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목에서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실패’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의미다. 사람마다 또는 사안에 따라 실패라고 규정하는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 모든 실패를 살아있는 죽은 자로 만드는 악마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실패를 논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개념, 성격, 유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실패의 사전적 정의는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이라 되어 있다. 실패는 본질적으로 특정 목적이나 목표를 미리 정한 상태에서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목표 대비 성과 평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그 과정에 숱한 실수, 차질, 시행착오 등의 시련을 경험하는 게 일반적이다. 전투에서 여러 번 패하고도 전쟁의 최종결과는 얼마든지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논리와 같다. 따라서 진정한 실패란 실수, 차질, 시행착오, 시련 등의 ‘과정적 실패’가 아니라, 모든 결과가 일단락되는 ‘최종적 실패’를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실패의 주체는 곧 사람이다. 국가운영, 기업경영, 정책운영 등의 실패 원인은 결국 사람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제도, 규칙, 자원, 조직, 인력 등은 궁극적으로 조직책임자의 의도와 역량에 의해 본연의 기능이 발휘되고 소기의 성과를 낳기 때문이다.
한편 실패의 개념을 ‘목적지향성’ 기준으로 따져보면, 실패의 형태와 내용은 다양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실패의 형태는 ‘미션실패’, ‘목표실패’, ‘가치실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미션실패는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를 말한다. 예컨대 기업 CEO나 대통령의 직무가 해당된다. 목표실패는 성취하고자 마음먹었던 일을 아예 시도하지 못했거나, 실행에는 옮겼으나 당초 목표와 어긋난 결과를 말한다. 여기에는 부자, 결혼, 창업, 신규사업, 취업, 진학, 승진, 학위 등 수많은 삶의 과제들이 해당된다. 가치실패는 인생을 영위함에 있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삶의 원천’이 내실(內實)이 없거나 비루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념구현, 행복, 인간관계, 가정화목 등을 들 수 있다. --- p.8
그렇다면 실패유발 행태는 어떻게 해서 생성되는 것인가. 이는 유전자, 교육, 환경, 경험 그리고 밈(Meme: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문화유전자)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진다. 따라서 실패유발 행태를 구성하는 인자는 수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실패유발 행태 역시 다양한 종류로 나타난다. 결국 전체 실패유발 행태는 성격이 다른 각각의 ‘단위행태’가 모아져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단위행태를 이른바 ‘실패 DNA(총체적 속성을 이르는 별칭)’라 부른다. 실패 DNA가 중요한 것은 실패의 씨앗을 잉태하는 온실이자 자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실패 DNA가 하나도 없을 수도, 여러 개를 보유할 수도 있다. 만약 여러 개의 실패 DNA가 내재되어 있을 경우에는, 추진하는 과업 내지 목표의 성격과 난이도, 환경조건, 경쟁관계 등과의 상호 연관성에 따라 실패를 유발시키는데 각기 차별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 p.11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들이 절정에 지위에 있을 때, 큰 실패를 맛보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잘나가는 영웅들이 어느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실패 DNA다. 통상 1단계 성공을 거두기까지 즉 이른바 영웅이라 비로소 인정받는 그 자리에 이르는 동안은,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의 위력이 실패 DNA의 힘보다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이 가져다 준 부, 권력, 명예의 달콤한 맛에 넋을 잃는 순간, 그때부터 ‘2가지 기본현상’이 실패 DNA를 싹 틔우고 요동치게 한다.
하나는 4가지 마음의 창(조하리의 창: Window of Johari) 중 ‘눈먼 자아(Blind Self)’가 발동해 교만을 부리는 것이다. 눈먼 자아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만 정작 자기자신은 보지 못하는 자아를 말한다. 나머지 3가지 마음의 창인 공개된 자아(Open Self), 숨겨진 자아(Hidden Self), 미지의 자아(Unknown Self) 등은 상대적으로 실패 DNA를 약동시킬 여지가 낮다.
눈먼 자아가 유발하는 가장 큰 폐해는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의 ‘통찰력과 총명’이란 요소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공을 이루게 한 나름의 ‘생각의 틀’이 천하불변의 진리이고 원칙인 양, 무슨 일이 있어도 바꾸거나 개선하려 들지 않는다. 그로 인해 결국 안목, 혜안, 유연성, 융통성, 열린 사고, 변화대응, 혁신, 상상력, 영감 등의 보석들이, 아집과 독선 그리고 타성이라는 실패 DNA 그물 안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는 재앙이 초래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작용에는 항상 반작용이 존재하며, 그 크기는 같고 방향은 정반대가 된다는 법칙을 말한다.
작용 반작용 법칙이 낳는 치명적 폐해는 성공달성 필요충분조건의 ‘인품’이라는 요소를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일단 성공의 자리에 올라서면 아첨꾼들이 달라붙게 된다. 아부와 칭찬에 익숙하게 되면, 바른 소리나 쓴 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불쾌감이 앞서 화부터 내게 된다. 그러니 어찌 열린 소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주위에는 시기와 질투 때로는 음해하는 적들이 산재하기 마련이다. 이들을 모두 힘으로 제압해야 할 적으로 여기게 되면서, 시나브로 모질고 포악한 안하무인 인품으로 추락하게 된다. 당연히 품격, 절제, 관용, 배려, 겸손, 교양, 덕망, 이해, 인내, 경청 등의 주옥 같은 보물들은 실패 DNA 늪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결국 영웅들의 실패는 부ㆍ권력ㆍ명예의 달콤한 맛을 즐기는 사이, 눈먼 자아와 작용 반작용 법칙이 잠재해 있던 실패 DNA를 싹 틔우고 약동시킴으로써, 통찰력, 총명, 인품 등 성공달성 조건의 주춧돌을 파손시켜 야기되는 것이다. (117~119쪽)
이와 같은 맥락을 토대로 실패 DNA 예방백신의 작용원리를 정리하면, 인지주의 동기이론의 ‘귀인’과 자기충족예언의 ‘아브라카다브라’가 상호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특정 사안에 대한 ‘인지적 판단’과 이에 대한 반복적 ‘언어 표현’이 강력한 ‘실천력’을 발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패를 저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생각, 의지, 태도, 행동, 방법 등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를 말로 표현하고 믿음으로 체득하여 의식구조화시킨 다음, 실패위험에 직면하여 심리적 자극을 받게 되면, 즉각 실천할 수 있는 행동양식을 구축하는 일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실패예방 백신 작동메커니즘의 요체는 실패를 저지할 수 있는 ‘관념적 해결책’이 여하히 행동으로 구현되느냐다. 이를 위해서는 예방백신별 구체적 대응방안이나 지침에 대해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믿어야 하고, 이를 말로 옮김으로써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다시 말해 생각하고(판단하고), 믿고(긍정하고), 그것을 표현함으로써(말하고) 비로소 예방백신의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다.
--- p.207~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