는 건 없어요. 왜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해. 그 사람들이, 당신 인생까지 대신 살아주진 않잖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앙리는 볼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의 손은 이전의 녀석처럼 차갑고, 축축했다.
“이번에는 그쪽 잘못 아니에요. 나 때문에 그래……”
“……아직, 첫사랑 못 잊었어요?”
그가 물기 어린 내 뺨을 다정하게 소매로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내 어깨 위에 걸쳤다.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겉옷이었다.
“알고 있죠? 우리 둘이 많이 닮은 거. 상처가 맞닿으면 아플 거 같단 생각 들었어. 내가 괜찮을 자신이 없어.”
--- p.203-204

병원에서는 발치를 잘 권하지 않는다. 부러 뽑아낸 이는 성날 수 있단다. 의사는 다시 묻는다. 정말 하실 겁니까. 사이에 레진을 박으셔야 해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이게 자꾸만 제 존재를 확인하려 드는데, 입에 끼인 ‘덫’처럼 거슬려서요. 의사는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미간 언저리까지 마스크를 올렸다. 마취로 인해 감각이 없음에도 눈물이 나온다. 아. 이렇게 성년이 되는가보다. 가지런하고 고른 치열을 얻은 대신, 남들이 일컫는 ‘자연스러움’을 잃었다.
--- p.230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올해 서른 살이 된 송연우는 작은 출판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어려서부터 감정을 억누르고 꾸역꾸역 ‘견뎌내는’ 것에 익숙한 그녀는 회사에서도, 연애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매사에 수동적이고 존재감 없이 살아간다. 대학에서 동아리 선배로 만나 오래 사귄 진철은 나쁘진 않지만 연우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성을 투영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다. 진철과의 결혼을 앞두고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확신이 없던 그녀에게 프랑스에서 온 작가 앙리의 신간 『이끼의 숲』 삽화를 작업할 기회가 주어지고, 연우는 진철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일을 맡기로 한다. 작업 때문에 앙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연우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가 쓴 『이끼의 숲』에는 유독 아팠던 그녀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들이 많았고, 연우는 오랫동안 봉인해두었던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자 혼란스럽다. 상대에게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내보이며 두 사람은 불가항력적으로 서로에게 끌리고, 어느 비오는 날 앙리의 작업실에서 연우는 충동적으로 그에게 입을 맞춘다. 그러나 앙리는 두 사람의 상처가 너무 닮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이후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듯 불완전했던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드디어 모든 비밀이 밝혀지게 된 순간, 연우는 공항으로 달려가는 길에 앙리가 남긴 음성메시지를 듣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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