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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1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1

: 불국사와 석굴암부터 백제역사유적지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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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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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664g | 152*225*20mm
ISBN13 9788991945906
ISBN10 899194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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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년 궁궐이 완성된 지 하루 만인 10월 20일 태종이 궁궐로 들어가면서 10월 25일 창덕궁(昌德宮)이란 궁호를 받았다. 창덕궁의 ‘창덕(昌德)’이란 덕을 빛낸다는 뜻이며 초창기의 창덕궁은 외전(外殿) 74칸, 내전(內殿) 118칸으로 현재의 창덕궁보다 작았다. 태종이 창덕궁으로 들어가면서 한양은 명실상부한 조선의 도읍으로 자리 잡게 되고, 조선왕조는 본격적인 체제 정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최초의 양궐(兩闕)체제를 갖추게 된 셈이다. 이처럼 창덕궁의 창건 배경과 시작은 ‘태종의 왕권강화와 조선왕조의 본격적인 출발’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의 정궁은 경복궁이었지만 조선 초기부터 여러 왕이 기피해 창덕궁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복궁이 풍수지리에 좋지 않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지만 추후의 왕들이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을 선호한 것은 창덕궁 자체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 pp.20-21「제1권 : 창덕궁」중에서

종묘의 ‘종(宗)’은 마루, 근본, 으뜸을 뜻하고 ‘묘(廟)’는 신주를 모신 사당을 뜻한다. 그러므로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특별한 유교 사당으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의 하나다. 종묘를 태묘(太廟)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태조인 이성계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묘(大廟)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대묘에서는 모든 것을 삼감이 예의 중심’이라는 『논어』의 문구처럼 의례를 중시하는 유교 사회에서 제례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한편 종묘와 사직은 함께 따라다니는데 종묘는 인신(人神)을 대표하는 왕실의 선조를 제사하는 곳이고, 지신(地神)인 지기를 제사하는 사직과 함께 나라를 지켜주는 신격화된 신성한 곳이기도 하다. --- pp.92-93「제1권 : 종묘」중에서

남한산성은 청량산이 주봉이며 북쪽으로 연주봉, 동쪽으로 벌봉과 남쪽으로 몇 개의 봉우리가 연결되어 있다. 성벽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지만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균고도 350미터 내외의 넓은 구릉성 분지 위에 자리잡고 있어 방어용 산성으로 천혜의 조건을 갖고 있으므로 『여지도서』는 남한산성을 ‘천작지성(天作之城)’이라고 했다.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자연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성(城)이라는 뜻이다. 가운데는 평평하고 바깥은 험고하며 형세가 웅장해 산꼭대기에 관을 쓴 것 같은 형상이라고 했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한양 도성으로 가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주요 길목이므로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중요성을 부여받고 있었다. 남한산성의 중요성은 삼국시대에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삼국이 사력을 다해서 챙취하려던 지역이라는 데 있다. --- p.125「제1권 : 남한산성」중에서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고구려에서 내려온 온조가 한강 유역에 위례성을 쌓으며 세운 나라로 약 500년 동안 한강 유역에 도읍지를 정했다. 그런데 475년에 도읍지를 남쪽으로 옮겨야 했는데, 이는 고구려의 침략 때문이다. 백제 제21대 왕인 개로왕은 고구려에서 보낸 첩자 도림(道林)의 말에 속아 왕권을 키우고 나라의 강성함을 나타내기 위해 대규모 토목 사업을 벌여 국력을 낭비했다. 이때를 틈타 장수왕이 이끄는 3만 고구려군이 백제를 공격해 개로왕은 아차산성 전투에서 살해된다. 개로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은 문주왕은 백제의 도읍이 폐허가 되자 도읍지를 남쪽으로 옮겼는데 이곳이 웅진(공주)이다. 웅진은 북으로 차령산맥과 금강에 둘러싸여 있고, 동남쪽으로는 계룡산이 막고 있어서 고구려와 신라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요새 중의 요새였다. 이어 부여로 천도했는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이들 웅진, 부여, 익산 지역을 포괄한다. --- pp.160-161「제1권 : 백제역사유적지구」중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가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에서 주목한 것은 이곳에 이어져 내려오는 유교문화였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성공한 이유는 “유교 본산지인 중국보다 철저히 지켜온 한국 전통의 유교문화가 세계의 인정을 받은 셈”이라고 평가한다. 즉, 유교를 이념으로 한 유·무형의 문화와 한민족이 갖고 있는 전통을 고스란히 보존·계승해온 ‘살아 있는 유산’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유네스코는 등재 결의안에서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에 대해 “주거 건축물과 정자, 서원 등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와 전통적 주거문화가 조선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는 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또 문집, 예술작품, 조선 유학자들의 학술적·문화적 성과물, 세시풍속과 전통 관혼상제 등 무형유산이 잘 전승되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 pp.206-207「제1권 :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중에서

해인사에는 2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팔만대장경』으로 알려져 있는 대장경은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란 이름의 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이를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공식 명칭은 ‘고려대장경 목판을 보관한 해인사 장경판전(The Haeinsa Temple Changgyong Pango, the Depositiories for the Tripitaca Koreana Woodblocks)’이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할 수 있는 건물이 세계적인 유산으로서 가치가 부여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둘을 분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팔만대장경』은 자신을 보관해줄 장경판전이 필요하고,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이 있어야 진정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 p.271「제1권 : 해인사 장경판전」중에서

수원 화성처럼 한국의 도성으로 여러 가지 역사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는 유산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세기 말, 정조 때인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2년 10개월에 걸쳐 건설된 성곽으로 동양 성곽의 백미 또는 18세기 실학의 결정체라는 격찬을 받고 있다. 조선시대 정조대에 건설된 수원 화성은 건설부터 남다른 곡절을 갖고 태어난 산성으로 유명하지만, 한양에서 가까운데다 수원 화성의 주인공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건원릉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근에 있어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명소다. 그러나 수원 화성의 특징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되고 해석된다. 유교적 효의 관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비극적으로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원(悲願)을 풀려는 정조의 효심의 결과물로 바라본다. 정조의 개혁 이념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재위 기간에 정치판을 새로 짜기 위한 정치적·경제적·군사적인 측면이 가미된 복합적인 정치 기구의 하나로 바라본다. --- pp.304-305「제1권 : 수원 화성」중에서

세계의 고인돌 중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한국 고인돌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고창·화순·강화 지역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세계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이 유적들을 통해 한국 고인돌의 기원과 성격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고인돌의 변천사를 규명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록 기준 제Ⅲ항인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의 내용을 적용해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기원전 1000년에 된 것으로, 장례와 제례를 위한 거석문화 유산이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세계의 다른 어떤 유적보다 선사시대의 기술과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로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 유적을 인류가 보존해야 할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한 것이다. --- pp.18-19「제2권 : 강화?고창?화순 고인돌 유적」중에서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근본적인 요인은 왕릉이 단순한 왕의 주검이 묻혀 있는 무덤이 아니라 조선시대(1392~1910) 519년의 역사를 포함해 당대의 건축 양식과 미의식,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을 실사한 유네스코 심사위원은 “한 왕조가 500년 이상 지속된 것도 놀랍지만 재위한 모든 왕의 무덤이 남아 있는 경우는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고 경탄했다. 일본은 3세기 이래 7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능침이 조성되기는 했지만, 이후 왕릉은 눈에 띄게 규모가 작아지고 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왕릉 대신 석탑이 조성되었다. 베트남에는 중국 왕릉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조선 왕릉에 비하면 독자성이 떨어지며 중국 명·청 시대의 황릉(皇陵)은 자연미를 엿볼 수 없는 데다 더는 제례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살아 숨 쉬게 만든 유산은 조선 왕릉뿐이라는 설명이다. --- p.59「제2권 : 조선 왕릉」중에서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경주는 다소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95년 경주에 있는 불국사·석굴암이 제1차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에는 경주시 거의 전부가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국사와 석굴암은 세계문화유산 속의 세계문화유산이라 볼 수 있다.……경주와 같은 예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우선 1,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는 세계사 전체에서도 서양의 로마제국과 동양의 신라가 있을 뿐인데, 경주는 그 ‘천년의 왕국’신라에서 1,000년 내내 ‘서울’이었다. 로마는 특이해 1,000년을 넘긴 나라이기는 하나 동서로 분리되어 서로마는 476년에 멸망하고 동로마는 1453년에 멸망했다. 경주와 동일한 선상에서 로마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p.160-161「제2권 : 불국사와 석굴암」중에서

경주는 1,000년 고도이므로 시내에 많은 유산이 밀집되어 있는데 반월성과 안압지, 계림과 첨성대, 대릉원 등이 산책을 겸해 1,000년의 역사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덕목이다. 또한 시내 한가운데 노동동과 노서동에 적석고분들이 줄지어 있는데, 이곳에서 봉황대와 같은 거대한 고분과 일제강점기에 발굴되어 둥그런 빈자리만 남아 있는 서봉총, 금령총터가 있으며 유명한 호우총도 보인다. 더구나 황남대총, 천마총 등은 밤에도 개장해 경주의 진수를 맛보게 하는데 이들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은 물론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들만 감안한다면 경주 시내를 관통하는 형산강을 기준으로 우측만 세계문화유산으로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지정되고 좌측에 있는 많은 유산이 배제되었다. --- pp.216-217「제2권 : 경주역사유적지구」중에서

세계유산위원회는 2007년 6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31차 총회에서 한국의 첫 세계자연유산으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등재 의결했다. 세계자연유산은 한라산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등 3개소다. 이 중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과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을 포함한다. 세계자연유산 전문가 자문그룹인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제주유산지구에 대해 ‘현저한 세계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평가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 시스템으로 이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대단한 시각적 감동을 준다고 설명했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길이나 양적 규모, 복잡한 통로 구조, 동굴 내부의 용암들이 잘 보존되고 있어 2차 석회생성물로 장관을 연출하는데 이와 같은 석회장식의 풍부하고 다양한 특징은 세계용암동굴 중에서 알려진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 p.303「제2권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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