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임은 내게 맡겨진 소명”
어느 때인가부터, 우울증은 사회에서 당연한 하나의 현상처럼 여겨졌다.
“성인 8명 중 1명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우울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중 여성의 비율이 2배라고 합니다.”
언젠가 오전 뉴스에서 들었던 이런 이야기들이 요즘엔 하나도 놀랍지가 않다. 우울증에 대한 사전적 의미가 ‘고민, 무능, 비관, 염세, 따위에 사로잡혀서 명랑하지 않은 심리 상태’라고 한다. 명랑하지 않은 상태라구? 그래… 나도 인생의 어느 시점 우울증에 시달렸었던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기는 독자도 인생의 어느 순간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글쎄… 우울증의 시초는 상처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있고, 워낙에 마음이 여려서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도 있다. 시기적으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중요한 때에 받은 상처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그런 상처들이 치유되지 못해 곪고 곪아 나타나는 것이 ‘우울증’인 것이다.
누구나 삶의 뒤안길에서 상처를 한번쯤은 경험한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누군가가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는 것은 개인 내면의 성장과 안정에 있어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사람들의 부재…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이 메마르고 퍽퍽하다고 느끼게 하는 하나의 이유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조언하는 사람들은 많다. 지적하고, 고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하지만 누군가에게 존재하는 상처를 ‘토닥토닥’ 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소 여린 감성을 소유한 나에게 있어서도 삶의 고뇌나 갈등의 진행은 예외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남다른 스토리도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내상의 원인이 되었다. ‘어찌하면 좋을까?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할까?’ 이런 저런 고민에 젖어 있던 내게 문득 든 생각 ‘그래, 나라도 나를 위로해야겠다. 나를 토닥이는 거야’ 그렇게 시작된 스스로에 대한 ‘토닥토닥’의 어설픈 몸짓들… 그런데, 그 효과는 놀라울 만치 컸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불행의 아이콘’이라고 부르던 상황을 극복하고 강사, 작가, 토크닥터로 살고 있다. 스스로 다짐했던 힐링과 케어는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참 꿈 많은 아이였다. 핑크색을 좋아했고, 독서를 좋아했다. 꿈을 먹고 살던 그때, 인생도 그 꿈 같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부모님의 불화, 어머니의 가출, 암투병, 폭력… 이런 일들로 삶의 조각들은 점점 어두운 잿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불행을 몰고 다니는 아이일까?’ 그렇게 떠오른 무서운 생각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거지 같은 내 인생’은 나아질 줄을 몰랐다. 삶은 막장 중의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를 그리고 있었다.
‘죽고 싶다. 그래! 죽어야 할 것 같아….’
어려운 암 투병시절을 버텨온 나였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숨 막힐 듯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나의 삶을 그대로 방치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각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생의 마지막에 가서 어렵사리 희미하게 두 손가락으로 집어올린 가느다란 실오라기… 그건 자신에 대한 ‘토닥토닥’이었다.
“세상에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군지 아니? 넘어졌는데 아무도 일으켜줄 사람이 없는 사람이야.” 언젠가 보았던 드라마의 대사 속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난 불쌍한 사람이다.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면서 울고 있으라는 거야?” 그렇게 치밀어 오르던 감정의 분노… 그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던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잖아. 가장 소중한 내가 있잖아!’
그렇게 시작된 추스름은 결국 날 토닥여 주고, 일으켜 주고, 사랑해 주고, 격려하게 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토닥임이나 격려보다 가장 강력하고 뜨겁게 나를 일어서도록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쩜 태어나기 전부터 신이 나에게 ‘토크닥터’라는 직업을 정해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숨만 붙어 있던 나의 삶을 질기게 이어지도록, 모진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더 잘 돕도록 특별히 하나님이 하사한 ‘소명’인지도 모른다.
난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치만 스스로에 대한 내면의 ‘토닥토닥’이 나를 살아있게 해 주었던 것처럼, 작은 목소리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도 예쁘게 빛나는 ‘선물’ 같은 그 무언가가 되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특별하다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과분한 ‘소명’의 가치가 특별한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나의 속삭임을 보내 본다. 이 속삭임이 자신 안의 무언가와 싸우는 누군가에게 한 걸음을 옮기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다면, 나는 벅찬 가슴으로 행복해 할 것이다.
별이 가장 아름답게 빛날 때는 그 별이 별답게 빛날 때이다. 이제 어느 누구도 아닌 ‘나다운’ 빛을 내야 할 때이다. ‘토닥임’은 그 빛을 오래도록 간직하도록 도울 것이다.
2015. 11
김소희
---「프롤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