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EC가 성공을 거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브뤼셀은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게 전혀 없다.
어느 날 밤이건 전세계 여느 나라의 월요일 밤과 비슷하다. 모두 자기가 맡은 일에 열심이다. 와플을 만들고 조개를 한 솥 삶고, 3톤쯤 되는 감자튀김을 만들고 치즈를 1만 리터쯤 끓인다. 또는 늘 하던대로 유럽을 경영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내가 호텔에서 책을 읽으며 저녁 시간을 보낸 도시도 이곳 밖에 없다. 1840년에서 1914년 사이에 나온 벨기에 우표에 관한 산문집이었는데, 나는 그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것이다. 만일 온갖 정신 사나운 일로 가득한 파리에 위원회 본부를 두었더라면, 유럽 공동체는 오늘날 혼란의 구렁텅이로 변하지 않았을까? 베니스, 심지어 마드리드 같은 도시에 본부를 두었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브뤼셀이 이처럼 성공적인 도시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판단이 서질 않는다. 언젠가 어떤 사람 - 그는 로비스트가 아니었다 - 에게서 그 이유를 들은 적이 있다. 벨기에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의 도덕적 용기, 이탈리아 사람의 호전적인 기질, 영국인의 근면성, 독일인의 유머 감각을 함께 지니고 있다. 또한 활력과 성실성, 단호한 성공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것들이 성공 요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나로선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브뤼셀은 동유럽에서 볼 수 있는 일정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급하게 달리는 것을 저지하는 도로 위의 자갈, 칙칙한 건물들, 기차, 철도역,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사베나(Sabena) 샌드위치. 그외에도 유니폼, '모든 호화 티셔츠 완비'라고 써붙이고 우쭐대는, 오스탕드에서 출발하는 페리 호. 확실히 브뤼셀의 '도시 생활'은 초콜릿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잘 거른 묽은 커피를 곁들여서 콜레스테롤이 듬뿍 든 크림 케이크를 게걸스레 먹는 일에 전념하는 삶이다. 그런데 왜 저들은 따스한 실내에서 있는 케이크를 사고자 추운 도로 위에서 저렇게 길게 줄을 서는 걸까?
어느 벨기에 대사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우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일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요. 일터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일합니다. 그리고 일터를 나서면 깨끗이 잊어버리지요. 독일인이나 네덜란드 사람하고는 전혀 달라요. 적어도 우리는 일을 하며 삽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정신 나간 자들이에요."
그는 난감하다는 듯이 손을 들어 가로저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걸핏하면 거리로 달려나가서 고함치고 소리칩니다.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반응해요. 정신 나간 자들이지요. 벨기에 사람들도 주택세가 1프랑이라도 상승할 경우엔 미쳐 날뛰겠지만, 그러나 정치에 대해선 달라요. 애당초 정치엔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성공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이 아닐까 한다. 사업과 무역과 정치와 성공에 대해서, 사실상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 pp 24~26
프랑크푸르트의 독일 은행에서 일하는 어느 영국 교포는 독일인들이 파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본능적으로 그들은 기계가 인간보다 힘이 세다고 믿지요."
영국인은 기계가 인간의 하인이라고 믿는 반면에, 독일인은 인간이 기계의 하인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가 덧붙였다.
"폴크스바겐 엔진이 자동차 뒤쪽에 있는 이유를 잊어선 안됩니다. 자동차 사고가 날 경우에, 탑승자가 아니라 엔진을 보호하기 위해서지요."
내가 보기에 독일 아우토반에 속도 제한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독일인은 균형 또는 평정심을 중시한다. 일요일에 잔디를 깎는 것을 법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독일밖에 없을 것이다. 오후 10시 이후에 샤워하는 것, 오후 8시 이후에 유리잔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위법이다. 뮌헨의 경우엔 일요일에 진공 청소기로 카펫을 청소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어떤 지역에선 아침 8시 전과 오후 7시 이후에 개가 짖는 것을 금한다. 영국에서는 자기 차보다 느리게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에게 '거친 제스처'를 취하는 게 다반사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독일의 아우토반에선 다른 차를 추월하며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독일이 능률이 뛰어난 나라가 된 주된 이유는, 이곳 국민들이 전체적인 체계를 중시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기질은 애당초 타고난 것처럼 여겨진다. 베세르베시에 사는 어느 독일인 은행가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기적의 해'인 198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 날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 수많은 동독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들이 전세계로부터 고립되기 전에 빌린 책을 서베를린 도서관에 반납한 일이었다. 내가 아는 어느 동독인은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반납했는데, 반납 기일이 30년 가까이 지난 것이었다. 반납 기일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세 가지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도서관 측에서 그에게 5천 독일 마르크가 넘을 게 확실한 벌금을 물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벌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반납자 스스로 벌금 내기를 원하거나 면제해 줄 것을 청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보다 독일인다운 행동인지는 나로선 제대로 판단이 서질 않는다.
영국인들은 마술을 부리듯이 서류가방과 여행가방과 신문을 한꺼번에 몰아서 들고 기차에 오른다. 이런 광경을 볼 때면, 운 나쁜 날 엄지손가락을 다친 마법사를 보는 것처럼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주부들이 도심지의 프렝탕 백화점이나 카르푸 백화점에서 쇼핑백마다 수북하게 물건을 채워넣는 광경을 보라. 자크 타티(Jacques Tati ; 희극적인 팬터마임을 통해 인간의 성격을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프랑스의 영화배우이자 감독)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실업가와 주부들은 마음속 깊이 논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한 발짝, 한 꾸러미씩 논리적으로 따져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속성과 규칙성이 존재한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이런 접근법이 사무실과 공장으로 옮겨가면서, 독일을 막강한 가정으로 만든 것이다. 파일을 분실하는 독일인 비서, 스스로 언제까지 제품을 완성하겠노라고 말해 놓곤 그때까지 그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독일인 생산 기술자는 상상하기 어렵다.
--- pp 78~80
...여행기 작가들은 한 나를 방문하기 전에 그 나라 언어를 미리 공부하고, 여러 달 동안 그 나라에 관한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는다면서 우쭐댄다. 또한 그 나라에 도착하면 가장 가까운 야영지부터 찾는다고 한다.그곳에서 그 나라의 진실을 보게 되리라고 믿는 까닭이다.
사업 여행자들은 전혀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이들은 맨땅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곧바로 날아가 맨땅에 부딪혀서, 그 나라 역사와 문화의 일원이 된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그 나라의 관습을 흡수하여 몸에 익힌다. 그래야만 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폭동과 야간 통행금지, 쿠데타 기도, 본사에서의 인사이동 조치 따위를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세상엔 사업 여행이 여행광들을 위한 절호의 공짜 여행 기회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나는 이 책에서 공항과 기차역에서 허비하는 오랜 시간에 관하여,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따분한 회의에 관해 들려주고자 한다. 또한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내는 택시를 타고 지루한 호텔에서 불결한 레스토랑으로 가는 따분한 이동중에, 이따금 차창을 통해 접하게 되는 그 나라의 인상에 대해서 들려주고자 한다. 아시아 대초원에서 말을 모는 일, 일륜차로 사하라를 횡단하는 일은 근육이 떡 벌어지게 만들지는 몰라도 마음은 좁아지게 만든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여행자는 사업 여행자밖에 없다.
--- p. 머리말 중에서
...여행기 작가들은 한 나를 방문하기 전에 그 나라 언어를 미리 공부하고, 여러 달 동안 그 나라에 관한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는다면서 우쭐댄다. 또한 그 나라에 도착하면 가장 가까운 야영지부터 찾는다고 한다.그곳에서 그 나라의 진실을 보게 되리라고 믿는 까닭이다.
사업 여행자들은 전혀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이들은 맨땅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곧바로 날아가 맨땅에 부딪혀서, 그 나라 역사와 문화의 일원이 된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그 나라의 관습을 흡수하여 몸에 익힌다. 그래야만 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폭동과 야간 통행금지, 쿠데타 기도, 본사에서의 인사이동 조치 따위를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세상엔 사업 여행이 여행광들을 위한 절호의 공짜 여행 기회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나는 이 책에서 공항과 기차역에서 허비하는 오랜 시간에 관하여,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따분한 회의에 관해 들려주고자 한다. 또한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내는 택시를 타고 지루한 호텔에서 불결한 레스토랑으로 가는 따분한 이동중에, 이따금 차창을 통해 접하게 되는 그 나라의 인상에 대해서 들려주고자 한다. 아시아 대초원에서 말을 모는 일, 일륜차로 사하라를 횡단하는 일은 근육이 떡 벌어지게 만들지는 몰라도 마음은 좁아지게 만든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여행자는 사업 여행자밖에 없다.
--- p.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