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箴잠, 마음에 놓는 침
내게 오래된 거울 하나 있지
수없이 단련한 쇠로 만든 것
보석함에 넣어 두어
먼지 묻지 않게 하고
때때로 닦아서
반들반들 깔끔하게 해야지
사람마다 모습 비춰
털끝까지 환히 보도록
내게 맑은 연못 하나 있지
반 묘畝 정도 되는 못
항상 흐르는 물을 대 주어
낮이나 밤이나 넘실대게 해야지
더러운 것 치워서 깨끗하게 하고
작은 일렁임도 일지 않게 해야지
구름 그림자, 파란 하늘빛이
맑은 수면에 비치도록
거울처럼 물처럼
마음의 덕을 닦아야지
어찌 마음을 수양하지 않을까?
내 마음이 바로 태극太極인 것을
○ 조선 시대 학자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 1602(선조35)~1654(효종5)이 지은 글입니다. 마음은 내게 있는 오래된 거울입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춰 줄 수 있도록 잘 닦아 두어야겠습니다. 마음은 내게 있는 맑은 연못입니다. 작은 일렁임도 일지 않아 고요할 수 있도록 잘 수양해야겠습니다. 내 마음이 바로 태극입니다. 우주의 천변만화千變萬化가 내 마음과 어울려 춤을 춥니다.
---「양심잠養心箴, 어찌 마음을 수양하지 않는가」중에서
【제2장】 箴잠, 학문에 놓는 침
내가 떡을 먹을 때
그릇에 꿀 덜어 놓자
어디선가 벌 세 마리
윙윙 날아 모여든다
한 마리는 그릇 가장자리에서 꿀을 빨다
금방 물러가고
한 마리는 꿀에 빠져
몸부림치다 죽었다
높이 나는 저 한 놈은
맴돌며 내려다보기만 하니
너는 지혜롭다 할 만하다만
애초에 여기 온 뜻이 무엇이더냐?
정원 가득 핀 꽃으로
훨훨 날아가거라
○ 조선 시대 문신 귀록歸鹿 조현명趙顯命 1691(숙종17)~1752(영조28)이 지은 글입니다. 꿀을 따러 꽃밭에 날아든 벌들처럼 사람도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런데도 본래의 목적을 잊고 눈앞의 이익을 보며 두리번거립니다. 작은 이익이 목숨을 앗아 갈 만큼 위험한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봉잠蜂箴, 정원 가득 핀 꽃으로 훨훨 날아가거라」중에서
【제3장】 箴잠, 습관에 놓는 침
술에 빠지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라
물에 빠지면 헤엄쳐 나올 수 있지만
술에 빠지면 술에 잠겨 미치광이가 되리
재물을 보고 구차하게 얻는 자는
염치가 완전히 없어지고
술을 좋아해 구차하게 마시는 자는
마음이 방자해져 제멋대로가 된다
함부로 구하고 염치없이 탐한다면
공동묘지에서 남은 음식을 빌어먹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김 군 자유子游는 성격이 솔직하고 술을 좋아해 술에 대한 욕구가 끝이 없었다. 어떤 집에서는 남은 술이 있더라도 요구하는 대로 계속해 내줄 수 없을까 염려해 감히 내주지 못하였다. 나는 속으로 그를 딱하게 여겨, “술이 비록 근심을 잊고 기쁘게 해 주는 것이라지만 이 또한 음식이니, 절제할 줄 모르고 무리하게 구해서야 되겠는가? 매양 무리하게 술을 찾아 기어이 욕구를 채우려 한다면 꾸짖으며 주는 음식과 발로 뭉개어 주는 음식을 부끄러움 없이 받아먹는 비루한 사내2와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하였다. 김 군이 나에게 자신을 다스리는 데 교훈이 될 만한 말을 써 달라고 청하기에, 이 잠을 지어 준다
○ 조선 시대 학자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 1654(효종5)~1725(영조1)이 지은 글입니다. 술에 빠지는 것이 물에 빠지는 것보다 위험한 데, 물에 빠지는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술에 빠지는 것은 두려워할 줄을 모릅니다. 술 마시는 자리라면 열 일을 제쳐 두고 따라다니는 일, 구차하기가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며 남은 음식을 빌어먹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계주잠戒酒箴, 술에 빠지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라」중에서
【제4장】 箴잠, 관계에 놓는 침
잘생긴 자도子都를
누가 아름답다 하지 않으리
역아易牙가 조리한 음식을
누가 맛있다 하지 않으리
좋아하고 미워함이 잡다하게 뒤섞이면
나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비자有非子가 무시옹無是翁에게 가서 말하였다.
“요즘 여럿이 모여 인물을 평하는 사람 중에는 옹翁을 사람답다 하는 이도 있고, 옹을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옹은 어째서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대접을 받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합니까?”
무시옹이 듣고 해명하였다.
“나는 남이 나를 사람답다고 한다 해서 기뻐하지도 않고, 남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한다 해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고 하고,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나는 나를 사람답다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른다.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고 하면 당연히 기뻐할 것이고,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해도 나는 기뻐할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면 두려워할 것이고,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고 해도 두려워할 것이다. 기뻐하거나 두려워하려면 나를 사람답다거나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인지 아닌지를 살펴야만 한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다.’ 하셨다. 나를 사람답다고 하는 사람이 어진 사람인가,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어진 사람인가?”
유비자가 웃으면서 물러가니, 무시옹이 이것으로 잠을 지어 자신을 일깨운다.
○ 고려 시대 문신 제정霽亭 이달충李達衷 1309(충선왕1)~1385(우왕11)이 지은 글입니다. 나를 사람답다고 하는 말은 듣기 좋아하고 나를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는 말은 듣기 싫어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지 않고 말만 듣다 보면, 때론 상처받지 않아도 될 일에 크게 상처받고, 때론 괜히 하는 말에 우쭐해질 수 있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나를 사람답다고 하는 말이 좋은 말이 될 수도 있고, 나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나를 옳다 하고 저 사람은 나를 그르다 할 때 나를 돌아보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애오잠愛惡箴,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