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설이 끝나자마자 옆자리에 앉았던 유엔 인권담당 사무차장보는 “진정한 인권 연설이에요!(A real human right speech!)”라고 하면서 악수를 청해왔다. 의장국인 차드 대사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러 사람이 다가와 포옹과 악수를 청하였다. 여성 대사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미국 대사는 회의장을 나가면서 “안보리에서 들어본 가장 감동적인 발언이었어요(That was the most powerful statement I have ever heard in the UN Security Council. Ever)”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안보리에서 각국 외교관들에게 전하려 했던 우리의 특별한 생각과 감정이 잘 전달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 연설을 내국인들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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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의 난민이 탈출하는 와중에 외부에서 시리아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크게 보아 완전히 상반된 두 종류의 그룹에 속한다. 즉, 테러 집단에 합류하려는 사람들과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테러 단체에 합류하려고 시리아로 들어간 사람들이 1만 명이 넘는다. 한편, 장기적인 전쟁 속에 신음하는 8백만 난민들에게 식량과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국제적십자 등 자원봉사 구호요원도 수천 명이다. 그중에 IS에 납치되거나 참수된 사람이 100명을 넘었다. 서로 반대되는 목적을 추구하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생명을 걸고 자발적으로 시리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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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집권자들은 경제성장을 위한 강력한 리더십을 이유로 정치적 민주화를 미룬다. 그러나 실제로 강력한 통치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성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집권자들은 국민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독재와 탄압을 강화해서 정권을 유지하려 든다. 탄압은 더욱 많은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고, 어느 시점이 되면 방관하던 국민들도 죽음을 무릅쓰고 독재에 항거한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내전의 상당수가 이러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국제사회가 특정한 나라의 분쟁에 개입할 때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질문이 “평화(peace)가 중요한가, 정의(justice)가 중요한가?”이다. 즉, 독재를 그대로 방치하면 일단 평화는 유지될지 모르지만 정의가 훼손되고, 당장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면 독재의 저항으로 평화가 깨진다는 말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정의가 존중되지 않는 곳에서 평화가 계속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어느 시점에서 평화보다는 정의를 선택할 것이냐가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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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장애단체 대표들과 두 시간 가까이 회의를 하면서 어떻게 이처럼 조직적이라기보다 산만해 보이는 회의에서 진지한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생각해보았다. 뚜렷한 설명이 떠오르지 않다가, 그들이 발언한 내용을 되새겨보니 아무도 격식을 갖추려는 말, 예를 들어 오늘 모임의 의미, 빈말로 하는 감사, 자신 또는 자기 단체를 과시하는 말 등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이 시각 또는 청각장애인이라서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없고, 자기가 수화로 이야기한 것을 수화통역인이 어떻게 통역했는지 들을 수 없으므로, 그냥 전하고 싶은 메시지 자체에만 집중하기 때문일까? 오히려 소통 수단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비장애인들이 마음에 없는 격식의 말이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과장된 말을 남용해 진정한 소통을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 ‘소통’이 세계 어디에서나 시대적 고민인 상황에서, 처부터 의사전달 자체가 커다란 도전인 장애인들의 회의에서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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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가 자신의 의문을 안투에게 이야기했을 때 안투는 안타까운 얼굴로 미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카, 우리가 그런 것을 모두 알 수는 없잖아? 우리는 그냥 일개미일 뿐이야! 우리의 목적은 열심히 일해서 우리 종족 모두가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여왕개미를 돌봐서 후손들이 번식할 수 있도록 하는 거야. 나도 바깥세계가 궁금해서 너와 함께 나갔었지만, 우리가 엄청나게 큰 세계에서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 외에 알게 된 게 뭐가 있니? 그냥 원조개미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먹이를 주고 우리를 돌보아주는 신이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생각하고 살자. 미카, 너는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이고, 나는 너와 함께 일하고 먹고 쉬면 편하고 행복해. 너는 그렇지 않니?” 미카는 안투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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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세계 속에 살고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모두가 열심히 살았다.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앉은 자리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공부만 하였고, 10대 소녀들이 밤을 새워 봉제공장의 미싱을 돌렸으며, 수많은 노동자가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더위를 피해 야간 공사를 하였고, 가발 제품 상자를 짊어지고 뉴욕 브로드웨이에 뮤지컬을 보러 가는 백인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뛰고 또 뛰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온 것이 우리 모두의 피와 땀의 결과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잘살게 되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쟁으로 지치고,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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