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동안 <해우소>의 김승제 씨가 해온 일들을 살펴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부산시 사상구청, 북부경찰서 공중화장실, 울산 성신고 등 그가 손본 화장실만도 2백여 곳이 넘고 화장실 설계에서부터 디자인, 시공까지 이 모든 일들을 혼자의 힘으로 '뚝딱' 해내고 있는 것. 그렇다고 돈이 생기는 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재료비 외에 공사비용으로 그가 받는 돈은 땡전 한 푼도 없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업무 환경도 세상에서 제일 열악하고 열악하고 열악하다.
"냄새나지 않느냐구요? 더럽지 않냐구요? 냄새나죠. 더럽죠. 하지만 비밀은 거기 있습니다. 가장 더럽고 불결한 공간을 쾌적한 공간으로 변신시키는 게 얼마나 뿌듯한 지 아세요? 제가 마치 마술사가 된 것 같거든요."
김승제 씨는 주로 밤에 일을 한다. 여기서 일이란 당연히 화장실 개조를 의미한다. 낮에는 시민들이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공사는 이용객이 없는 밤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그는 홀로 문짝을 바꾸고, 창틀을 바꾸고, 거울을 바꾸고, 인테리어 소품을 가지런히 걸어둔다.
"신기한게 뭔지 아세요? 화장실이 깨끗할수록 사람들이 깨끗하게 사용한다는 겁니다. 문화 시민 척도 운운하면서 우리 국민의 화장실 문화 수준을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거 다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먼저 철저하게 청결 관리를 한번 해보세요. 그러면 압니다."
김승제 씨가 <해우소>활동을 시작한 때는 1999년 봄. 순전히 우연이었다. 컴퓨터 동호회를 하면서 알게된 여섯 명이 취미로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었는데 어디다 걸어둘까 고민하다가 공중 화장실에 기증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것. 하지만 관할 구청에서 받으려 하지 않았다. 파손되면 다시 고쳐주겠다, 따라서 당신들은 아무런 책임을 안 져도 된다. 이렇게 큰 소리치고 반은 오기로 시작했죠."
하긴 구청 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하고 실눈을 뜨고 바라보던 사람들이 대부분.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시간이 약이었다. 처음엔 인테리어 소품만 설치해주던 <해우소>가 '답답한 놈이 우물 파는'심정으로 서서히 화장실 전체를 개조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활약상이 점차 부산 전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던 것.
"어느날부턴인가 공사에서, 학교에서, 구청에서, 우리 화장실도 개조가 가능하겠냐, 하고 조심스레 의뢰가 들어오더군요. 점점 바빠졌죠. 처음 함께 시작했던 친구들이 직장 따라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버렸기 때문에, 2년 전부터는 모든 일을 저 혼자 감당해야 했으니까요."
특이하게도 그는 개인 회사의 화장실은 손보지 않는다. '인테리어 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생업인데 그 밥그릇을 뺏을 수 있느냐'는 게 그의 생각. 그래서 공중화장실만 무료로 개조해준다.
"경찰서 같은 곳은 어차피 시민들이 좋은 기분으로 가는 곳은 아니잖아요. 근데 화장실에 가보면 색깔마저 우중충합니다. 그럴 땐 문짝 색깔만 밝게 바꿔줘도 분위기기 확 달라지지요."
-- pp.145-148
버스와 사랑에 빠지다니 가당치도 않다. 빵빵한 가슴도, 하늘하늘한 허리도, 늘씬한 두 다리도 없는 투박한 외모에 장롱 다리로 버티고 서서 시종 부릉부릉, 벌름거리는 그 요상한 물체와 사랑에 빠진다고? 도무지 상상불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별일이지, 세상에는 버스만 보면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프리첼의 <버스사랑 동호회>(이하 버사동) 회원들이다.
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랑에 빠진 인간이 하는 행동 양상은 다 보인다. 여자친구 생일 외듯 버스 노선도를 잘잘 외고, 어떻게 하면 한번 더 타볼까 궁리하고, 또 한 버스에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다. 이 버스 저 버스를 다 타보고 일일이 비교 분석하는 것도 모자라, 버스의 부모 격이라 할 수 있는 운수회사에 대해서도 고시 공부하듯 열나게 공부한다.
버스에 탄 유지태가 심드렁하게 풍선껌 씹으며 등장하는 TV 광고가 있었다. 어, 골뱅이네? 뭐, 이런 멘트를 날렸던 것 같다. 아무튼 남들은 파릇파릇한 유지태의 표정 연기를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을 때 <버서동> 회원들은 엑스트라로 출연한 그 버스를 분석하기에 바빴다. 즉, 그 버스의 차종, 운수 회사, 노선도, 년식(출고년도) 등등을 척 보고 알아맞히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것은 정말로 이들이 그 모든 걸, 다 알아맞혔다는 데 있다! 분석결과, 그 버스는 대진여객 소속 710번 일반 버스로서, 차종은 BS106L, 1997년식이라나.
<버사동>의 버스 사랑은 아닌 게 아니라 좀 유난스럽다. 사실 일반인들이 느끼는 버스의 존재감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 아닌가. 서민의 애환 운운하는 정서 아니면 학창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과 함께 타던 아련한 추억이 얽힌 공간. 일반인들이 느끼는 버스가 '문학적'이라면 <버사동>회원들의 버스는 다분히 '과학적'이다. 이 과학 속에 어설픈 감상 따윈 없다. 즉 모모 운수 모번 버스의 차종은 무엇이며 시승했을 때 만족도는 몇 점이며, 현재 노선이나 배차 간격은 타당한가 등등이 <버사모>궁극의 관심사다.
홀로 부쩍부쩍 자라 어느새 '버스 귀신'이 된 이들은 이제 운수회사나 시군구청 교통과의 자문 역할을 해줄 정도로 막강해졌다. '매니아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진리가 되는 순간이다. 문득 버스에 관해 정확히 알고, 그래서 버스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기른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을 꿈꾸어본다. 그 날이 오면 비로소 정체되어 있는 이 땅의 버스 정책, 교통 정책도 그 답답한 다람쥐 쳇바퀴를 가열차게 박차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힘차게 오라~이를 외치며.
-- pp.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