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강홍은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요, 삶의 신산한 맛을 고루 접한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이다. 그의 거침없는 문체, 치밀한 구성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슴 저편에서 잔잔한 감동이 일게 된다. 그의 세계 속에서 독자는 놀랄만한 지식과 정서의 순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 디지털 시대에 금속활자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있다.
- 문효 치(한국문인협회 이사장)
1,500년 된 도시, 청주의 역사성을 금속활자주조전수관 수강생들의 사연 많은 인생살이를 통해 피카레스크(picaresque) 양식으로 전개한다. 그중에는 실제 인물이나 사건 그리고 장소를 재현한 부분도 있어서 묘한 정감을 느끼게 만든다. 작가는 과감하게도 동화, 신비, 우연, 무갈등의 소설적 장치를 선택해 전통의 무게를 서사의 힘과 묘사의 힘으로 상쇄한 다음 금속활자를 찾아가는 문화사적 여정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김승환 (충북대 교수)
“사람이 급하긴. 주변에 저 사람은 돈 있으면 참 멋있게 쓰겠다 싶은 사람들 있지? 자세히 한번 봐. 그런 사람들한테는 꼭 돈이 없어. 그런 인간적인 사람, 의리 지키는 사람은 절대 돈을 지키지 못해. 어떤 놈이 채가도 다 채 가게 되어 있는 게 돈의 속성이야. 한참 잘 나가던 친구들이 대리운전 하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 오죽하면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게 이런 집착들을 슬금슬금 내려놓는 과정이야.”
--- p.202 :
“난 자식들한테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출세하라고 하지 않기로 했어. 당신도 법대 나왔으니 주변에 판검사 된 친구들 있을 거 아냐? 부러울 때도 있겠지만 맨날 사기꾼이나 도둑놈들밖에 더 상대해? 의사 되어 봐야 나같이 병든 사람들이나 상대하는 거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 그게 제일 행복한 거야. 이거 장 사장 주려고 가져왔어.”
--- p.203 :
“번뇌가 많아 보입니다.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요. 종당엔 그 불길이 자신까지 다 태우고 말 겁니다. 모든 걸 다 용서하세요.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 p.217
‘사람들은 무릎 꿇지 않는 것이 자존심이고, 실수를 들키지 않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러서야 할 때를 놓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강인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강인함은 단단함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수긍하고 그것을 지적하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유연함으로 증명되는 법이지요.’
--- p.220
“바람은 머물지 않아. 나도 한때는 내가 바람이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깨달았지. 나 역시 바람 따라 눕는 풀이라는 걸. 스쳐 지나가는 걸 억지로 잡으려고 애쓰지 마. 너무 큰 걸 담으려고 하지 말고 짧은 순간, 그걸 포착해야 해.”
--- p.231
“당시 해군 소위 후보생이었던 앙리 주베르라는 사람이 강화도 풍경을 상세히 기록했는데 이곳 조선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고 자존심 상하는 한 가지는, 아무리 가난한 집에도 책이 있다고, 가난한 동양의 작은 나라에게 열등감마저 느꼈다고 기록했어요. 그는 조선을 책의 나라라고 했으니 우리의 교육문화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알 수 있어요. 약탈된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로부터 오 년마다 임대를 갱신하는 형식으로나마 돌아오게 되었어요.”
--- p.233∼234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집과 돈과 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에게 이미 사랑이 있으면 그것들이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 p.296
“고려의 금속활자는 독일 금속활자와 다르게 세계문화사에 큰 공헌을 하지 못했습니다. 발명만 해 놓고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어쩌면 자랑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간행 목적이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이었고, 벤처사업가였던 구텐베르크는 상업적 목적이 높았다는 것이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금속활자 발명의 핵심은 지식정보를 대중화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는데, 우리는 과거의 지식을 보존하는데 금속활자를 사용했으나 유럽은 출판 산업이라는 첨단 산업으로 기업화시켜 경제발전의 인프라를 구축한 것입니다.”
--- p.338
“영악하다고나 할까요?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오랫동안 식민지를 두었던 과정에서 문화적 지배를 위한 연구를 계속해 왔던 프랑스는 한국인들에게 수주를 따내기 위한 방법을 아주 정확히 파악했던 겁니다. 자존심과 명예, 그리고 문화를 중요시여기는 한국인들에게 직지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자 한국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 호의를 갖게 됐습니다. 결국 프랑스 테제베 시스템을 선정, 프랑스 국영철도의 참여로 20억 유로에 차량 구매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뒤로 프랑스 정부는 불문명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고 발뺌을 하더니 미테랑이 죽자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 p.347
검은 그림자는 청진기의 원반을 금고 문에 대고 다른 손으로 천천히 다이얼을 돌렸다. 눈을 감은 채 안쪽 날름쇠 소리를 집중해서 듣는 그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숭고해 보이기가지 했다.
--- p.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