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백 년이라! 생각을 해 봐요! 단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그때 다시 살아나서 독서실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그보다 내가, 지금, 바로 이 순간, 그 미래로, 그 독서실로, 오늘 오후 한 번만이라도 투사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몸과 영혼을 모두 악마에게 팔겠어요!” 하지만 이 순간 바로 옆 테이블에서 돌연 시끄럽게 의자를 끽끽거리는 소리가 나서 그는 말을 멈추었다. 우리 옆자리 손님이 반쯤 일어서 있었다. 그는 실례를 구하면서도 공격적으로 우리 쪽으로 바짝 몸을 들이대고 있었다. (…) “영국인은 아니지만,” 하고 그가 설명했다. “저는 제가 사는 런던을 꽤 잘 압니다, 솜즈 씨. 선생님의 이름과 명성은 ? 비어봄 선생님도 물론이고요 ? 익히 들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컨대 ‘대체 당신은 누구냐?’ 이거죠?” 그는 어깨 너머로 휙 눈길을 돌렸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나는 악마입니다.” ---「에노크 솜즈」 중에서
저는 브랙스턴을 쳐다보았고, 브랙스턴은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브랙스턴은 몸을 반쯤 세운 채, 한쪽 팔꿈치를 베개에 기대고, 턱을 가슴에 꾹 누르고서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검은 눈썹 아래 두 눈은 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 금세 사라지는 착시 현상이 아닌, 지속적인 존재였습니다. 거기 브랙스턴이 와 있었던 겁니다. 그와 제가 밝고 고요한 방 안에 함께 있었습니다. (…) 브랙스턴은 저처럼 꼼짝 않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잠옷 아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으로 보아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불현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가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서서히 한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곤 턱을 쓰다듬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고 저를 쳐다보면서, 입이 서서히 움직이더니 씩 웃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웃어 보이는 표정은 찡그린 표정보다 더 으스스하고, 더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