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호는 산이 흔들리도록 대성통곡을 했다. 원래 금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인간으로 탈태하기 직전이었던 흑호는 감정표현이나 기타 등등의 면에서 인간과 많이 흡사해져 있었다. 단, 인간의 나이로 환산하자면 성품만은 아직 어린아이에 가까웠다. 흑호가 호랑이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있는 동안 흑풍사자와 태을사자, 그리고 윤결언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흑호는 등방울 같은 눈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계의 존재인 셋은 그것을 보고도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이 자리에 온 것은 호군에게 괴수에 대한 것을 묻기 위해서였다.
--- p.163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흑풍과 윤걸 외에 다른 존재가 있었다.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존재는 흑풍과 윤걸을 거의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전이를 마친 태을사자는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말았다.
태을사자 앞의 허공에서 푸른 빛이 전신에 감도는 커다란 괴수 한 마리가 바람을 타고 유유히 나부끼듯 떠 있었는데, 그 괴수의 앞발에는 윤걸의 몸이 축 늘어진 채 들려 있었고 꼬리에는 흑풍사자가 목이 감긴 채 역시 송장처럼 늘어져 있었다. 둘 다 기운이 아주 쇠약하게 느껴지는 것이, 커다란 상처를 입어 금방이라도 영기가 흩어져 버릴 것 같아 보였다.
"네 이놈! 감히 마수 놈이...!"
---p.220
'그런데 괘에서 짚은 바로는 신립이란 장군이 분명 새재에서 싸울거로 나왔는데, 갑자기 그 장군이 싸움터를 옮기는 것 같수. 그래서 그곳 근처의 지신들이 모두들 놀라고 있수.' 태을사자는 크게 놀랐다. 이판관이 다른 사자들에게 하는 말을 기억해 냈던 것이다. 이판관은 신립과 왜군이 고니시가 내일 문경새재에서 싸울 것인바, 승패는 반반이니 영혼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했었다. 그런데 신립이 새재를 버리고 다른 곳에 진을 친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174
그 물건이 은동의 바로 앞에 철썩 떨어졌다. 은동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꿀꺽 삼켰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놈들이 들고 있던 코 묶음이었다. 십여 개가 넘는 코들이 칡덩굴에 꿰어져 있었다.
곁눈질하는 은동의 시야에, 오른쪽 콧날 한쪽에 작은 점이 있는 코가 보였다. 은동은 숨이 턱 막혔다. 어머니의 오른쪽 콧날에도 작은 점이 보일 듯 말 듯 은은히 박혀 있음을 기억해 냈던 것이다.
그러나 은동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어머닌 벌서 도망가셨을 거야' 은동의 두 눈에 새로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점이 박힌 코가 자꾸만 은동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은동은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
은동은 주문이라도 외우듯 계속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 p. 16
군무를 보자면 냉혹, 과감한 결단력이 요구되었다. 이순신도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순신은 항사 냉혹하리만큼 엄정하게 군기를 세워 부하들의 기강을 바로 잡았다. 그러나 그것은 전라좌수사라는 이순신이 그러한 것이요,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은 그러한 군기나 처벌을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은 숫기가 없고 말을 잘하지 못하여서 원균이 안하무인으로 날뛰는데도 보이는 데에서는 싫은 소리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군무는 군무이니, 정확하게 하지 않을수 없었고 여기에 이순신의 고통이 있었다.
--- p.115-116
『왜란종결자』에서는 우리 역사의 크나큰 비극인 임진왜란을 다루고 있는데,정사로는 풀리지 않는 수많은 미스테리들과 뒷이야기들이 환타지적 세계관 속에서 재구성되고 있다. 작게는 지나치게 신격화된 이순신의 면모를 보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재정립하고,크게는 조선왕조를 가급적 당대인의 시각으로 고찰하려고 애썼다.그리고 풀리지 않는 괴변들,주로 야사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긴 하지만,신립이 탄금대에 진을 쳐서 조선군의 대패를 자초한 미스테리,동묘의 사적을 통해 남아 있느 관우 숭배,사명당의 야서들,원균과 박홍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적인 실수 등을 풀어보았다.
물론 환타지적 수법을 도입하여 내 나름대로 역사의 앞과 뒤를 맞아 떨어지게 하였으나,이것이 사실(史實)그 자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저자 후기 중에서
『왜란종결자』에서는 우리 역사의 크나큰 비극인 임진왜란을 다루고 있는데,정사로는 풀리지 않는 수많은 미스테리들과 뒷이야기들이 환타지적 세계관 속에서 재구성되고 있다. 작게는 지나치게 신격화된 이순신의 면모를 보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재정립하고,크게는 조선왕조를 가급적 당대인의 시각으로 고찰하려고 애썼다.그리고 풀리지 않는 괴변들,주로 야사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긴 하지만,신립이 탄금대에 진을 쳐서 조선군의 대패를 자초한 미스테리,동묘의 사적을 통해 남아 있느 관우 숭배,사명당의 야서들,원균과 박홍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적인 실수 등을 풀어보았다.
물론 환타지적 수법을 도입하여 내 나름대로 역사의 앞과 뒤를 맞아 떨어지게 하였으나,이것이 사실(史實)그 자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저자 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