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은 자주 뜨거운 정치적 발언으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아니 오르내리는 정도가 아니다. 노골적인 언어폭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한다. 소설가로선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대성공을 거둔 이문열이 그렇게 논란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모든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로 하자. 이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10가지 답이 가능하지 않을까?
첫째,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른 애국충정이다. 둘째, 과거 독재정권에 호의적이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정당화 전략이다. 셋째, 자신을 키워준 수구신문들에 대한 보은이다. 넷째, 그런 보은과 더불어 "문학권력의 자궁은 신문이다"는 원칙에 따른 미래에 대한 투자다. 다섯째, 양반의 후예로서 소설가가 된 것에 대해 조상들께 죄스러워하는 마음 때문에 갖게 된 "어떻게 해서든 정치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강박증이다. 여섯째, 그런 강박증과 더불어 늘 대선만 가까워오면 도지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정치중독증이다. 일곱째, 최근 자신의 소설 판매의 부진에 따른 고차원적인 '판촉 전략'이다. 여덟째, 그간 느슨해진 수구 기득권 세력의 자신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아홉째, 불행했던 과거로 인해 갖게 된 세상에 대한 원망을 '성공 이데올로기'로 바꾸면서 파생된 치열한 대결 의식이다. 열째, 어떻게 해서든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켜 그 한가운데에 서야만 한다는 '대인(大人) 콤플렉스'다.
이문열이 위 10가지 가운데 도대체 어떤 이유들 때문에 '나치'니 '홍위병'이니 하는 극언들을 쏟아놓은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나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믿는다. 세상 웬만큼 산 분이라면 알겠지만, 우리가 어떤 중요한 행동을 취할 때 그 행동의 이면에 깔린 이유는 꼭 한 가지가 아니다.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표면적이거나 근본적인, 단기적이거나 장기적인, 서로 다른 여러 유형의 이유들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몹시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유'라기보다는 '책임'에 관한 것이다. 이문열은 자신의 극언이 '곡학아세'라는 비판에 대해 "정치인의 잣대로 문화인을 폄하하지 말라"고 항변한다. 우리는 이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몇 가지 전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인은 정치인에 비해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으며 정략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과연 그런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문화권력은 정치경제적 권력처럼 거대하지도 추하지도 않고 거친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정치경제적 권력에겐 혹독한 응징을 요구하면서도 문화권력에겐 매우 관대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게 언제적 이야긴가? 나는 이와 같은 '문화특권주의'가 한국 정치를 망치는 주범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정치경제적 권력에겐 '책임'이라는 게 있다. 대통령도 재벌 회장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문화권력에겐 도무지 책임이라는 게 없다. 이들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에 있어선 정치경제적 권력을 능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문열은 순수한 애국충정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을 수도 있고 다른 뜻으로 그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십수 년 전부터 그가 해온 모든 정치적 발언들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해 온 나로서는 우리 사회에 문화권력도 책임지는 풍토가 조성돼 있다면 이문열이 지금과 같은 문화권력으로 행세할 수 없었으리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 pp.185-187
어찌됐건, 김용옥이 김우중을 '성인'으로 모신 건 그의 어린아이 같은 유치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어떤 이들은 그걸 아주 사악하게 보는데, 세상에 그런 바보 같은 사악함이있을 수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한다.
어린애와 같은 김용옥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겐 무조건 감격한다. 반면 자기를 몰라주는 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간에 경멸하고 증오한다. 어린애와 같은 김용옥은 그런 사실마저 숨기지 않고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되는 양 발설한다. 김용옥은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 날 못 알아보는 자들을 경멸하는 엘리티즘이 뼛속까지 깊게 물들어져 있다. 그리고 날 알아보는 자들에게 감격하는 치정주의가 있다."
김용옥이 김우중을 우러러본 이유도 매우 단순하다. 어린애들이 맛있는 거 사주는 어른을 좋아하는 이유와 똑같다. 그 아저씨가 어떤 아저씨인지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맛있는 걸 사 주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김용옥은 김우중이 사준 '맛있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회장이 나에게 인사를 한 탣는 제스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진실한 공손이 감추어져 있었다. 나는 사실 감격했다. …… 이 세상을 사는 데 가장 신나는 일은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일이다. …… 나는 여태껏 이 사회의 이스태블리쉬먼트 지도급인사로부터 과감한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주변의 어린아이들, 나의 원광대학 학우들까지도 김용옥이라는 인물을 처음부터 깔보고 들어오려고 애를 쓴다. 그 기쓰는 모습들이 처량하다. 단지 내가 학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학생으로서의 모든 것을 강요당해야만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 비애롭다. 이런 피해 망상증에 걸려있는 나의 의식에 김우중 회장의 행위는 정말 정직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과연 그게 전부였을까? 그렇진 않다. 어린애들도 때론 매우 영악하다. 김용옥은 "고대 철학과 교수로 있을 때 대회사 회장실 다니면서 제 연구에 일 년에 천만 원만 투자하라고 구걸하러 다니면서 면박당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연구도 연구지만 그의 궁극적인 꿈은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학을 하나 만드는 거다. 나는 김용옥이 김우중에게서 그 꿈의 실현 가능성을 꿈꾸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닌게 아니라 김우중은 김용옥에게 지원을 약속했고 두 사람 사이에선 대학의이름을 두 사람의 호와 이름을 따 '도우서원'으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얘기까지 오고 갔다. 비록 실현되진 못했지만, 김용옥으로선 김우중을 '성인'으로 떠받들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 pp.120-121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권위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적잖이 있다는 걸잘 알고 있다. 이젠 그런 풍토는 끝장 내야 한다. 우리 모두 한국 지식인들의 문화특권주의 박탈하고 지식폭력 척결해 명랑사회 이룩하자.
--- p.296
"난 중, 고, 대학 시절을 상당한 열등의식 속에서 보냈습니다. 형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큰형의 애들이 5남매인데 거기서 딸 하나만 빼고 아들 넷이 전부 경기중학교를 들어갔거든요. 큰형도 경기였고, 그래서 5부자가 모두 경기 출신이예요. 그 당시는 그게 쉬운 게 아니죠. 영국의 이튼스쿨보다 더 어려운 게 경기였으니까. 집안에는 조카들의 찬란한 경기뺏지가 우르르르…… 난 그때 큰형집에서 살았는데, 나 혼자만 보성 출신에다가 서울대 뺏지를 못 달았습니다. 그러니깐 내가 이런 환경 속에선 주눅들어 살 수밖에 없었죠. 안 그렇겠습니까? 그 중에 큰 조카 한둘은 나와 나이가 비슷해서 지금도 나를 잘 이해 못해요. 저 새끼는 보성에서도 공부 못한 새낀데 지금 폼 잡어봐야 얼마나 잡겠니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걔들이 내 실체를 볼 수 없는 것은 좀 운명적일 것 같애요."
이게 한두 번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책마다 자주 출몰하는 이야기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럴까? 그는 1990년 9월에 쓴 글에서도 일본 학자들에게 김용옥을 욕하면서 김용옥의 일본 초청을 반대한 '서울대학 동양사학의 대가라는 민모 교수'를 욕하면서도 자신의 한을 토로하는 걸 빠뜨리지 않는다.
"네끼 이 녀석! 회의장에 나와 "끼웃거리는 그 놈의 민가 놈 쌍판때기에다가 검지와 중지의 기절골의 강한 압력을 세차게 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내 이미 마하트마 간디보다도 더 심오한 비폭력철학을 확립한 터인지라 허허 웃고 말았다. 국제적으로 그렇게 씹어대서라도 자기의 국제적 석학임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학인의 가련한 꼬라지가 한없이 연민스럽게만 보였다. 허긴 가까운 집안 내에서조차 케이-에스를 나왔다고 자만에 빠져 옛날 생각만 하고 있는 어린 학동에게 지금까지도 무시를 당하는 씁쓰름한 심정에 사로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닌 다음에야 내가 서울대학에게 뭘 더 바랄 게 있으랴!"(고딕체는 인용자 강조)
--- pp.19-20
"김씨는 노 대통령에게 최대의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찬사를 보낸다. 편지는 인간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얘기에서 시작된다. 김씨에 의하면 노대통령은 이미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다. 개인은 개인이되 '보편사적 개인'이다. 그런 보편사적 개인인 노씨를 철학자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용옥은 노 대통령을 '아내보다 더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역사의 대세에 휩쓸려간 카터나 레이건, 박종철과 이한열과는 달리, 노씨야말로 '새 역사의 개벽의 대운세를 결정할 수 있는 실존적 결단의 여지를 소유한', '아사달 창세기 이후 최초의 행운을 가진', '우리 조선의 자랑스러운, 위대한 대통령'이다. 또 김씨는 한국인들이 '민중혁명의 전기'를 마련한 6·29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고 불평하고 있다. 김씨는 '이 땅의 지고한 영도자 노태우'에게 자신의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직접 전달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김씨는 '노 대통령을 절대로 비판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믿어 주십시오. 이 보통사람 도올의 거짓 없는 충정을!' 하고 호소한다. 미워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비판까지 포기하겠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할까? 김씨의 '숨겨진 의도'(?)는 '민중과 학생의 욕을 얻어먹더라도 저는 당신의 아름다운 6공의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해가 가는 일을 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약속에서 쉽게 드러난다."
사실 이 글은 어떤 사람들에겐 너무도 역겨워 김용옥이라는 인간의 냄새가 나는 모든 것을 다 경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인내하면서 김용옥을 이해해 보련다. 김용옥은 혹 장난기가 발동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오히려 과잉으로 진지했던 건 아닐까? 노태우 한 사람만 마음을 바꾼다면, 그리고 내가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면? 김용옥은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스스로 몸을 부르르 떨지 않았을까? 누구나 어린 시절 그런 몽상을 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듯이 말이다. 그런데 무정한 노태우는 김용옥의 그런 전율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김용옥이 결코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다. 최종욱의 비판을 또 인용해보자.
"공개서신을 보낸 몇 달 뒤 김용옥은 느닷없이 노 대통령을 매도하기 시작한다. 만사가 이런 식이라서 김씨를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고한 노 대통령'은 이제 '노군'으로 강등된다. 또 '노는 이미 이 나라 대통령이 아니다. 노에 대한 지지도가 10% 미만이라면, 그는 완벽하게 리더십을 상실한 것이다'라고 김씨는 잘라 말한다. 그래서 노씨는 '잔여 임기만 끝나기를 국민이 열망하고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민중혁명의 전기를 마련했다던, 그래서 그의 기철학 사관에서만 그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던 6·29도 이번에는 국민을 속이고 보자는 '속이구'로 전락한다. 작명까지 동원하여, 그것도 김대중 씨와 비교하면서까지 노 대통령을 칭송하던 김씨의 태도가 왜 이처럼 180도로 달라졌을까? 짐작컨대 청와대가 '6공의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다던' 김씨의 애원을 냉정하게 외면했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주보' 김용옥을 몰라본 노 정권이야말로 분명 무능한 정권임에 틀림없다."
--- pp.122-123
"난 중, 고, 대학 시절을 상당한 열등의식 속에서 보냈습니다. 형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큰형의 애들이 5남매인데 거기서 딸 하나만 빼고 아들 넷이 전부 경기중학교를 들어갔거든요. 큰형도 경기였고, 그래서 5부자가 모두 경기 출신이예요. 그 당시는 그게 쉬운 게 아니죠. 영국의 이튼스쿨보다 더 어려운 게 경기였으니까. 집안에는 조카들의 찬란한 경기뺏지가 우르르르…… 난 그때 큰형집에서 살았는데, 나 혼자만 보성 출신에다가 서울대 뺏지를 못 달았습니다. 그러니깐 내가 이런 환경 속에선 주눅들어 살 수밖에 없었죠. 안 그렇겠습니까? 그 중에 큰 조카 한둘은 나와 나이가 비슷해서 지금도 나를 잘 이해 못해요. 저 새끼는 보성에서도 공부 못한 새낀데 지금 폼 잡어봐야 얼마나 잡겠니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걔들이 내 실체를 볼 수 없는 것은 좀 운명적일 것 같애요."
이게 한두 번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책마다 자주 출몰하는 이야기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럴까? 그는 1990년 9월에 쓴 글에서도 일본 학자들에게 김용옥을 욕하면서 김용옥의 일본 초청을 반대한 '서울대학 동양사학의 대가라는 민모 교수'를 욕하면서도 자신의 한을 토로하는 걸 빠뜨리지 않는다.
"네끼 이 녀석! 회의장에 나와 "끼웃거리는 그 놈의 민가 놈 쌍판때기에다가 검지와 중지의 기절골의 강한 압력을 세차게 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내 이미 마하트마 간디보다도 더 심오한 비폭력철학을 확립한 터인지라 허허 웃고 말았다. 국제적으로 그렇게 씹어대서라도 자기의 국제적 석학임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학인의 가련한 꼬라지가 한없이 연민스럽게만 보였다. 허긴 가까운 집안 내에서조차 케이-에스를 나왔다고 자만에 빠져 옛날 생각만 하고 있는 어린 학동에게 지금까지도 무시를 당하는 씁쓰름한 심정에 사로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닌 다음에야 내가 서울대학에게 뭘 더 바랄 게 있으랴!"(고딕체는 인용자 강조)
--- pp.19-20
"김씨는 노 대통령에게 최대의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찬사를 보낸다. 편지는 인간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얘기에서 시작된다. 김씨에 의하면 노대통령은 이미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다. 개인은 개인이되 '보편사적 개인'이다. 그런 보편사적 개인인 노씨를 철학자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용옥은 노 대통령을 '아내보다 더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역사의 대세에 휩쓸려간 카터나 레이건, 박종철과 이한열과는 달리, 노씨야말로 '새 역사의 개벽의 대운세를 결정할 수 있는 실존적 결단의 여지를 소유한', '아사달 창세기 이후 최초의 행운을 가진', '우리 조선의 자랑스러운, 위대한 대통령'이다. 또 김씨는 한국인들이 '민중혁명의 전기'를 마련한 6·29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고 불평하고 있다. 김씨는 '이 땅의 지고한 영도자 노태우'에게 자신의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직접 전달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김씨는 '노 대통령을 절대로 비판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믿어 주십시오. 이 보통사람 도올의 거짓 없는 충정을!' 하고 호소한다. 미워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비판까지 포기하겠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할까? 김씨의 '숨겨진 의도'(?)는 '민중과 학생의 욕을 얻어먹더라도 저는 당신의 아름다운 6공의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해가 가는 일을 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약속에서 쉽게 드러난다."
사실 이 글은 어떤 사람들에겐 너무도 역겨워 김용옥이라는 인간의 냄새가 나는 모든 것을 다 경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인내하면서 김용옥을 이해해 보련다. 김용옥은 혹 장난기가 발동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오히려 과잉으로 진지했던 건 아닐까? 노태우 한 사람만 마음을 바꾼다면, 그리고 내가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면? 김용옥은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스스로 몸을 부르르 떨지 않았을까? 누구나 어린 시절 그런 몽상을 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듯이 말이다. 그런데 무정한 노태우는 김용옥의 그런 전율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김용옥이 결코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다. 최종욱의 비판을 또 인용해보자.
"공개서신을 보낸 몇 달 뒤 김용옥은 느닷없이 노 대통령을 매도하기 시작한다. 만사가 이런 식이라서 김씨를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고한 노 대통령'은 이제 '노군'으로 강등된다. 또 '노는 이미 이 나라 대통령이 아니다. 노에 대한 지지도가 10% 미만이라면, 그는 완벽하게 리더십을 상실한 것이다'라고 김씨는 잘라 말한다. 그래서 노씨는 '잔여 임기만 끝나기를 국민이 열망하고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민중혁명의 전기를 마련했다던, 그래서 그의 기철학 사관에서만 그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던 6·29도 이번에는 국민을 속이고 보자는 '속이구'로 전락한다. 작명까지 동원하여, 그것도 김대중 씨와 비교하면서까지 노 대통령을 칭송하던 김씨의 태도가 왜 이처럼 180도로 달라졌을까? 짐작컨대 청와대가 '6공의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다던' 김씨의 애원을 냉정하게 외면했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주보' 김용옥을 몰라본 노 정권이야말로 분명 무능한 정권임에 틀림없다."
--- pp.12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