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머니 곁에서 자라고, 까까중머리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쁜 짓도 많이 하고, 대학에 들어가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연애도 걸고, 군대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 낳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아아, 내 어머니는 내게 보이지 않는 곳에 단정히 무릎꿇고 앉아서 촛불을 밝히고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성호를 긋고 30년을 계속해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를 외우고 계셨다. 내가 내 크는 재미와 내 사는 분주 속에 미친 말처럼 달리고 있을 때에도 내 어머니는 헛간에 촛불을 밝히고30여년을 하루처럼 죽은 아버지 생각하고, 예수님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계셨다.
--- pp. 38~39
그리운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를 생각해도 별로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이제는 어머니를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거나 절실한 슬픔이 밀려오지 않습니다. 세상살이에 바빠서 어머니의 추억을 드문드문 잊어버린 탓은 아니에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더러는 버리고 더러는 잊어버린 탓도 아니에요. 어머니를 이별하였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원할 때 어머니를 언제나 만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에요. 어머니는 죽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았고 하나의 붙박이별이 되어 항성(恒星)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머니.
지상의 나그네 되어 머물러 있었을 때의 그 애틋함 그대로 언제나 나를 보호하여주세요. 당신은 내가 이 지상에서 만났던 단 하나의 소중한 분입니다.
……
어머니.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내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고 이 지상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운 말 한마디가 '엄마'이었듯 어머니가 가르친 말, 어머니가 가르친 노래는 내 가슴에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 책날개에서
그렇게 얻어먹은 고기가 살이 되어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어머니. 날마다 새로 해오는 따뜻한 도시락으로 건강하게 자란 내가 있습니다, 어머니. 4.19 때는 길이 막혀 친구네 집에서 소식도 없이 이틀이나 머물고 있자 어머니는 내가 죽었다고 통곡하고 울면서 적십자병원 시체실을 샅샅이 뒤져보셨다지요, 어머니. 과부로 사시던 30년 동안 참 어머니의 말대로 사람들에게 업신여김도 많이 당하셨지요. 어쩌다가 어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싸울 때면 나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던 그 말이 참 싫었어요.
"이것들이 날 과부라고 업신여기고."
--- p. 201
(익어라, 익어라, 빨리빨리 익어라. 밀가루 반죽 익어라. 빨리 빨리 익어라.)
어머니는 들기름이 알맞게 먹어 들면 밀전병 사이로 숟갈을 찔러 넣어 단숨에 밀전병을 뒤집어놓는다. 그 솜씨가 마술 같아 접시를 돌리는 곡마단의 곡예사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한 장의 밀전병이 완성되면 어머니는 내가 미리 들고 있던 냄비 뚜껑 위에 철썩 밀전병을 올려놓는데, 아이구 그 맛있는 밀전병이란. 뜨거워 손이 데이고 뜨거워 입이 데이고 뜨거워 혀가 데여도 그 맛있는 밀전병이란.
"맛있냐?"
어머니는 한 개 뚝딱 해지워 먹어버리고 또 한 개 익기를 기다리는 내 얼굴을 보고 그렇게 붇곤 하셨다.
"맛있다."
"정말 맛있냐?"
"정말 맛있다."
"그것 참. 그냥 아무것도 안 넣은 밀가루 반죽에 들기름으로 구운 밀전병이 그리도 맛있냐?"
"이 다음에 니가 커서 장가를 들게 되면, 니 색시 보구 밀가루 반죽 속에 신김치두 넣구, 호박도 넣구, 부추도 넣구 해서 많이 많이 해달래라. 그래서 많이많이 처먹어라."
--- p. 227
"울 엄마는요, 강릉 외갓집에 가셨어요."
"울 엄마는요, 넘어져서 허리를 삐셔서 꼼짝도 못 하셔요."
"울 엄마는요, 몸살이 걸리셔서 몸져누우셨어요."
어쩌다가 학기 초 같은 때에 학부형들에게 교육에 관해서 상담하려 하니 학교에 와달라는 내용의 가정 통신문을 선생님이 나눠주어도 나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전달하지 않고 슬쩍 찢어버리거나 휴지통에 꾸겨 넣어버리거나 하였다.
--- p. 117
(익어라, 익어라, 빨리빨리 익어라. 밀가루 반죽 익어라. 빨리 빨리 익어라.)
어머니는 들기름이 알맞게 먹어 들면 밀전병 사이로 숟갈을 찔러 넣어 단숨에 밀전병을 뒤집어놓는다. 그 솜씨가 마술 같아 접시를 돌리는 곡마단의 곡예사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한 장의 밀전병이 완성되면 어머니는 내가 미리 들고 있던 냄비 뚜껑 위에 철썩 밀전병을 올려놓는데, 아이구 그 맛있는 밀전병이란. 뜨거워 손이 데이고 뜨거워 입이 데이고 뜨거워 혀가 데여도 그 맛있는 밀전병이란.
"맛있냐?"
어머니는 한 개 뚝딱 해지워 먹어버리고 또 한 개 익기를 기다리는 내 얼굴을 보고 그렇게 붇곤 하셨다.
"맛있다."
"정말 맛있냐?"
"정말 맛있다."
"그것 참. 그냥 아무것도 안 넣은 밀가루 반죽에 들기름으로 구운 밀전병이 그리도 맛있냐?"
"이 다음에 니가 커서 장가를 들게 되면, 니 색시 보구 밀가루 반죽 속에 신김치두 넣구, 호박도 넣구, 부추도 넣구 해서 많이 많이 해달래라. 그래서 많이많이 처먹어라."
--- p. 227
"울 엄마는요, 강릉 외갓집에 가셨어요."
"울 엄마는요, 넘어져서 허리를 삐셔서 꼼짝도 못 하셔요."
"울 엄마는요, 몸살이 걸리셔서 몸져누우셨어요."
어쩌다가 학기 초 같은 때에 학부형들에게 교육에 관해서 상담하려 하니 학교에 와달라는 내용의 가정 통신문을 선생님이 나눠주어도 나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전달하지 않고 슬쩍 찢어버리거나 휴지통에 꾸겨 넣어버리거나 하였다.
--- p.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