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은 강력한 가부장 이념이 지배했던 사회에서 지난 수백 년간의 삶을 유지해왔으며, 위안부 문제와 같이 식민지 여성으로서의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근대화 과정을 거친 뒤 오늘날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사회 안에서 한국 여성들의 삶은 또 다른 방식으로 위협받고 있다. 성폭력과 성추행, 성희롱이 만연한 사회, 여성의 몸을 매우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사회 속에서 여성 인권의 문제는 예전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우리에게 던져져 있다.
--- p.33
어문학 분야에서도 국문학 분야는 유독 ‘교수-선배-후배’의 위계질서가 강한 곳이었다. 위계질서의 기준점은 ‘남성’이었고, ‘여성’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되었다. 더욱이 여성 연구자가 여성 문학 연구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소수’임을 자처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여성 연구자들의 현실적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열악한 상황이다.
--- p.55
현대사회의 문제를 젠더적 차원에서 제기하고, 이에 대한 저항과 대안의 방법론을 제출하기 위한 사회적 모색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의 가속화 속에서 물질화·동물화·기계화되어가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젠더적 관점에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사회적 의제를 제출하고 해결을 위해 연대할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 차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p.97
여성사 연구의 발전은 젠더사 연구로 이전해가야 하고, 이를 통해 여성사 연구는 역사 해석의 기존 패러다임 전체에 도전하고 재해석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작은 사람들, 낮은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의 역사를 망각하고 왜곡한 역사를 온전한 역사로 바꾸어내는 미래 비전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서 여성사 연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 짐이 무겁다. 마찬가지로 여성사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트랜스내셔널 역사 연구로 그 외연을 넓혀가야만 한다.
--- pp.143-144
21세기도 10년 넘게 지나고, 오늘날 세계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첨단 지식 산업과 영상 매체,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기존의 문자 언어 매체와는 다른 새로운 신학적 표현 방식이 요청된다는 점 역시 여성 신학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같은 생태적·지구적 위기가 상존하고 있으며, 급진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여성을 포함한 민중의 자율적·자치적·자급적 삶이 파괴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여성 신학은 현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과 삶의 다채로움을 긍정하고 축하하며 성찰하는 신학에 머무를 수 없으며, 오늘의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급진적인 성찰의 시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 p.75
남성주의의 구조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다양한 노력이 절실하다. 여성발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성평등을 구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이때에 스포츠 분야에서도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화된 정책이 추진되어 양성평등적 스포츠를 바탕으로 한 선진 체육 문화 국가로 발돋움해야 할 것이다.
--- p.200
여성은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남성과 함께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이다. 여성은 오랫동안 일터보다 집이 어울리는 존재, 독립적이기보다는 소극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 약하고 비합리적이며 스트레스에 약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런 인식은 근대사회 이후에 강화되었고, 기존의 심리학 역시 이러한 틀에서 자유롭지 않아 남성 중심적인 관점에서 정립된 것이 많다. 여성 심리학은 이러한 불합리한 시각을 수정하고, 심리학의 이론을 재정립하는 다양한 연구와 활동을 하며,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여성의 삶과 심리적 문제를 인식하고 분석하며 연구한다.
--- p.236
페미니스트 경험주의의 틀 안에서 해석되는 실증주의 연구들이 주류 학계에서 만들어낸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역할은 여성을 ‘첨가’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기 어렵다. 그리고 균열의 시작이 촉발되는 것이 여성주의/젠더 연구의 이론과 연구 결과의 성과에서부터임은 분명하다.
--- p.336
여성주의 법학의 가장 큰 특성이자 출발점은 기존의 법과 법 실무, 법학에 대한 여성들의 경험적 비판과 도전이다. 즉, 기존의 법과 법 실무·법학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주로 남성에 의해 이루어졌고 남성의 가치관과 경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남성 편향성을 지녀 법과 인권 및 사회의 주체로 여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약자 또는 열등한 자, 임신·출산·육아·무급 가사 노동을 하는 자로 정형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 소외, 편견 등의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당연시하는 사회구조를 유지시켜왔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사회정의를 위해 법과 법 실무·법학을 변화시키려 한다. 이것은 객관성·합리성·공정성·정의를 법과 법 실무·법학의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는 기존 법학에 대한 근본적이고 예리한 비판과 도전이다.
--- pp.352-353
젠더 경제학이 왜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성인지적(gender-aware) 문제에 대한 해명이 왜 어려운가와 연관되어 있다. 여성 문제를 새로운 경제학으로 해명하려는 이유는 기존 경제학이 여성의 경제행위를 설명하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존의 경제학은 성차별을 정당화시킨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즉, 기존의 경제학이 젠더를 소홀히 다루어 각 젠더의 입장, 특히 여성 젠더의 입장을 잘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차별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 젠더 경제학은 경제학을 ‘객관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일차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
--- pp.384-385
여성학/젠더를 하고 있는 ‘우리’의 위치성을 점검하는 일은 내부 비판과 자조, 자기 성찰과 반성적 차원에 머물려고 함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적확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 대안적 비전을 구상하기 위함이다. ‘학문하기,’ ‘교육하기’의 맥락과 의미가 급변하는 지금, ‘우리’의 안/밖에 내재한 무수한 경계들을 넘어 다른 ‘우리’와 접속하고, 더 나아가 경계 자체를 이동시키고 해체하는 정치학이 절실하다. ‘우리’를 다시 상상하는 작업은 여성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재고하게 하고 ‘우리’라는 집단 정체성을 재구성할 것을 요구하기에 때로는 고통스럽고 슬픈 아픔을 동반하겠지만, 결국 인식론과 정치학으로서의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집단’의 생존, 확대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p.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