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둘레 길이와 지름의 비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기원전 1650년경에 쓰인 이집트의 파피루스지만, 처음으로 비교적 정확한 값을 계산한 사람은 아르키메데스였다. 그는 π가 3과 1/7에서 3과 10/71 사이의 값, 또는 3.142에서 3.141 사이의 값을 갖는다고 했는데, 이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맞춘 것이었다. 18세기 스위스의 수학자인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가 최초로 원둘레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첫 글자를 따서 π라는 기호를 사용했다. 인공위성을 설계하는 데는 겨우 π의 소수점 이하 10자리 이내만 정확하게 알면 되지만, 몇몇 수학자들은 정확한 π값을 구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다. 2002년, 가나다 야스마사(金田康正, 1949~)는 도쿄대학교의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π의 값을 구했다. 컴퓨터는 1,024기가바이트(gigabyte)의 메모리로 602시간 동안 작동해 소수점 이하 124,100,000,000자리까지 계산했다.
- ‘파이(π)’ 중에서
갈릴레오가 이 법칙을 증명하기 위해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서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떨어뜨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아마도 꾸며낸 이야기겠지만, 1971년에 아폴로 15호의 우주비행사들이 달에서 갈릴레오의 실험을 재수행한 것은 분명하고도 유명한 사실이다. 우주비행사 데이비드 스콧(David Scott, 1932~)은 깃털과 망치를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렸더니 두 물체가 동시에 땅에 닿았다. 갈릴레오가 옳았음이 증명된 것이었다.
- ‘갈릴레오의 낙하 운동 법칙’ 중에서
옛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우스갯소리겠지만, 당시에는 배를 타고 한참 가다 낭떠러지를 만나면 배가 수직으로 고꾸라진다는 얘기가 신빙성 있게 믿어지곤 했다.
그러다가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한 학자들이 나타난 건 기원전 6세기쯤이었다. 탈레스나 피타고라스, 에라토스테네스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기원후 2세기의 프톨레마이오스 역시 지구가 둥글다는 이들의 견해에 동조한 바 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는 공 모양의 지구가 이 우주의 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고, 달과 수성, 목성, 심지어 태양마저 지구의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다. 당시로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과, 별들이 천구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1,400년 동안이나 천동설을 받들었다.
- ‘과학 개념 길라잡이 - 지구에서 우주로, 점점 확대되는 세계관’ 중에서
사람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의견을 들은 어느 주교 아내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길 바라야겠지요.”
이것은 1859년, 다윈의 기념비적 작품인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줄여서 『종의 기원』)이 출판되었을 때 사람들이 보인 격렬한 반응의 한 예다. 이 책은 출간된 첫날 모두 팔렸으며, 이후로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강하게 반대했다. 모든 생물체는 오늘날 존재하는 모습대로 신이 창조했고 어떠한 변화도 겪지 않았다는 종교적인 믿음과 충돌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윈의 이론은 끊임없이 사회적, 과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다윈의 진화론’ 중에서
고전역학적 입장에서는 고양이는 죽었든 살았든 어느 한 가지로 결정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관찰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의 ‘관측 행위’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비결정론적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고양이는 상자를 열기 전까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일까? 이 역설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 ‘슈뢰딩거방정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