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심장에 스트레스나 심전도 검사만으로는 알 수 없는 다른 측면들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언급해주지 않았다. 심장에는 적대감이나 스트레스, 우울 같은 감정들에 영향 받는 정신적 측면이 있으며, 상실감에 미어지는 정서적인 측면도 있고, 고유의 신경계로 두뇌를 포함한 인체의 다른 부위들과 정보를 주고받는 지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보다 고차원적인 목적을 갈망하는 영적인 심장, 다른 존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우주적인 심장, 태아 속에서 두뇌가 형성되기도 전부터 뛰기 시작하는 원형적인 심장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008쪽)
의학적인 비상사태로 그 즉시 멈출 수밖에 없었던 폴 같은 환자에게는 때로 심장마비가 잠을 깨우는 알람소리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병으로 극심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이 의미로부터 얼마나 단절되어 있었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 (……) 폴은 이제 심장마비를 일으킨 날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여러 달이 지나면서, 충격적인 통계수치의 이면에 있는 실제의 삶들이나 에밀리와는 달리, 자신은 맞바꿀 수도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중요한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선물이란 바로 혼탁하고 기계적인 삶에서 벗어나 전화도 컴퓨터도 끄고, 다시 음악을 연주하며 평범하지만 소중한 삶을 두 팔 가득 끌어안을 수 있는 기회였다. (085-087쪽)
우리 문화는 이야기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우리 내면에는 자기 삶의 이야기들을 타인들에게 들려주고픈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깊이 듣고 반응하는 행위 속에서 무언가를 소통하고, 이런 소통은 마음과 영혼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의학적으로 이런 소통은 특히 강력한 효력을 발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정확한 병명은 이런 소통을 통해서나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혈관형성술이나 심전도검사가 가능해지기 전에 치유가들은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02쪽)
인류학자인 데이비드 메이버리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부족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제한된 세계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와 타인들과의 관계를 잘 알 수 있었지만, 현대 서구문화 속에서는 무한해 보이는 세계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끔찍한 외로움 속에서 표류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나는 루스의 심장이 그에게 전하려 했던 이야기도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즉 공동체나 친족, 자신의 영혼과 단절되면, 우리와 우리의 심장은 괴로움으로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12-113쪽)
나는 사랑이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심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확인했다. 진만큼 많이 달라진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앨리스를 입양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진은 다시 살이 빠졌으며 우울증도 완화되었다. 그녀는 어디든 그 작은 강아지와 함께 다녔다. 프로그램이 열리는 날에도 앨리스를 데려올 정도였다. 진이 운동을 하는 사이 앨리스를 개집 안에서 기다리게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진의 혈관을 촬영해보니, 진의 상태는 이제 혈관우회술을 받아도 될 정도로 호전되어 있었다. (130쪽)
불교 신자에서부터 샤먼에 이르기까지 수행자들은 인간의 가슴을 연다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심장전문의면서도 나의 가슴을 닫아두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이제 밀리를 통해서, 영성이 나의 자아보다 더 큰 힘에 대한 믿음이며, 이런 믿음은 조직화된 하나의 종교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음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젊은 시절에 저버렸던 준엄한 행동규약처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물론이고 타인들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밀리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심장을 치료하는 일을 단순한 일상이 아닌 성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165쪽)
의대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은 많이 있다. 가슴 미어지는 슬픔이 인간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그 하나이다. 그래도 사망확인서에 슬픔이 사망원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경우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실제로는 슬픔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 그 결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과 발병 사이에 아주 중요한 관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처음 24시간 이내에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위험성이 보통보다 14배나 높았으며, 다음 24시간 동안에는 8배, 그 다음 24시간 동안에는 6배가 더 높게 나타났다. 심장이 전하는 이야기들 중에서 환자의 영혼에 가장 깊이 각인되는 것은 슬픔이다. 하지만 이런 상실감은 대부분 묻혀 있다. 환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168-169쪽)
심장은 특별한 속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속성으로 인해 우리의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서 두뇌보다 우위에 놓이게 된다. 요컨대 가장 먼저 형성되어서 가장 마지막에 멈추는 것은 심장이다. 임신 6주가 되면 태아가 공깃돌만큼 자라는데, 이때 이미 심장근육이 만들어져서 최초로 맥동을 시작한다. 두뇌가 없어도 생명은 지속될 수 있지만, 심장이 멈추면 생명도 멈추어버린다.
그리고 심장의 전자기류는 그 진폭이 두뇌보다 육십 배나 높다. 또 두뇌보다 오천 배나 강한 에너지 장을 발산하기 때문에, 인체에서 3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심장의 에너지 장을 측정할 수 있다. 심장은 또 감정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화나 두려운 생각이 일면, 심박변이도의 모양이 변화하고, 두뇌와 호흡계의 작용 속도도 달라진다. (199쪽)
지금보다 젊었을 때 나는 개개인의 생명력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누군가 죽으면, 그것을 하나의 개별적인 고통으로, 괴롭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실로만 인식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부모님이 아무리 소중하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 해도,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면 그들의 흔적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사가 된 후 이런 생각도 바뀌었다. 하나의 힘이 우리 모두를 관통하고 있으며, 이 힘이 폴과 루스, 마르타, 리사, 나의 할머니 그리고 오빠를 결합시켜 하나의 피륙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이 피륙은 바로 존재 자체의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또 무한하고 다양한 이 피륙 속에 인류 공통의 심장이 살아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양로원에서 아주 오래된 심장이 박동을 멈추는 순간 어느 어머니의 자궁 깊은 곳에서 희미한 박동을 시작하는 심장이, 그럼으로써 영원히 박동을 멈추지 않는 심장이 있다는 것을. 이 심장으로 인해 우리의 위대하고 영원한 삶의 리듬은 계속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2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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