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 활짝 피어나면서 끝없는 달빛 바다가 펼쳐졌다. 달은 밤하늘에 피어난 어둠의 꽃처럼 소담하고 아름답다. 샘바다 마을 뒷산 삼신삭 정수리 위로 보름달이 덩싯 떠오르자 토담집 방 안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 고즈넉한 밤이 달빛에 흥건히 젖어들자 바람 소리마자 숨을 죽여 세상은 꿈속처럼 조용했다.
--- p. 7
도림은 여물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여전히 가볍게 흘려들었다. 어쩐지 마음이 조금은 불안해졌다.
"큰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도 못 들었소?"
도림 또래의 작은 키에 몸피가 앙바틈한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퉁명스럽게 내질렀다.
도림은 여물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여전히 가볍게 흘려들었다. 어쩐지 마음이 조금은 불안해졌다.
"언제는 싸움 없는 때가 있었남요? 올봄에도 백제 군사들이 신라 독산서을 침공했다지 않소."
"요번에는 신라 쪽에서 대군이 쳐들어온답니다."
"허면 징발당해 가는 댁들은 전장터로 나가게 되는 게요?"
"모르지요. 성을 쌓는 노역을 하게 될지....... 전장터에 나가 화살받이가 될지는 완산주에 가봐야 알겄지요."
--- p. 137
"앞으로 단소는 안 불기로 했구만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단소 대신 삼지창을 들기로 했습니다요. 그래서 주류성으로 가기로 작정을 했굽쇼."
"자네를 보자 단소 가락이 듣고 싶었는데."
"안되얐구만요."
"허긴 단소나 삼지창이나 매한가지지."
"예?"
"삼지창으로 미륵세상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네. 그렇게 되면 자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이놈도 그리 생각하고 있구만요."
"자네 단소 가락을 다시 듣자면 미륵님 하생하실 때까지 기다려야겠구먼."
--- pp. 286~287
"달님이시여, 내일이면 이 몸은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한 여자 때문에 목숨을 걸게 되었나이다. 이 몸 비록 천허고 보잘것없제만 그 여자를 목숨만큼이나 깊이깊이 괴고 있습니다요. 저의 이 같은 진정이 한갓 부질없는 욕심이라면, 헛된 망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허고 잪을 뿐입니다요. 달님이시여, 이날까지 달님께서 앞길을 비추시는 대로 살아온 이 비천한 것에게 한없이 둥그러운 지혜와 큰 용기를 주시옵소서.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가르쳐주시오소서. 이 몸 샘바다에 와서 월아 낭자를 혼자만의 마음속에 깊이 새기게 된 것이 진정 달님의 뜻이라면, 원하옵건대 부디 그 뜻이 이루어지게 도와주소서. 하오나 달님이시여, 지금꺼정 그래왔던 것맹키로 앞으로도 이 몸 갈 길 달님께 맡기겄으니 모든 것을 달님 뜻대로 하시오소서. 달님이시여, 마지막 소원이 있습니다. 병든 어머님을 달님께 부탁드리옵니다요."
--- pp. 61~62
"그나저나 이놈에 낮도깨비 쌍판대기나 좀 보자."
그러면서 이번에는 키 큰 왈패가 도림의 머릿수건을 와락 낚아챘다. 그 순간 도림은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면서 머릿수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벌떡 일어나 머릿수건 자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키 큰 왈패가 도림의 힘에 끌려와 땅바닥에 넙죽 쓰러지면서 이마를 찧고 말았다. 술에 취해 도림을 놀려대던 왈패들은 도림의 험상궂은 얼굴 흉터에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땅에 이마를 찧고 만 키 큰 사내도 비실거리고 일어나 놀라움과 두려움에 헤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지싯지싯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 pp. 206~207
"앞으로 단소는 안 불기로 했구만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단소 대신 삼지창을 들기로 했습니다요. 그래서 주류성으로 가기로 작정을 했굽쇼."
"자네를 보자 단소 가락이 듣고 싶었는데."
"안되얐구만요."
"허긴 단소나 삼지창이나 매한가지지."
"예?"
"삼지창으로 미륵세상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네. 그렇게 되면 자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이놈도 그리 생각하고 있구만요."
"자네 단소 가락을 다시 듣자면 미륵님 하생하실 때까지 기다려야겠구먼."
--- pp. 286~287
"달님이시여, 내일이면 이 몸은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한 여자 때문에 목숨을 걸게 되었나이다. 이 몸 비록 천허고 보잘것없제만 그 여자를 목숨만큼이나 깊이깊이 괴고 있습니다요. 저의 이 같은 진정이 한갓 부질없는 욕심이라면, 헛된 망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허고 잪을 뿐입니다요. 달님이시여, 이날까지 달님께서 앞길을 비추시는 대로 살아온 이 비천한 것에게 한없이 둥그러운 지혜와 큰 용기를 주시옵소서.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가르쳐주시오소서. 이 몸 샘바다에 와서 월아 낭자를 혼자만의 마음속에 깊이 새기게 된 것이 진정 달님의 뜻이라면, 원하옵건대 부디 그 뜻이 이루어지게 도와주소서. 하오나 달님이시여, 지금꺼정 그래왔던 것맹키로 앞으로도 이 몸 갈 길 달님께 맡기겄으니 모든 것을 달님 뜻대로 하시오소서. 달님이시여, 마지막 소원이 있습니다. 병든 어머님을 달님께 부탁드리옵니다요."
--- pp. 61~62
"그나저나 이놈에 낮도깨비 쌍판대기나 좀 보자."
그러면서 이번에는 키 큰 왈패가 도림의 머릿수건을 와락 낚아챘다. 그 순간 도림은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면서 머릿수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벌떡 일어나 머릿수건 자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키 큰 왈패가 도림의 힘에 끌려와 땅바닥에 넙죽 쓰러지면서 이마를 찧고 말았다. 술에 취해 도림을 놀려대던 왈패들은 도림의 험상궂은 얼굴 흉터에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땅에 이마를 찧고 만 키 큰 사내도 비실거리고 일어나 놀라움과 두려움에 헤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지싯지싯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 pp. 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