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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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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 이 시대 7인의 49가지 이야기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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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0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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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15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4.4만자, 약 4.8만 단어, A4 약 91쪽?
ISBN13 978899253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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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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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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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달빛이 가득했던, 그 봄날 나는 비로소 툇마루에 앉아 강물에 죽고 사는 달빛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였다. 안심이었다. 자유였다. 강굽이를 돌며 부서지던 달빛과 물소리, 풀밭 위를 지나가는 바람소리의 속삭임을, 바위 속 깊이 파고들던 달빛 울음과 달빛을 받아들던 풀잎들의 노래를 나는 비로소 그냥 듣고 있었다. 이유가 있을 리 없는 존재의 아름다움들을 나는 보았다. 편하고 즐거웠다. 나는 방에 들어와 누웠다. 달빛이 내 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새벽 잠 깊숙이 빠져들었다. 소리도 겁도 없이 눈을 뜨고 강물로 무수히 뛰어들던 눈송이들을 본 듯했다.
그 무렵, 그래 그때였어. 오! 시였다. 한 편의 시가 나를 찾아왔다.
---「김용택, ‘오! 시, 시였어’」 중에서

나는 늘 야유했다.
난 네 다이아몬드 안 부러워. 지구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이고 또 비현실적인 파라다이스라지만 표백제나 충격에 쥐약이라서 설거지할 땐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다이아몬드가 30억 년 시간이 만든 보석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돌이나 똑같지. 그렇게 왼손 검지에 태양처럼 빛나는 바위덩어리를 맨날 자랑하다 보면 나중엔 아예 돌멩이로 태어나는 수가 있어!
하지만 아무리 조롱해도 마지막엔 켕긴다. 그가 ‘기부’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 신화적인 쇼핑광이 보여주는 박애는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소비를 단숨에 용서하게 만든다. 그래도 그에게 앞으로 허리띠 구멍이 세 개가 더 늘어나면 끝장이라는 얘긴 계속 해줄 거다. 빈자의 마지막 저항으로서.
---「이충걸, ‘엘튼 존과 나’」 중에서

사람들은 날 보고 물었다. “의대 나왔다면서요. 무슨 과세요?” 기생충학을 한다고 하면 그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거나, 그런 학문이 있느냐고 신기해하거나, 밥 먹는 중이니 저리 가라고 타박하거나 등등의 반응을 보이곤 했다. 기생충학이 노상 대변만 만지고 사는 과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실제로 기생충학은 기생충을 가지고 연구를 할 뿐 대변 검사를 하는 과는 아니라는 점에서 좀 억울하기도 했다. 심지어 기생충학을 하는 선배가 결혼을 하려는데 신부 집에서 ‘과연 기생충학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는지’ 걱정이 된 나머지 신랑 뒷조사를 하는 일도 있었다. 기생충학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시각은 이렇듯 싸늘했다.
---「서민, '기생충을 하게 해 줘서 고마워요'」 중에서

할머니의 산소를 방문할 때마다 두꺼비를 만난다. 그 두꺼비가 산소를 지키는 영물이거나 할머니의 분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번 두꺼비를 만나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이상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흘러나오던 할머니의 치마폭과 그 이야기들에 집중한 채 고스란히 믿어 의심치 않던 순수한 시절이 아직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걸까.
---「송호창, ‘할머니의 치마폭’」 중에서

피에몬테에는 ‘프리토 미스토(fritto misto)’라는 전통요리가 있다. 먹을 수 있는 건 뭐든 튀겨서 접시에 담는다. 그중의 압권은 송아지나 황소의 고환이다. 무미한 씹는 맛만 혀에 남았다. 동석한 피에몬테 토박이에게 던진 “이탈리아도 이런 음식이 섹스의 상징이냐?”는 나의 질문은 뚱한 대답만 얻었다.
“돈 삼키면 부자 되냐?”
---「박찬일, ‘색정광 시대’」 중에서

거기서 나는 자주 두통에 시달렸다. 정수리 부분에서 피가 마구 뒤엉키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곤 했다. 머리통이 깨질 것 같은 아픔은 노란색 위액까지 모두 토해 내야 사라지곤 했는데, 그 통증이 사라진 것은 국내에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출간하면서였다. 그 책을 통해 가슴 속에 담고 있던 응어리를 풀어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우연의 산물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 강변에서 배회하거나 소멸했을 존재라는 점을.
---「홍세화, ‘운 좋은 사람의 소박한 바람’」 중에서

내가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마침 점심시간 무렵이라 사옥 계단에서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통일한 젊은 남자 사원들이 떼 지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기성 정장으로 맞춰 입은 직장인 무리는, 문화 비평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가 여성 편성 무용단 틸러 걸(tiller girl)을 보며 붙인 대중 장식과 같은 것이었다. 팔 다리를 기계처럼 일치시키는 틸러 걸의 장식적 군무를 관찰한 크라카우어는 무용수 개인의 정체성을 지운 기하학적 인체미를 대중 장식이라고 불렀다. 면접 보기 직전에 만난 정장 차림 사원의 무리는 ‘이런 데서 함께 일할 순 없을 거야.’라고 내 마음에 울리는 음성이 되었다. 업체도 나를 뽑지 않았다.
---「반이정, ‘무소속의 개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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