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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성씨의 역사

한민족 성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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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706쪽 | 210*297*80mm
ISBN13 9791195631209
ISBN10 11956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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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김태혁
사단법인 뿌리문화 이사장이다. 뿌리공원 각 문중 유래문 심사위원, 금강일보 각 문중 역사 연재 중, 대전 교통방송 김진우의 성씨이야기 방송, 전국의 지방사(地方史)연구-재야 향토사학자, 민족문제연구소 회원(현)*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회원(현), 동북공정.도서공정을 통한 중국및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발해사랑"결성 집행위원장(2004~2006), 중국의 성씨공정(姓氏工程)을 통한 주변국의 중국화(中國化)에 대응, "한국성씨연구소"를 통한 한국 발현 성씨 운동 전개 중, 한국족보박물관 모든 문중 콘텐츠 제공했다. 현재 대전 중구 뿌리공원 문중 역사 유래문 심사위원, 고려대학교 교우회 상임이사*조선왕조실록반환 추진위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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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선전씨 간송 전형필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 간송미술관

한국의 국보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중 하나인 간송미술관이 세워진 것은 1938년 간송 전형필에 의해서다. 돈을 들여 사금파리 산다고 전형필을 비웃던 당시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하는데 헌신했던 그가 찾아낸 최고의 문화유산은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그가 이 책을 찾아내 지켜낸 일화가 한민족 성씨의 역사에 수록 되어있다.
문화재 지킴이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도 정선전씨가 배출한 인물이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은 1926년 휘문고보를 거쳐 1929년 일본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오세창의 지도로 민족문화재를 수집해온 [문화재 지킴이]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한남서림을 경영하며 우리의 문화재가 일제 수탈(收奪)기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1940년에는 경영난에 빠진 보성고보를 인수하였으며 광복 후 보성중학 교장을 맡기도 했다. 그가 수집한 문화재는 성북동의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간송미술관)에 보존하였는데, 수집품 중에는 청자정병(국보65호), 청자연적(국보74호)를 일본에서 구입해 들여왔고 일본 상인이 갖고 있던 혜원(蕙園) 신윤복의 풍속화첩(국보135호)를 몇 년씩 공들인 끝에 사들였으며, 혜원의 풍속(風俗) 인물화와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도 수집했다. 또한 1942년에는 안동에서 거금 2,000원을 주고 구입한 훈민정음(訓民正音)원본을 비롯한 수많은 고서적, 석조물, 고서화 등이 있고 10여 점 이상이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1964년에 문화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간송(澗松) 전형필을 두고 당시 사람들은 금싸라기 땅을 팔아 '사기그릇'을 사는 바보로 손가락질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간송 전형필 같은 선지적(先知的) 문화독립운동가(文化獨立運動家)가 없었다면 광복이후에도 우리나라는 '문화재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간송(澗松)은 현대인들이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었다.

2) 천안 호두나무 유래
천안하면 호두과자가 생각난다.

호두 나무를 천안에 식재한 역사적 사실이 고흥류씨 문중인물임을 이책을 통해 알수있다.
고흥류씨(高興柳氏)의 역사에 기록된 인물로는 류청신의 손자 류장(柳莊)과 류탁(柳濯)·류준(柳濬)이 유명했다.
예빈윤(禮賓尹:예빈시는 고려·조선시대에 빈객의 연향과 재신의 음식공궤를 관장한 관청)을 지낸 류 천의 아들인 류 장(柳莊)은 고려 말의 어지러운 정국에서 벼슬을 버리고 부모와 함께 천안으로 내려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할아버지 류청신이 원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얻어 온 호도(胡桃)를 번식하여 최초로 전국에 장려한 장본인이다. 류 장으로 인하여 오늘날 호도는 천안의 명물이 되었다.
[호도전래사적비] 천안시 광덕산 호도나무의 유래에 따르면 1290년(고려 충렬왕 16년) 9월, 영밀공 류청신(英密公 柳淸臣)이 몽고에 갔다가 충렬왕(忠烈王)을 따라 귀국할 때 호도나무의 어린나무와 열매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어린나무는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고향집 뜨락에 심었다고 한다. 천안시 광덕면은 우리나라 호도의 고향으로 이 나무가 우리나라 최초의 호도나무라고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始栽地)로 여기고 있으며, 나무 그늘에는 류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柳淸臣 先生 胡桃 試植地)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3) 벚나무를 최초로 들여온 사람-풍산홍씨 홍양호
[18세기에 '벚나무'를 서울에 처음 심은 대학자 홍양호]

홍양호(洪良浩:1724년~1802년)는 당대의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로 ??영조실록??·??국조보감(國朝寶鑑)??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사신으로 중국에 갔을 때 중국의 석학들과 교류하고 돌아와 고증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그는 1764년(영조40)에는 일본에서 벚나무를 들여와 서울 우이동에 심어 경승지를 이루게 한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문집으로 ??이계집(耳溪集)??이 있다. 홍양호 묘(墓)는 문화재자료 제13호이며, 충남 천안시 서북구 용곡동 462-16번지에 있다.
조선후기의 문신(文臣)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1724년∼1802년)는 1747년(영조23)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752년 정시문과(庭試文科:궁궐에서 보던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의 청요직인 정5품 지평(持平)·홍문관의 수찬(修撰)·홍문관의 교리(校理:문한(文翰)의 일을 맡아보던 문관 정5품 또는 종5품) 등을 거쳤다. 뒤에 사간원의수장인 대사간(大司諫:정3품),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大司憲:종2품 검찰총장), 홍문관의 대제학(大提學:정2품 문형), 예문관의 대제학(大提學:정2품 문형) 등의 높은 벼슬에 올라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영조실록??·??국조보감??·??동문휘고?? 등을 비롯한 여러 편찬사업을 주관하기도 하였으며, 지방관의 지침서인 ??목민대방??을 지었다. 그 밖의 저서로는 ??육서경집??·??고려대사기??·??동국명장전?? 등이 있다.
2차례에 걸쳐 중국을 다녀오면서 석학들과 교류하여 이름을 날렸으며 고증학을 수용 보급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학문과 문장뿐만 아니라 글씨 또한 명필이었다는 평을 듣는데, 수원 화성의 북문 상량문(上梁文:건축공사의 시작과 끝, 참여자 이름 따위를 기록한 글)이 그가 쓴 글씨이다.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문헌(文獻)이라 하였으며, 부인인 동래 정씨와 합장하여 묻혔다. 묘비는 1832년(순조32)에 세운 것으로 아들 홍의준(洪義俊)이 짓고, 손자 홍경모(洪敬謨)가 글씨를 쓴 것이다.

4)[최고집 유래 전주최씨 만육 최양]
만육(晩六) 최양(崔瀁:시호는 충익 忠翼), 태조 이성계가 친구로 대우

만육 최양(崔瀁:1351∼1424, 자는 백함, 호는 만육(晩六))은 두문동 72현(杜門洞:두문동은 개풍의 광덕산 마을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조선에서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은거했던 72명의 고려 충신) 중 한명으로 유명하다. 만육은 외삼촌인 포은 정몽주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376년(우왕2년)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 장관)와 보문각 대제학(寶文閣: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아 대제학은 종2품)을 지냈다.
최양은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전북 진안의 팔공산에 들어가 3년을 은거했는데 그가 은거했던 입구 폭 4미터, 길이 9미터, 높이 2미터의 동굴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만육은 3년의 은거를 마치고 전주의 대승동 봉강리에 퇴거하였다. 그는 후손한테도 조선조에서의 벼슬을 하지 말라고 유언하여 문충공파(최군옥파)의 만육당 최양의 후손은 조선조에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만육 최양의 유허비는 전라북도 시도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화강암으로 된 높이 1.5m, 폭 1.0m, 두께 0.4m의 비로서 전남 장성출신인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이 비문(碑文)을 썼다.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의 한사람인 최양이 산중으로 도피하던 중 잠시 머물러 살던 곳에 그가 사망한 후에 유림들이 이 비를 세웠다. 전주최씨로 최군옥의 후손인 그는 외숙인 포은 정몽주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29세 때 대과(大科:문과)에 3번이나 장원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 장관), 보문각 대제학(보문각은 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아, 대제학(大提學)은 종2품 문형)에 올랐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에는 최양이 은거하던 동굴(돈적소)이 있다. 1392년 4월(고려 공양왕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자 그는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던 집안 내력 때문에 벼슬을 버리고 잠시 백운면 반송리에 머물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에에 들어갔다. 이곳은 최양이 은거하던 동굴(돈적소)이 있다. 만육 최양이 3년 동안 은거한 이 동굴은 1992년 전라북도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었다.
1395년 팔공산에 숨어 사는 만육에게 태조 이성계는 친구로 대우하여 숭록대부(崇祿大夫:1품 품계)와 영좌(領左)라는 두 재상 자리에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 후 1400년 충남 온양으로 행궁한 이성계가 한림(翰林) 이수지(李修之), 예조참의(參議:정3품 차관보) 조영무(趙英茂), 김약채(金若菜) 등을 차례로 세 번이나 보내 "이번에도 불응하면 직접 찾아 가겠다."는 친서를 보냈다.
만육은 할 수 없이 온양으로 발길을 옮겨 태조를 알현했다. 이때 태조는 그를 반가이 맞이하고, 많은 폐백과 완산공전(完山公田) 800결(結:약 8만석)을 녹으로 주었으나 최양은 모두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를 두고 좌·우 재상들이 "감히 태조의 명을 어겼으니 그에게 죄를 주어 마땅하다."고 했으나 태조는 오히려 그를 감싸주었다 한다.
태조 이성계와 만육당은 한 마을에 살았고 한 과장(科場)에서 과거도 보았으며 조정의 출입도 같이 했다. 서기1424년(세종6년) 만육이 부귀영화를 버리고 충절을 지키며 초야의 선비로 74세에 타계하자 이 부음을 전해들은 세종은 3일간 조회를 폐했으며 특령을 내려 만육의 자손이 등과(登科)하면 기용하고 지체 없이 군역(軍役)을 면제하라 했다. 그리고 세종은 "학문 도덕은 정이천 같고, 그의 절의 청직은 엄광과 같다."고 한 치제문(致祭文)을 도승지(都承旨:정3품 왕의 비서실장)로 하여금 쓰게 했다.

태조가 저작하고 세종이 계술한 [금감록]에는 상기 사실들을 기록하여 [전주이씨]도 최양의 정신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장서각에 비치하였으며 그 후손에게도 보냈다고 한다. 1834년(순조34) 만육 최양에게 충익공이란 시호를 내렸으며, 만육의 사우인 전주 서산서원과 충남 공주의 고암서원, 임실의 덕암서원, 진안의 영계서원에서 봉향되고 있다.

5)[여산송씨 송질 세째딸]
[문희공 홍언필 부인 '세계 유명여류 인사록'에 한국여성으론 유일하게 올라]

송질의 셋째 딸은 남양홍씨(토홍) 가문으로 시집을 가 홍씨가문 영화의 절정을 이루게 한 어머니이자 아내였다. 중종(中宗) 때 영의정에 오른 남양홍씨 문희공(文僖公) 홍언필(洪彦弼)과 그의 아들 홍섬(洪暹)의 대(代)이다. 홍섬(洪暹)은 선조 때 영의정을 세 번 역임하며 명상(名相)이자 청백리(淸白吏)의 칭송을 들었는데 부자가 정승을 지낸 드문 기록을 세웠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 여산(礪山)송(宋)씨는 중종(中宗) 때 영의정을 지낸 송질의 셋째 딸로,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모두 정승(정1품)인 '세계 사상 유일의 복 많은 여성'이다.
당시에도 왕비와 대신의 부인 등 상류사회 부인들의 사교 모임이 있었는데, 왕비는 송부인이 나타나면 꼭 일어서서 마중하며 깍듯한 존경을 표했다 한다. 그 까닭을 묻자 왕비는 자신은 남편이 임금일 뿐이지만 송부인은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모두 재상이니 어찌 내가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고 했다. 송부인은 명문의 여인답게 예의범절에 밝고 부덕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여장부였다 한다.
그녀가 처녀시절 친정아버지 송질은 극성스런 부인의 성격에 골치를 앓던 나머지 딸들도 어머니를 닮으면 큰일이다 싶어 세 딸을 불러도 놓고 한마당 연극을 했다고 한다. 딸들 앞에 약을 한 사발씩 내놓고 너희들이 어머니를 본받아 극성을 부리면 다음에 시집을 가더라도 송씨 가문에 누가 미칠 터이니 그럴 양이면 여기 이것이 독약이니 아예 마시고 죽어라고 했더니, 위로 두 언니는 절대로 어머니 같은 극성을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한 반면 유독 셋째 송부인만은 사람이 세상에 나서 자기 본마음대로 살지 못하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뭐가 다르겠냐고 선뜻 약사발을 들어 들이켰다는 것이다. 그 약은 그러나 독약이 아니라 보약이었고, 딸들의 기질을 시험하고 길을 들이려던 송질은 이 셋째 딸의 기개에 그만 미소를 짓고 말았다 한다.
유감없이 한 세상을 살 그런 기질을 타고 낳은 듯싶다. 그녀는 평생 세 번 평양(平壤)을 갔다. 처녀 때 평안(平安)감사 아버지를 따라, 결혼한 뒤 평안감사 남편을 따라, 세 번째는 늙어서 평안감사 아들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천하제일강산(天下第一江山) 평양의 경치를 구경한 것은 늙어서 아들을 따라가서였다. 처녀 때와 젊은 부인이었을 때는 몸가짐을 조심하느라 집밖을 나가지 않았던 것. 할머니가 되어 세 번째 가서야 가마를 멈추게 하고 "이제는 평양 구경을 해도 욕되지 않을 것이다."며 산천경개를 구경했다.
평안감사(監司:종2품 관찰사) 관사별당에는 그녀가 처녀 때 와서 심었던 복숭아와 앵두나무는 그때 고목이 되어 있었다. 송부인은 나무가 이렇게 늙었으니 나는 얼마나 늙었겠느냐고 인생무상을 탄식했는데 이 얘기를 전해들은 중종(中宗)은 이 당대 복덕귀(福德貴)부인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특별과거를 베풀고 글제로 ?三至柳京歎櫻桃樹老(삼지유경탄앵도수로 세번 평양에 가서 앵도나무의 늙음을 탄식하다.)?를 출제했다는 것이다. 남성 위주의 조선사회에서 여성이 존경과 대우를 받은 드문 한편의 가화(佳話)가 아닐 수 없다. 몇 해 전 미국에서 간행된 "세계 유명 여류인사록"에 한국여성으론 유일하게 올랐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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