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시골 같은 달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에서는 한국화를 전공하였고 여러 공모전에 입선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 그룹인 ‘하얀생각하기’의 회원으로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 전시회 참여를 비롯해 동화도 함께 쓰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나무도령》, 《반쪽이》, 《세 가지 유산》, 《흥부와 놀부》, 《우리 아이 이야기 친구》, 《사랑이 있는 곳》, 《전태일》, 《오가리살 이야기》, 《서울, 1964년 겨울》, 《사회동화-산촌》, 《최척전》, 《간 큰 도둑》, 《태극기》, 《탈무드》 등이 있습니다.
“송이야, 엄마 김치가 최고지?” 엄마는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이 김치를 버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작년에 손수 담근 김치는 여기 있는데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김치통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꺼내 먹었고, 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할머니가 보내온 묵은지만 썼는데 벌써 다 먹어 버렸다. 그나마 조금 남은 김치에는 스멀스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앞으로 평생 엄마가 담근 김치를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하자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 「라면과 김치」중에서
천천히 걸어가다가 마지막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거기, 놀랍게도 호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뒷걸음을 쳤다. 송곳니가 흉측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호랑이라기보다 괴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하게 생긴 괴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오랫동안 씻지 않아 더럽기는 했지만 백호가 분명했다. 시멘트 방 안에서 얼마 동안 이렇게 혼자 있었던 것일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위어 있는 데다 군데군데 털까지 빠져 있었다. 그 모습에 두려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묘한 호기심이 일어났다. 백호는 엄마도, 형제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혼자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불안한 듯 서성이는 것이 마치 내 모습 같았다. --- 「동물원에서 생긴 일」중에서
나는 장난 삼아 마이크를 뽑아 들고 말했다. “지금부터 천국으로 가는 놀이 기구 운행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안전띠를 매 주세요.” 마이크도 작동은 되지 않았지만 제법 폼이 났다. 앞에 있는 버튼을 꾹 누르고 다시 말했다. “이 놀이 기구를 타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김희진 씨가 있는 하늘나라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기계 장치에 불이 들어오며 ‘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네 심장이 튼튼한지 한번 시험해 봐.’ 자꾸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나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텅 빈 놀이공원은 괴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 「천국으로 가는 자이언트 드롭」중에서
엄마, 이제 알았어요. 내가 정신을 잃었을 때 엄마가 왜 그렇게 슬퍼 보였는지,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에 내가 잠깐 어리석은 생각을 했어요. 엄마, 약속할게요. 엄마 바람대로 한 송이 꽃처럼 어여쁘게 자라 멋진 어른이 되겠다고. 착한 일도 많이 하고 훌륭한 일도 많이 해서 오래오래 살다가 천국에 갈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도 약속해 주세요. 밝고 빛나는 천국에서 언제나 그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