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하게 재난사고를 당할 때마다 시민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면서 보다 더 강력한 위험통제와 규제를 요구한다. 시민은 오랫동안 국가 주도의 ‘압축적 근대화’에 의해 관료적 권위주의에 순종하는 인간으로 길들여진 탓에 통제와 규제에 저항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정부의 개입에 익숙해진 시민은 위험에 대한 자기방어에는 관심이 없다는 부조리를 드러낸다. 시민의 관점에서 볼 때 재난관리는 정부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다. 기업도 재난관리전략을 세워 위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국가의 관료제적 통제와 규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친다. 기업은 비용이 많이 드는 안전시설과 예방조처를 자발적으로 행하기보다는 벌과금을 물거나 최소한의 조처로 제한한다. 그리고 언론은 사고가 터져야 비로소 위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책임 없는 방관자가 되어 정부, 기업, 시민 등 타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에 상응해서 뉴스보도는 대형재난사고의 원인에 대한 심층분석보다는 끔직한 악몽을 되새기는 선정적인 형태로 훨씬 더 많이 제공된다. 결과적으로 위험 소통의 활성화가 불안과 두려움을 일상으로 더 많이 확산시킨다. …… 거대도시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안한 일이다. 구조화된 위험의 산정이 시민을 불안케 하고, 안전을 약속하는 재난관리는 일상에 대한 통제가 되어 오히려 불안을 강화시킨다. ---pp.6~7
어느 누구도 재난가능성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을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위험이 모든 사람을 불안케 하는 것은 아니며, 불안해하더라도 동일한 정도로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어떤 위험은 그 발생가능성이 낮은데도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제시된 가능성보다 훨씬 더 큰 공포를 느끼는 반면, 어떤 위험은 그 발생가능성이 높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기도 한다. ---p.7
위험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최근의 사례로는 2009년 3월 멕시코와 미국에서 시작되어 9개월간 세계로 확산된 신종인플루엔자 AH1N1)의 세계적인 공포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그해 4월 24일 ‘국제적으로 우려되는 공중보건상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불과 6주 만인 6월 11일 남·북미에서 유럽, 아시아, 호주로의 급속한 확산으로 74개국에서 3만여 명의 확진환자가 보고되자 국제전염병 위기경보의 최고위 수준인 ‘대유행pandemic)’을 선포했다. …… 그러나 수백만 명에 달할 것이라던 신종플루의 사망자는 12월 말에도 1만 2,220명에 불과했다. 이것은 계절 독감의 사망자가 매년 50만 명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그 40분의 1도 안 되는 치사율이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의 ‘대유행’ 선포와 관련해 ‘금세기 최대의 스캔들’, 의료전문가들의 과장된 공포심 조장, 제약회사의 음모설 등이 거론되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은 이미 확보된 백신의 처분과 주문 취소 등 잘못된 결정을 되돌리는 일로 법석을 떨었고, 유럽연합 산하 유럽회의는 비상회의를 소집해 “누가 어떤 근거로 대유행 선포 결정을 내렸는지”를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pp.8~9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은 사회를 인간이 아니라 소통으로 이루어진 체계로 규정하고 소통의 자기생산, 즉 재귀성을 기능적으로 분화된 현대사회의 작동과정으로 보는 사회학이론의 급진화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있다. 이 소통의 자기생산에 근거하는 세계는 ‘차이의 동일성unity)’이라는 역설모순)의 전개과정으로서 서양의 주체·객체의 구별보다는 동양의 음양론의 구별에 가깝다. 루만의 자기생산적 사회체계이론은 고도로 복합성이 높아진 현대사회에 상응하게 복합적인 이론구조를 갖고 있어서, 우리 학계의 주류를 이루는 미국 사회학의 단순화에 익숙한 독자들은 처음 접했을 때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곧 체화된 동양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위험 소통은 고도의 불확실성에 처한 사회가 스스로를 주제화하는 재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회진단 사례로서, 우리 학계가 서구의 이성 중심의 인식 틀을 벗어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여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pp.11~12
루만은 현대사회가 위험사회인 것은 손실, 고통, 파괴, 재난의 빈번한 발생 때문이 아니라 위험과 위해에 대한 소통이 갖는 사회적 역동성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즉, 현대사회가 위험사회인 것은 손실, 재난의 양적 증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결정’이나 ‘잘못된 중단’에 연계된 손실, 재난에 대한 소통에 있다는 것이다. ---pp.12~13
불확실성의 부담을 지는 결정에서 항상 철두철미하게 합리적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결정에 수반되는 합리적 계산은 사회적 손실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결정이 후회스럽더라도 ‘바로 지금’ 올바로 결정한다는 확신을 갖고자 하는 데 있다. 정책결정자는 정책자문위원회, 정부출원 전문연구소 등 전문기구의 참여를 근거로 하여 비개연적인 결과가 등장하더라도 사회의 비난과 질책에 대해 ‘옳은’ 결정, 이른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방어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다른 결정은 다른 미래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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