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들은 살인사건에 관한 통계자료들을 연구하면서 살인 발생률의 차이를 사회구조적으로 설명하고, 정신과 의사들은 개별적인 살인사건들을 연구하면서 특정 증후군을 발견했지만, 진화론이든 아니든 어떤 종류의 대인갈등 이론을 가지고 살인을 분석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살인자?피해자 관계의 실제 분포를 어떤 종류의 ‘예상’ 분포와 비교해본 사람도 없었고, 가정 내 살인사건들에서 살인자와 피해자의 나이 차이에 어떤 패턴이 나타나는지 조사한 사람도 없었으며, 앞으로 이 책에 등장할 10여 가지 종류의 분석들을 수행한 연구자도 없었다. 우리는 진화심리학적 접근방식이 살인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시각과 이해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서문」중에서
우리는 인간의 동기와 자기이익 인식을 현대 진화론으로 분석할 수 있을지, 그리고 개인들의 이해관계가 어느 대목에서 왜 충돌하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심리학의 일반적인 연구방법들(설문지, 사회심리학 실험들 등)의 효용에 의문을 품었고, 심각한 갈등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다. 살인은 누가 봐도 그러한 ‘진짜’ 갈등이었고, 어떤 사건보다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살인에 관한 문헌을 읽으면서, ‘어떤 인구통계학적 인자들이 자식 살해, 부모 살해, 형제 살해의 위험과 관련이 있는가?’ 또는 ‘어떤 상황에서 남자들이 아내를 죽이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서문」중에서
시카고대학 로스쿨의 형사행정학센터 수장인 프랭클린 짐링Franklin Zimring은 최근에 한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벽 3시에 센트럴파크에 있는 사람이 자기 침실에 있는 사람보다 안전하다는 것은 범죄학의 상투어다. 이 케케묵은 농담은 방대한 연구에 기초한 사실이다. (p.910)
짐링의 연구가 말하지 않은 것은 이 ‘케케묵은 농담’이 빈도와 비율을 혼동한 명백한 헛소리라는 점이다. 새벽 3시에는 2억 명의 미국인이 자기 침실에 있고, 센트럴파크에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센트럴파크에서 100년에 단 한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쳐도, 센트럴파크보다는 침실이 훨씬 더 안전하다. --- p.43「2장 친족 살해」중에서
진화론은 친족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전자가 같지 않다는 사실은 그러한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증한다(두 생물 간에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한 클론에서 복제된,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들뿐이다). 사실 선택론적 사고의 제안은 더 날카롭고 흥미롭다. 즉, 일반적인 인간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살인에서도 주인공들의 관계가 멀어질수록 같은 종류의 갈등이라도 심각하고 위험해지는 경향이 있다. --- pp.63-64「2장 친족 살해」중에서
더 성장한 자식을 살해하는 것은 흔히 어머니의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영아기를 넘긴 자식을 죽인 어머니 95명 중 15.8퍼센트가 자살했다. 그리고 95명 중 15명이 한꺼번에 두 명 이상의 자식을 살해했고, 이들의 자살 비율은 훨씬 더 높았다(33퍼센트). 반면, 영아를 살해한 88명의 어머니 중에서는 단 두 명(2.3퍼센트)만이 자살했다(이 비율도 낮지만, 영아살해와 자살의 관계는 실제로는 더 낮을 가능성이 있는데, 영아살해는 발각되지 않은 사건이 상당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살인 범주이기 때문이다). (중략) 영아를 살해하는 사건은 젊은 어머니들의 경우에는 살고 싶지만 아기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최후의 선택인 반면, 더 성장한 아이를 죽인 어머니들은 이와는 달리 우울증을 앓은 경우가 많다. 그렇게 자살하는 여성들은 때때로 살인을 사랑의 행위로 인식했음을 나타내는 유서를 남긴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결심한 어머니는 아이가 자기처럼 비참하게 살지 않도록 구조하기로 결심한다. --- pp.127-128「4장 자식 살해」중에서
어떤 여성들은 자식을 죽이고, 어떤 여성들은 또 다른 이유로 남편을 죽인다. 하지만 가족 살해?흔히 자살로 이어지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는 독보적으로 남성의 범죄다. 우리는 이러한 가족 살해 심리를, 남성들이 여성과 그 여성의 번식 능력을 자기 것인 양 생각하는 태도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133「4장 자식 살해」중에서
부모 살해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가해자가 성인이 아니라 청소년인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중략) 자녀에게 살해당한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학대함으로써 살인을 도발한 정황을 고려하면, 청소년의 부친 살해가 모친 살해보다 훨씬 많은 것은 놀랍지 않다. 이것은 부성 불확실성을 생각해봐도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다. 궁극적인 피해자가 적대감을 드러내고 학대를 자행하는 것도, 부친을 살해하는 청소년이 더 확실한 부모인 어머니를 방어하기 위해 기꺼이 폭력에 기대는 것도 부성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이 부친보다는 모친에게 더 접근하기 쉽다는 점과, 남성이 여성보다 자기방어를 더 잘하고 더 위협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친 살해와 모친 살해의 차이는 더더욱 놀랍다. --- p.156「5장 부모 살해」중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늙어가는 부모 스스로가 동의하기 전에 성인이 된 자식이 나이 든 부모를 순부채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성인이 된 자식은 늙은 부모의 원치 않는 죽음을 재촉하거나, 부모가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게끔 조종할 것이다. 또한 살인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이때 살인자는 그 행위는 부모를 위한 안락사였다고 ?남들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주장하고, 이기심과 갈등이 살인의 주요 동기였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 p.161「5장 부모 살해」중에서
가족 내 갈등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면서 프로이트는 개념적 혼란에 빠졌다. 개인이 지니고 있는 자기이익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그는 임시변통으로 임의적인 심리적 욕구들을 상정했다. 프로이트가 파악하지 못했으며 그의 추종자들이 거의 전부가 파악하지 못한 것이 바로, 진화적 심리 기제의 궁극적인 기능이 적응도 촉진이라는 통찰이다. --- p.176「5장 부모살해」중에서
지위나 권력에 있어 개인들 간에 큰 차이가 벌어진 것은 인류의 진화사에서 최근에 나타난 현상임에 틀림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차이는 농업기술의 발달과 함께 대규모 식품 저장, 인구 밀도가 좋은 정착지, 광범위한 역할 분화가 가능해진 지역에서만 생겨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모두 지난 몇 천 년 내에 생긴 것들이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들 대부분이 살았던, 사람들이 수렵, 채집적인 생태적 지위에 머무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들에서도 지위의 차이는 어느 정도는 존재하고, 두 세명의 아내를 둘 수 있는 남성들은 공동체에서 가장 존경받는 남성들이다. 한 남성이 그런 식으로 여러 명의 아내를 차지할 때 몇 명의 다른 남성들은 짝을 찾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남성들은 가장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가장 낮은 지위를 피하기 위해서도 경쟁한다. 실제로 경쟁은 때때로 지위 위계의 밑바닥 근처에서 가장 치열한 양상을 나타낸다. 완전한 실패를 눈앞에 둔 남성은 가장 위험한 전략을 써도 잃을 게 전혀 없고, 따라서 앞뒤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14「6장 언쟁과 명예」중에서
살인의 가해자는 젊은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살인의 피해자도 그만큼은 아니라도 젊은 남성들이 많다. 남성들은 사춘기 후반에서 20대 초까지 갈등에 가장 많이 휘말리는 것 같다. 과거에는 이 연령대에 지위, 자원, 결혼할 자격을 얻기 위한 경쟁을 해야 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성선택을 경험해왔던 연령 집단과 성에서 폭력성이 가장 강력하게 선호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두 남성이 비슷하게 권리가 박탈된 상황에서는(실업자이거나, 파산했다거나, 친족으로부터 고립된 상태), 더 젊은 쪽이 아니라 더? 나이 든 쪽이 잃을 것이 적고, 따라서 무장 강도나 폭력적 대치 같은 위험한 전략들을 더 기꺼이 쓸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 p.262「8장 동성 갈등의 논리」중에서
강도살인의 피해자들 중에 여성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눈에 띄는 점이다. (중략) 남성들이 더 자주 살해되는 것은 여성들보다 더 끈질기게 저항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 피해자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은 ‘사소한 언쟁’에 의한 살인에서 나타났던 체면과 경쟁의식 같은 대결적 요소들이 강도살인에서도 적용되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즉 강도 사건의 남성 피해자들이 때때로 무모하게 저항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남성에게 지배당하고 굴욕당하는 모욕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 p.277「8장 동성 갈등의 논리」중에서
미국의 많은 배심원들이 ‘불문법the unwritten law’을 근거로, 살인을 저지른 오쟁이 진 남편들을 아예 무죄방면하자는 쪽에 투표해왔다. 부비에의 법 사전에 따르면, 이 ‘불문법’이라는 어구는 ‘아내의 정부나 딸을 유혹한 남자의 목숨을 빼앗은 남성은 형사상 죄가 없다는 가상의 법규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아내와 간통한 남성을 죽이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화’되는 곳은 조지아와 텍사스 같은 몇몇 주들뿐이지만, 다른 주들에서도 살인을 저지른 오쟁이 진 남편들은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받고 무죄방면될 게 뻔하기 때문에 바쁜 검사들은 웬만하면 그들을 기소하려 들지 않는다. --- pp.302-303「9장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중에서
로이 프랭클린 바튼(1919)은 법인류학(원시 부족의 법 생활을 연구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학문?옮긴이)의 초창기 고전에 속하는 저작에서, 필리핀의 한 원시 농경 부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몇몇 특별한 예외가 있지만, 이푸가오족에게는 전쟁에서의 학살이든, 살인이든, 처형이든 관계없이 누군가를 죽였을 때 적용되는 한 가지 일반 법칙이 있다…. 바로 한?생명은?반드시?한?생명으로 되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 p.349「10장 앙갚음과 복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