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사용하는 『패션의 얼굴』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의 책이 비 영어권 독자들에게 읽혀진다니 무척이나 기쁩니다. 뚜렷한 전통과 유산을 국제문화에 접목시키며 변화해 나가는 문화권의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 몹시도 설레는 일입니다. 한국인들은 패션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잃지 않는 타고난 스타일 감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디 저의 책이 한국인의 감성에 부합되기를 바랍니다. 저의 책은 출판업자들이 전 세계의 영어권 시장이라고 부르는 경계를 넘어선 독자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간된 바 있지만, 이들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 접하게 되는 이런 기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입니다. 곧 출판될 중국어판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독자가 생기게 될 것이며, 새로운 시각으로 이 책을 읽고 이해할 독자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패션은 유럽문명 및 서구문화와 감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복과 신체장식에 관한 모든 문화와 전통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므로, 한국어판이나 중국어판의 출간이 저에게는 더욱 감명 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비서구권의 의복 시스템이나 신체장식에는 변화하지 않거나 아주 서서히 변화하는 요소가 있겠지만, 이들마저도 특수성과 지위, 차이, 그리고 스타일의 해석에 대한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패션은 결코 서구식 현상이거나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이 책을 쓸 무렵에는 이것이 급진적인 시각으로 여겨졌습니다. 비서구권의 의복과 장식은 애초에 패션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저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증거를 찾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의복에 관한 연구나 참고문헌들은 종종 사회학적이거나 인류학적인 시각을 빌어 의복과 신체장식을 단순히 전통적이고 원시적이며 비서구적이고 정체된 문화권의 단선적 진보의 상징이나 표징으로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도전해야 했던 것은, 서구적인 것과 비서구적인 것을 접목시키고 있는 사회문화에서는 자신들이 겪어 나가고 있는 것을 표현하면서도 양립적인 가치체계와 행동코드의 균형을 잡는 수단으로서 의복과 장식을 채택한다는 명제를 증명해 줄 증거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제를 펼쳐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된 논문 중의 하나는 서(Soh)의 한국 여성 국회의원들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서는 일부 여성들이 아직도 어느 정도 전통적인 문화에 속해 있는 자신들의 입장을 나타내는 한편, 현대 정치계에서의 역할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한복을 채택하여, 전통적인 치마와 서구식 드레스 재킷을 함께 입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국회의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 동료와 유권자 모두에게 국회의원으로서의 신중한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직장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과 역할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단정하고 겸손해 보이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칙칙한 색의 옷을 입고 화장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국회의원은 남성용 정장과 타이에 구두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스스로는 이것이 정치생활에 잘 편입되도록 도와주는 관례적 의복이라고 단정짓고 있었습니다. 의복의 전략적 사용,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도구로서 복식의 언어적 기능, 특히 여성에게 용인된 행동에 관한 서구와 비서구의 가치체계를 접목시키는 수단을 탐구했다는 측면에서 서의 연구는 중요합니다.
『패션의 얼굴』 출간 이후에, 여전히 많은 논의들이 영어 저술로 한정되기는 했지만, 전체 패션영역은 지적 탐구와 논쟁의 대상으로서 개방되었습니다. 커피 테이블 위의 가벼운 읽을거리 못지 않게, 지금은 한때 피상적이며 사소한 것으로 여겨졌던 패션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버그 출판사가 '패션이론Fashion Theory'이라는 저널을 출판하는 것과, 그 저널에 대해 예상치 못했던 전 세계의 엄청난 호응은 지적 연구의 영역으로 패션의 지위가 격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패션이론은 패션에 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을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역사적, 지배적, 종속적, 대안적, 하위문화적, 위반적, 민족발생학적, 민속적, 인류학적, 유형적 시각으로부터 광범위한 주제를 연구하도록 하기 위한 장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흥분된 연구와 출판계의 움직임에 따라 의복과 신체장식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국제 학술대회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패션 연구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패션의 얼굴』이 패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통합에 부분적으로나마 기여해 왔기를, 또 앞으로도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신체장식, 외모habitus와 문화적 기술technology에 강조점을 두고서 특히 패션에 대한 문화적 연구라는 접근을 취하면서, 저는 시간과 공간과 문화를 초월한 분석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견해를 확장하기 위한 협동연구와 비교 문화적 연구를 추진하려는 독자들의 연락과 제안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