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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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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소설 top100 2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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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25쪽 | 438g | 135*195*30mm
ISBN13 9788932917368
ISBN10 8932917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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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저는 박사님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라는 위임을 받고 왔습니다. 박사님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제안이지요.」
「제안이라…….」 내가 아무 억양 없이 반복한다.
「네. 설화나 연극, 책, 영화, 혹은 여러 관용적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악마는 대개 불쌍한 영혼을 쫓아다닙니다. 이번에는 지옥의 제왕께서 야코비 박사님의 불쌍한 영혼을 원하십니다.」
--- p.32

「내 영혼을 백만 유로에 쳐주겠다고요?」
「예, 안 될 이유가 있나요?」
「너무 터무니없지 않습니까?」
「뭐가 터무니없죠?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겁니다. 우리는 당신의 영혼을 취하고, 당신은 그 대가로 한밑천 잡는다면 공정하지 않은가요?」
「보아하니 나 말고 다른 경쟁자는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을 시장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그런 측면에서 가격이 터무니없다는 겁니다.」
--- p.34

「이 돈은 어디서 났죠?」 내가 묻는다.
「염려 마세요. 깨끗한 돈이니까.」
「깨끗한 돈이라면 더더욱 출처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겠군요.」
「야코비 박사님, 어제도 말했듯이 지옥엔 재물이 무한정으로 널려 있어요.」
「돈이 많아서 좋겠습니다, 아우어바흐 씨. 그래도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작은 문제가…….」
「그냥 토니라고 불러 주세요.」
--- p.72~73

「왜 악마가 나같이 한심한 심리학자의 영혼이나 뒤쫓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니까요. 사탄이라면 당연히 좀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연옥의 불을 때거나, 불판 위에다 사람들을 올려놓고 굽거나, 혹은 악령의 군대를 지휘하는 일 따위 말입니다.」
아우어바흐가 히죽 웃는다. 「야콥, 그건 옛날 일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의 일이죠. 악마도 시대와 함께 변해 가요. 물론 이교도 탄압이 한창이던 그 시절이 호시절이었음은 나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당신한테도 나와 내 부하들이 중세 때 사람들을 어떻게 놀래 주고, 어떻게 겁을 줬는지 맛보기라도 잠시 보여 주고 싶었던 거고요.」
「할로윈 분장으로?」
「말에서 조롱기가 약간 느껴지네요?」
--- p.94

「자신이 진짜 악마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먼저 악마로 변장해야 하는 악마라면, 내 생각에 심각한 정체성 문제를 안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것도 기형적으로 웃자란 정체성 위기죠.」
아우어바흐가 웃는다. 그러나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한 웃음이다. 「내가 왜 정체성 위기를 겪어야 하죠?」
「거야 모르죠. 다만 직업 변경이나, 종교관 또는 세계관의 급격한 변화가 가장 흔한 고전적 원인이죠.」
「지금 농담하는 겁니까? 나는 악마요. 내 직업을 바꿀 수도 없고, 종교관이나 세계관을 바꿀 이유도 없단 말입니다!」
--- p.98~99

「그렇다면 잘됐군. 내가 정말 당신의 영혼을 노리는지, 아니면 당신의 심리적 도움이 필요해서 이러는 것인지 간단히 알아내는 방법이 있으니까. 내 계약서에 서명해 봐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인생에서 사라질지, 아니면 내가 당신의 관심을 끌려고 추가로 정신적 문제를 지어낼지 바로 드러나지 않겠어요?」
「안타깝지만 그게 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답한다. 「당신은 계약 체결 후에도 나한테서 도망칠 수 있습니다. 나한테 서명을 받음으로써 당신의 망상이 사실이라고 믿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럴 경우 나는 오히려 당신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꼴이 됩니다.」
아우어바흐는 당혹스러워한다. 「잠깐. 듣자 하니 당신은 어떤 경우든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토니, 나는 당신한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게 바로 미쳤다는 뜻은 아닙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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