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이 힘차게 외치며 말을 이었다.
“약속을 꼭 지키시오! 나 구천이 먼저 왕이 된다면 반드시 그대가 왕이 될 수 있도록 돕겠소!”
“내가 왕위에 오르는 데 왜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겠소?”
“그대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러오. 만약 그대가 왕이 되지 못하면 내가 상대할 맞수를 어디에서 찾겠소?”
“구천! 나를 모욕하려는 것인가? 잘 들어두시오! 나는 반드시 그대의 맞수가 되어 우열을 가릴 것이오!”
“좋소! 그대에게 맹세하노니 만약 그대가 왕이 되고 내가 왕이 되지 못하면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오!”
“나 역시 마찬가지오. 구천 자네가 왕이 되고 내가 왕이 되지 못하면 이 자리에 다시 찾아와 목숨을 내놓고 월나라에 사죄할 것이오. 자!”
부차가 손을 들어올렸다.
구천은 잠시 부차의 손바닥을 응시하다가 엄숙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두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바닥을 치며 맹세했다.
---「와신상담 1권, 왕위 쟁취를 맹세하다」중에서
“아닐세, 아무래도 이미 늦은 것 같아……. 백비! 오자서에게 내 말을 전하게. 과인의 원수는 반드시 갚되 절대로 성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일세. 3년, 5년 이후라도 괜찮네…….”
합려는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백비는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대왕, 소신 잘 기억하겠습니다.”
합려는 숨을 헐떡거리며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과인은 평생 동안 전쟁터를 누비며 살아온 사람인데 결국엔 이렇듯 참패를 당하고 말았네……. 과인의 심정은 오자서가 잘 이해할 것이야……. 자네가 꼭 전해주게. 반드시 월나라를 패망시킬 수 있는 현명한 사람에게 왕위를 계승시켜야 한다고 말일세. 그렇잖으면 난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네…….”
“대왕…… 대왕…….”
백비가 엉엉 눈물을 터뜨리는 가운데 합려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백비는 엉거주춤 기어서 방을 나오며 울부짖었다.
---「와신상담 3권, 쥐에 빗대어 말하다」중에서
구천은 격노하여 침상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극도로 쇠약해진 터라 몸을 한 번 움직이자마자 바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아어는 구천을 부축했지만 구천은 아어를 사납게 밀쳐냈다.
“대왕, 그건 소신의 계략이 맞습니다. 소신에게 죄를 물으소서!”
범려는 다급한 마음으로 외쳤다.
구천은 자기 힘으로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의 허약한 몸으로는 상반신조차 제대로 지탱할 수가 없었다. 아어는 몸부림을 치는 구천을 바라보았다. 그는 몸을 가눌 수 없다는 사실에 극도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런 고통스런 몸부림은 구천이 사로잡힌 이후로, 심지어 그 나무 형틀에 매달린 이후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어는 심장이 찢어지고 폐가 터지는 듯했다
---「와신상담 6권, 계략으로 사람을 구하다」중에서
잠이 달아난 구천은 장작더미 위에 올라 앉아 눈앞에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것은 바로 쓸개였다. 아주 쓰디쓴 쓸개였다. 구천의 시선은 쓸개에 멈춘 채 움직일 줄 몰랐다. 마치 쓸개를 뚫어버릴 듯한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아침 햇살이 서서히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할 즈음 한기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아직까지 성신당 밖에 무릎을 꿇고 있는 고성의 몸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었으나,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구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성!”
---「와신상담 9권, 곡식을 빌리러 간 범려」중에서
아어와 여이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과인이 이 술을 마시면서 맛이 좋다고 한 것은 향기롭고 달기 때문이 아니오. 이 술은 쓰디쓴 술이오. 이 세상에 쓴 술을 빚어내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 중 자기가 빚은 쓰디쓴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구천은 여기까지 말하고 술을 다시 한 잔 마셨다.
“자신이 빚은 쓴 술을 먹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오. 물론 다른 사람이 빚은 쓴 술을 먹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오. 여이야, 부왕이 왜 장작더미 위에서 자고 쓸개즙을 마시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
“끊임없이 스스로를 분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원수를 갚고 월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과인이 이렇게 와신상담하는 이유는 인간의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보기 위함이다! 누구나 한두 번쯤 겪는 고생은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아홉 번, 열 번은 쉽지 않다. 그러나 과인은 백 번, 천 번, 아니 만 번 넘게 고통을 견뎌냈다.”
---「와신상담 10권, 월나라, 군대를 일으키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