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스 카스토르프다. 언제나 그랬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아니면 고교 1학년 때인지도 모른다. 그때, 고전을 읽어 보겠다고,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펼쳤는데, 그 장대한 소설의 주인공이 한스 카스토르프였다. 그 무렵의 내 나이는 한스 카스토르프보다 한참이나 어렸다. 그래서 어린 소년은 한스 카스토르프의 여정과 고뇌를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광막하게 펼쳐져 있으나 숨 막힐 듯이 꽉 막혀 있는, 그 소설의 서두에서 ‘거칠고 험준한 바윗길을 따라 높은 알프스 고산 지역 깊숙이’ 들어간다. 읽으려고 했는지, 아니면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습관처럼 가방에 넣어둔 것인지 책을 꺼내고는 알프스의 높은 고독 속으로 올라간다. ‘힘겹게 올라가는 기관차가 뿜어내는 석탄 매연이 기차 안으로 날아 들어와 책 표지는 그을음으로 더러워져’ 버리는데, 그리하여 고개를 들어 장엄한 풍경을 보며 한스 카스토르프는 생각에 잠긴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토마스 만은,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근심과 희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즉 일상생활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일이며 무엇보다 새로운 공간의 힘에 의해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그에 따르면 공간은 망각의 힘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시간이 그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만 공간 또한 ‘인간을 여러 관계로부터 해방시켜 주며, 인간을 자유로운 원래 그대로의 상태로 옮겨 놓으면서 그러한 망각의 힘’을 발휘한다.
어렸을 때, 그 소설을 읽으면서, 아마도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망각의 힘을 느껴보고 싶었다. 나고 자란 곳이 경북의 소백산 오지였기에 기차를 자주 탈 수 있었고 그래서 기차를 탈 때마다 그런 느낌을 삶의 원초적인 경험으로 느꼈지만, 멀미나는 청소년기를 거친 이후에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필사적으로 그러한 망각의 힘 앞에 사로잡히고 싶었다. 생계를 위해서나 다른 일로 인하여 서울이라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야할 때면, 나는 미세한 긴장과 흥분을 느끼곤 했고, 그래서 조금 일찍 출발하여 일부러 늦게 귀경하곤 했다.
서른이 넘어 글을 쓰거나 그와 관련되어 취재를 하거나 강의를 하면서 살게 된 이후로 낯선 공간으로 헤매는 일이 더 많아졌고 그게 또 일이 되어 일종의 여행기를 연재하는 일도 하였는데, 어느덧 한스 카스토르프보다 훨씬 더 세월을 겪은 나이가 되었음에도 터미널이나 기차역으로 가다보면 나는 ‘일상적인 질서, 그리고 미지의 세계, 이 두 세계 사이를 떠돌면서’ 미묘한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한스 카스토르프는 알프스의 아득한 곳으로 올라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황량해졌다’고 생각하다가 그만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고는 손으로 눈을 가린다. 그런 순간적인 아찔함을, 나 역시, 서산의 천수만과 순천의 와온 해변과 목포의 밤거리와 철암의 기찻길과 묵호의 국도변에서 자주 느꼈다. 낯선 곳에서 느꼈던 ‘흥분되고 알 수 없는 불안감’ 그것의 기록이 이 책이다.
여행이 일상이 되고 국내는 물론 해외 곳곳으로 분주히 여행을 다니는 세태라서 수많은 종류의 여행서들이 알찬 내용과 산뜻한 형식으로 즐비한 가운데, 이 책 한 권을 더한다.
요즘의 흔한 표현대로 한다면, 이 책은 ‘인문여행서’다. 트렌드에 맞췄다기보다는 내가 성년이 되어 혼자 자립하고 또 자급하며 살아온 뒤로 줄곧 해온 일이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이었으니 이를 요즘의 말로 하여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굳이 마다할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책은 어느 면으로 보나 여행서이니 둘을 합하여 ‘인문여행서’라고 한다면, 쑥스럽기는 해도, 영 어긋난 표현은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면구한 구석 또한 없지 않는데, 그럼에도 한마디 보탠다면, 이 책은, 어떤 이유로든 혼자서 떠나는 사람에게 적절한 도움이 될 것이다. 여행 그 자체로 떠날 수도 있고, 어떤 일로 떠나기는 하였으되 어쩌다보니 시간이 남아서 낯선 도시나 소읍을 배회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가족과 함께 모처럼 나선 여행이라고 해도 깊은 밤에 산책을 하거나 뭐라도 사기 위하여 여행지의 번잡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길을 잠시라도 걸을 때 그때 누구나 혼자가 된다. 바로 그 순간, 혼자서 운전을 하고, 낯선 길을 헤매기도 하고, 기이한 풍경에 사로잡혀 머뭇거리기도 하고, 잠시 국도변에 멈춰 서서 질주하는 차량의 후미등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어쩌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황량해지면서 가벼운 현기증이나 흥분,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공간이라는 망각의 힘 앞에 노출된 한스 카스토르프다. 그런 순간의 그런 흥분과 불안감에 사로잡힌 독자들을 위하여 이 책을 썼다. 삶이 그렇듯, 결국 여행은 혼자서 떠나는 것이다.
돌아다닌 공간들이 적지 않으나 한 권의 책으로 간추리다보니 기억 속에 다만 저장하고 만 곳이 많다. 아쉽다. 돌아다닌 시간들에 비하여 하루하루의 다급한 일에 밀리고 게으름 탓에 또 밀려서 뒤늦게야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다. 아쉽다.
월간 「신동아」의 송홍근 기자님이 아니었더라면 그 공간의 목록이 절반쯤 줄었을 것이고 그 시간의 부피도 무척이나 얇았을 것이다. 차분하면서도 무거운 힘이 실린 목소리로 어수선한 과정을 단단하게 챙겨준 신아름 편집자님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의 많은 글들은 어쩌면 시간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2015년 11월
정윤수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