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머 에릭 샤츠슈나이더(Elmer Eric Schattschneider)는 정치는 무수히 많은 잠재된 갈등 가운데 어떤 갈등이 지배적 위치에 놓이게 하느냐를 결정하는 게임이라고 하면서, 정치에서의 가장 파국적인 힘은 하나의 갈등을 전혀 다른 갈등으로 대체하면서 기존의 모든 갈등 구도를 뒤바꿔놓는 권력, 즉,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을 연결 짓는 권력이라고 봤다(Schattschneider, 2008: 115-135). 2002년에는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에 기초한 정치 갈등을 이념 등 새로운 갈등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시민적 요구가 존재했고, 또 2004년 열린우리당의 극적인 부상을 통해 기존의 갈등을 대체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그러나 노무현의 정당정치에 대한 외면, 인터넷을 통한 대중 참여에 대한 의존, 정치 개혁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 등이 모두 그러한 요구를 제도적 차원에서 확립되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됐다. 노무현 시기의 정당정치의 실패는 곧 열린우리당의 실패였고, 그것이 결국은 노무현의 정치 실험의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 p.38
노무현 정부 시절 정권이 실패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현실의 반격’을 들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 하지만 적어도 4대 개혁입법과 관련해서 볼 때는 ‘현실의 반격’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현실이라는 벽’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국보법, 언론법, 과거사법, 사학법 등 4대 개혁법안 중 어떤 것도 경제정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 …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노무현이라는 비주류 권력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철옹성 안에 주둔하면서 바깥에 있는 적들이 지치고 분열하기를 기다렸다. 그 철옹성이란 다름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60년간 지속되어온 성장과 안보에 대한 추종이었다. 4대 개혁입법의 주요 내용은 사실상 성장이나 안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주류 정권이었던 노무현 정권은 이 점을 설득해낼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 pp.51-53
노무현 정부가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면서 얻은 국내 정치적 성과는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 노무현 정부가 출범부터 동북아 중심의 외교, 그리고 과거 정권보다는 친중 외교정책을 펼쳤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러한 정책은 전통적으로 친미 외교정책을 지지했던 보수층으로부터 반감을 얻었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 문제, 용산기지 이전 문제, 그리고 한-미 FTA 추진 등의 사안들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보수층의 지지를 회귀시키는 데 다소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 pp.76-77
모름지기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이들은 효과적인 정치 참여를 위한 정보, 시간, 네트워크, 열정 등의 정치적 자원도 충분히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증대는 우리 사회 계층구조의 하층에 있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피폐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최장집, 2007: 103). 빈곤층일수록 투표율이 낮다는 사실이 증명하듯, 자신들의 삶이 피폐해지거나 나아지지 않을 때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요컨대 노무현 대통령이 취한 아메리칸 캐피털리즘 노선은 참여정부의 주요 지지세력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선호 및 이해관계와 어긋나는 것이기도 했지만, 참여 민주주의 발전의 사회적 토대 자체를 약화시켜 놓은 것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 pp.76-77
노무현 정부의 복지 개혁의 지배적인 관심은 평등과 재분배, 사회적 연대를 높이는 데 있어서, 확대된 복지 정책은 복지국가의 사회정책으로서의 면모를 띠었다. … 김대중 정부에서 이어진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빈곤층 지원을 확대했고, 사회보험 혜택을 저소득층으로 넓히고 가족을 지원하는 사회 서비스를 확충하고자 했다. 이렇게 노무현 정부의 복지정책 확대는 경제성장 지상주의가 지배하던 개발독재 시대와 대비되는 것으로서 한국이 복지국가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와 고령화의 추세에 맞서 빈곤 악화와 중산층의 삶의 질의 하락을 막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국가 구축 노력이 한계를 보인 데는 복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 없이 소극적으로 사회보험에 의존하는 재정조달 전략을 고수한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회보험 의존형 전략이라는 발전주의 유산으로 발전주의 복지제도를 극복하려 한 것에 좌절의 씨앗이 있었다.
--- pp.242-243
노무현 정부는 언론과 정부의 관계에 대해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이런 관계에 바람직한 모형과 그렇지 않은 모형이 있는 것처럼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건강한 긴장 관계’란 기술적 모형 중의 하나, 즉 ‘견제와 비판의 관계’를 나타낼 뿐이다. … 노무현 정부는 ‘건강한 긴장 관계’라는 표현적 모형을 제시하면서 사실은 ‘저널리즘 규범론’에 따라 주로 ‘언론의 사회적 책임 모형’을 지칭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언론이 자유롭게 보도하지만 보도한 내용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규범적 모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나는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고 본다. 어떤 정권이 ‘저널리즘 규범론’을 근거로 정치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심지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언론이 좋은 언론이며, 그에 따라 정부와 언론이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 언론, 시민 등 모두가 염려하고 주장을 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그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려 한다는 것은 역시 이상하다.
--- pp.397-398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과 그에 편승하여 활발해진 극우 운동은 개혁 세력의 부상에 대한 위기의식의 산물이자, 사회 변화에 무력하게 반응하는 전통적 보수 세력에 대한 도전이며, 혁신-보수의 합의에 대한 근본적 이의 제기라는 점에서 서구 사회의 뉴라이트 운동과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례의 특성을 찾는다면 서구 뉴라이트 운동이 권위주의의 이면에 반체제적·민중주의적 성격을 띠는 데 비해, 한국의 뉴라이트는 기업·부유층·거대 언론 등 사회 중심부를 옹호하면서 이들의 특수 이익을 국민적·국가적인 보편 이익으로 이론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한국에서 뉴라이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특히 노무현 정권 중반기인 2004-2005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 pp.397-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