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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흔적

사랑의 흔적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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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2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152*225*20mm
ISBN13 9788968173141
ISBN10 896817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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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심영의
전남대 국문과에서 [5·18민중항쟁 소설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집 [그 희미한 시간 너머로], 저서 [5·18과 기억, 그리고 소설], [현대문학의 이해], [작가의 내면, 작품의 틈새], [텍스트의 안과 밖], [5·18과 문학적 파편들] 등을 펴냈다. 공저로 [5·18문학총서 소설]과 [그대 강정]이 있다. 2014년에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조선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전남대와 조선대 국문과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런저런 학교 밖 인문강의도 열심히 하면서, 글 읽고 글 쓰고 글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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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마을
길은 자꾸 어긋났고 돌아갈 곳은 까마득하지 않으나 제 길을 가는 사람들 중 제대로 가고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건 달라이 라마가 했다는 말이야? 그가 물었고 나는 아니, 기억이 잘 안 나, 박목월이 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튼 나는 만해마을에 가야 해, 하고 말해줬다. 그러자 그는 대뜸 물었다. 만해마을엔 만해가 사나? 만해마을엔 만해가 사나? 하고 그가 대뜸 말하자 나는 괜찮지 않은 마음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럼 영랑생가엔 영랑이 있나? 내가 괜찮지 않은 마음으로 영랑생가엔 영랑이 있나? 하고 그에게 묻자 다시 그는 내게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랑생가엔 적어도 영랑의 ‘마음’이 있지. 그럼 만해마을엔 만해의 ‘임’이 있겠지. 나는 영랑생가엔 적어도 영랑의 마음이 있지 하고 무심한 듯 말하는 그에게 나는 괜찮지 않은 마음으로 대꾸했다. 그는 영랑의 시를 연구해서 박사를 받았다. 나는 만해의 시를 연구해서 박사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만해의 그 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만해를 알기 위해 만해의 ‘임’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면 만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만해의 그 임이 부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중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것이다. 아무려나 만해마을은 멀리 있었다. 영랑생가는 가까이에 있었다. 나에게는 아니었으나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그에게는 행운이었다고 내게 행운이 아닌 것은 아니었으나 내게 행운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만해마을은 불교재단이 관리했다. 불교재단은 힘이 셌다. 나는 그에게 여전히 괜찮지 않은 마음으로 이번에는 연거푸 물었다. 영랑생가는 영랑재단이 관리하나? 영랑재단은 힘이 세나?
아무튼, 나는 만해마을에 가야 했다. 가지 않아도 괜찮았으나 가지 않는 것보다는 가는 것이 괜찮았다. 나는 모바일에서 네이버 지도를 펼쳐놓고 집에서,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고장에서 만해마을까지 대체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했다. 가늠해보고서야 만해마을이 생각이나 짐작이나 혹은 상상보다는 아주 먼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만해마을에 가보지 않고서도 만해에 대해 박사논문을 썼다. 그 임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나 반드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나는 만해에 대해 논문을 썼다. 그래서 나는 만해마을에 가야 하는 것이라고 그에게 말하려다 마음을 고쳐 그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만해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만해의 임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면, 그는 자신도 영랑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 영랑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노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짐작이나 혹은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는 만해에 대해 알지 못했다. 사실 나도 만해에 대해 알지 못했다. 만해의 ‘임’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냥 풍문을 모아 짜깁기한 글로, 아니 풍문을 모아 짜깁기한 글들을 모아 박사논문을 썼다. 다행히 그도 영랑을 알지 못했다. 다행히 그도 영랑의 ‘내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거라고 나는 짐작 혹은 상상을 했다. 그 역시 나처럼 그리고 무수히 많은 박사들처럼 영랑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그냥 풍문을 모아 짜깁기한 글로, 아니 풍문을 모아 짜깁기한 글들을 모아 박사논문을 썼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표절의 고의성은 없는, 다만 문자적 유사성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창작만 그런 게 아니라 논문은 더더구나 상호 텍스트성의 그물에 참여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속에 이미 모방과 영향과 표절을 잉태하고 있는 터였다. 아무려나 인쇄되고 나면 그만이었다. 복사기 회사의 상표를 별명으로 잠깐 조롱의 대상이 됐던 어느 태권도 선수 출신의 박사도 그저 잠깐의 소나기만 피하면 별일이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이미 술을 마셨고 돌아갈 차비를 받았다. 다들 그랬다. 온전하게 나의 것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였다. 아니라면 친구일 턱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풍문에 의존했다. 그게 편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풍문에 불과했다.
나는 커피를 한잔 더 마시고 싶었으나 골다공증이 심각한 지경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그냥 참기로 했다. 무슨 남자가 골다공증인가 하고 내과 의사가 나보다 더 놀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나는 무슨 남자가 골다공증이 그리 심한가 하고 놀라는 내과 의사를 보고 더 놀랐다. 그래도 우유는 잘 마셔지지 않았고 오랜 버릇으로 커피가 입에 달았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셋이 앉아서 옛날 팥빙수를 나눠 먹고 있었다. 저 아이들이, 그러니까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서 옛날 팥빙수를 나눠 먹고 있는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셋이 중학생 아이들로 보이나? 그가 내게 무심한 듯 물었다. 내가 자꾸 그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었기 때문인데, 사실 나는 진즉부터 영랑을 연구해서 박사를 받은 내 친구보다 이제 겨우 중학교 아이들로 보이는,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서 옛날 팥빙수를 나눠 먹고 있는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셋에게 눈길이 자주 갔던 것이다. 그것은 손이 가요, 손이가, 라고 반복해서 불렀던 무슨 과자를 먹기 위해 과자 봉투 안에 손을 집어넣는 일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일이었다기보다는 일종의 불필요한 관심이었다. 나는 가끔 그랬다. 심심해서였다. 나는 심심했던 것이다. 나는 만해의 ‘임’을 잘 몰랐다. 그런데도 나는 만해마을에 가야 했다. 아니 그래서 나는 만해마을에 가야 했다.
내 눈에는 기껏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눈에는 기껏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무릎에 앉아서, 내 눈으로는 기껏 중학생으로밖에 안 보이는 남자아이의 볼을 어루만지다가 둘이 입술을 마주 비비고 있었다. 나머지 여자아이 둘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옛날 팥빙수를 스푼으로 떠먹고 있었다. 그중에 한 여자아이는 신세 한탄을 하다가 택시기사 욕을 했다. 시팔 놈의 새끼, 늙은 영감새끼가 빨리 오면, 아니라도 기본요금이면 얼마든지 올 수 있는 거리를 느릿느릿 오면서 내 허벅지를 흘끔거리는 게 꼭 변태새끼 같았단 말이야. 우리 아빠 새끼처럼, 하고 말했다. 또 다른, 내 눈에는 기껏 중학생으로 밖에는 안 보이는 다른 여자아이는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늙은것들이 너무 싫어, 라고 가래침을 뱉듯이 말했다. 맞아, 나도 싫어. 그것들은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염치가 없어. 어디 앉을 자리 없나, 하고 눈알을 굴리다가 아주 동물적으로 우리 같은 아이들 옆으로 와서 서 있는 거야. 비켜주는 것이 아주 당연한 듯이 말이야. 나도 늙은것들이 너무 싫어. 교양 머리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어제저녁에도 감자탕 먹으러 갔는데, 건너편 자리에 앉은 늙은것들 셋이서 겨우 소주 네 병 마시면서 얼마나 시끄럽던지, 내가 미쳐 돌아가실 뻔했다니까. 서로 경쟁하듯이 악을 바락바락 쓰는 거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아휴, 싫어. 맞아 나도 싫어. 내 눈에는 기껏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은 서로 경쟁이나 하듯 이구동성으로 ‘늙은것들’을 욕하고 있었다. 그러다 옛날 팥빙수를 떠 먹고 있던, 내 눈에는 기껏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눈에는 기껏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무릎에 앉아서, 내 눈으로는 기껏 중학생으로밖에 안 보이는 남자아이의 볼을 어루만지다 남자아이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고 있던 아이를 멀뚱하게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그래도 중학교 때가 좋았는데, 라고 말했다. 그러자, 거보라고. 저 아이들은 기껏 중학교 아이들이 아니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무슨 남자가 골다공증인가 하고 나보다 더 놀라는 시늉을 해서 그보다는 나를 더 놀라게 했던 내과 의사보다 더 놀랐다. 그러네. 그럼 저 아이들은 고등학교 아이들인가. 아니, 지금 이 시각에 고등학교 아이들이 커피숍에 앉아 있을 리는 없지 않나? 하고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내가 괜찮지 않은 마음으로 그럼 고등학교 아이들이 아니면 대학교 아이들이란 말인가 하고 그에게 물으려고 하는 순간 그래도 중학교 때가 좋았는데 라고 말했던, 내 눈에는 기껏 중학교 아이들로 보였으나 이제는 고등학교 아이들인지 대학교 아이들인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여자아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어디 요양원에서 보험금을 받아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남자아이의 무릎에 올라타서 남자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고 가끔씩 입술을 갖다 대던 여자아이가, 눈썹 문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입술로만 욕을 했다. 이 시발 놈 늙은 변태새끼 같은 놈이 왜 여기를 자꾸 보는 거야, 너 오늘 한번 죽어볼래?
내 눈에는 기껏 중학교 아이들로만 보이는, 중학생은 아니고 고등학생도 아닌 그렇다고 대학교 아이들일 리는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그것도 여자아이에게 맞아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나보다 훨씬 더 일찍 태어났으나 이제는 별로 할 일도 없는 까닭에 아무 데나 다니면서 종주먹을 들이대는 노인들에게 맞아 죽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뭐하러 가고 그런 거야? 다시 그가 내게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괜찮지 않은 마음으로 그에게 대꾸했다. 그래도 거긴 한 번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재재작년인가 여름에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관광이 아니라 서울 매곡동인가 도곡동인가에 있다는 국가최고정보시설에 갔다. 국가최고정보시설 후문 앞에 까지만 갔다. 정문은 보안구역이라 얼씬도 못 했다. 후문 역시 보안구역이라 얼씬도 못 했다. 다만 후문으로 통하는 외길에는, 이상하게도 그 외길 양옆에는, 난초나 화훼를 키워서 경향 각지로 주문배달을 하는 비닐하우스가 아주 많았다. 역시 국가최고정보시설은 돈이 많은가 보았다. 힘이 셌다. 그 국가최고정보시설이 아니면 어느 누구가 그 외길 양옆, 난초나 화훼를 키워서 경향 각지로 주문배달을 하는 비닐하우스의 손님일 수 있을까 싶게 외진 골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경향 각지의 대학에 소속된 교수나 연구자들은, 그래 봐야 여남은 대학의 백여 명이 될까 말까 한 초라한 인원이었으나, 아무튼 그해 여름 우리는 관광버스를 빌려서 경향 각지의 자기 대학운동장으로부터 출발해서 매곡동인가 내곡동인가에 있다는 국가최고정보시설 후문에 갔던 것이다.
가서 달라진 게 있나? 영랑의 ‘내 마음’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냥 풍문을 모아 짜깁기한 글로, 아니 풍문을 모아 짜깁기한 글들을 모아 박사논문을 썼던 그가, 그러니까 유일무이한 내 친구가 이번에는 조금 평정을 잃은, 그러니까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호라, 이 친구, 그러니까 유일무이한 내 친구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그런 데 있었구나, 하고 나는 무슨 남자가 골다공증인가 하고 나보다 더 놀라는 시늉을 해서 그보다는 나를 더 놀라게 했던 내과 의사보다 더 놀랐다. 그는 무슨 일이거나 무슨 말이거나 무심했고 무심한 눈길이었고 무심한 시선이었고 무심한 어조였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고 반전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라본 탓인지 그의 표정은 메마른 우물처럼 보였다. 어떤 상황이고 녹록한 것은 없는 것이다. 아니, 달라진 건 없어. 나는 부러 기운 없이 말했다. 나는 어느 경우고 늘 기운 있게 말했다. 대형 강의실에서도 나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말했다. 늘 아이들에게 물었다. 저 제일 뒤에 있는 학생, 내 말 잘 들리지? 나는 늘 씩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보다 훨씬 더 일찍 태어났으나 이제는 별로 할 일도 없는 까닭에 아무 데나 다니면서 종주먹을 들이대는 노인들을 국가최고정보시설 후문 앞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힘이 셌다. 저 중학교 아이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등학교 아이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학교 아이들도 아닌 것 같은 아이들보다도 더 힘이 셌다. 적어도 저 택시기사 아저씨를 욕하고 눈썹 문신을 하겠다면서 남자아이 무릎에 올라타서 남자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주거나 입술을 가끔 맞대는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일찍 태어났으나 이제는 별로 할 일도 없는 까닭에 아무 데나 다니면서 종주먹을 들이대는 노인들처럼 국가최고정보시설 후문 앞에서 힘내세요, 힘~ 하면서 국가최고정보시설의 원장님을 지지하는 친위시위는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해마을은 아무튼 멀리 있었다. 북동쪽에 있었다. 영랑생가는 가까이에 있었다. 남서쪽에 있었다.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는 북동쪽에 있는 만해마을에 가보지 못했고, 나는 남서쪽에 있는 영랑생가에 가보지 않았다. 물론 그가 영랑생가에 갔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내가 만해마을에 갔었는지 그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사실 우린 서로에 대해 묻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었다. 그게 편했다. 서로에게 좋았다. 다 알거나 많이 알면 친구가 아니거나 먼 친구거나 곧 끊어질 친구인 것이다. 우리 만해마을에 같이 가보는 건 어떨까? 나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고 산에 가는 것도 그렇지만 여행도 혼자 하는 편이어서 사실은 그가 좋다고, 그러마고, 따라나설까 은근히 겁이 났다. 그는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되돌아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함께 영랑 생가에 가보는 건 어떨까? 사실 그도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고 산에 가는 것도 그렇지만 여행도 혼자 하는 편이어서 내가 그러마고 좋다고 따라나설까 은근히 겁이 났을 것이다. 여름의 끝이고 가을의 문턱이어서 바깥바람은 덥지도 차지도 않았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나는 아직 바깥에 나가지 않았고 그도 역시 아직 바깥에 나가지 않은 채 우리는 그냥 커피숍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말고 우리 함께 대마도에나 아니면 북해도에나 가볼까?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가, 그러니까 영랑시를 연구해서 박사논문을 썼던 그가 조금 진지하게 말했다. 우린 돈이 없잖아? 내가 얼마간 구슬프게 대꾸했다. 참, 그렇지. 우린 돈이 없지. 방학엔 강의료가 한 푼도 들어오지 않으니까 우린 돈이 없는 거지, 맞아. 하고 그가 모처럼 나와 어긋나지 않게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 보니 그와 나는 어렸을 때 광주천에 가서 물장구를 치고 놀기도 했었다. 생각나? 그때 광주천 물은 조금 깨끗했어. 그가 내게 물었다. 대답을 듣자고 물은 건 물론 아니었다. 그때 광주천 물은 조금 깨끗한 편이었다기보다는 수돗물도 아직 없었고 우물물은 식용으로 겨우 쓰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낮이거나 밤이거나 아침이거나 저녁이거나 광주천에 가서 물장구를 치고 놀고, 엄마나 누이들은 낮이거나 밤이거나 아침이거나 저녁이거나 광주천에 가서 빨래를 했다. 에이, 그건 아니잖아. 어쩌다 한 번씩 갔었지. 그가 정정했다. 나무라는 뜻은 없었기 때문에 나무라는 표정은 아니었고, 나무라는 뜻은 없었기 때문에 나무라는 어조는 아니었다.
그랬었나? 나는 안경을 눈썹 위쪽으로 밀어 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는 네가 잘 안 보여. 눈이 시려. 아니 눈이 흐릿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니까 심상하게 말했다. 안경을 눈썹 위쪽으로 밀어 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면서 네가 잘 안 보여, 눈이 시려, 아니 눈이 흐릿해 하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니까 심상하게 말하자 그는 왜 학교에선 우리에겐 방학 때 강의료를 한 푼도 안 주는 거지 하고 심상하게 말했다. 글쎄. 나도 까닭을 잘 모르겠어. 학생들한테는 방학에도 등록금을 받잖아. 방학 때도 전임들과 직원들은 월급을 받겠지? 설마 그들도 우리처럼 한 푼도 안 받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튼, 만해마을은 언제 갈 건데? 이번에는 그가 조금 진지하게 물었다. 만해마을? 나는 무심하게 말했다. 만해마을을 가긴 가야 해.
아마 내 기억이 흐릿하지만 않다면, 아니 흐릿하더라도 내 기억에 만해마을은 작년 여름에 가 본 것도 같다. 내 차를 운전하고 갔다. 아니라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서 다시 원주를 거쳐 만해마을로 들어가야 할 것이었다. 아니라면 버스나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가서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원주를 거쳐 만해마을로 가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해마을에 가기 전에 들러서 만나 봐야 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나기는 한 거야? 친구가 물었다. 만났지, 그럼. 나는 대답했다. 그래, 나는 그 사람을 만났다. 단번에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안동에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안동에 살고 있다는 말을 안동이 고향인 어떤 사람에게 얼핏 들었었다. 그래서 나는 만해마을에 가는 길에 안동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보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동에 살고 있다는 말을 전해준 그 사람은 안동에 살고 있다는 그 사람을 직접 아는 게 아니었다. 그럼 중간에 누가 있었구먼. 월하노인도 아니고 누구였던 거야? 그는 대답을 꼭 듣고 싶은 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물었으나 꼭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경산에 있는 어떤 이가 안동에 있는 그이의 친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만해마을에 가기 전 안동에 들르기 전에 경산부터 가야 했다. 그래서 차를 운전하고 간 것이었다. 아니라도 나는 기차나 버스보다는 내 차를 직접 운전하고 여행하기를 좋아했다. 그게 좀 더 편했다. 기차는 좌석이 비좁았다. 내 몸은 넉넉한 편이 결코 아니지만 어쨌거나 기차 좌석은 지나치게 비좁았다. 더구나 옆 좌석에 여자가 앉거나 아니라도 남자가 앉아 있으면 여간 괜찮지 않았다.
버스의 경우는 더 고약했다. 언젠가 오래전 겨울날,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날씨가 추웠을 것이다. 겨울이니까 당연히 추운 것이고 여름이니까 당연히 더운 것인데도 사람들은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를 못 견뎌 했다. 나는 겨울에 춥다거나 여름에 덥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여름이니까 덥고 겨울이니까 추운 것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죽여 버리는 일이 더 끔찍하고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래도 네가 한 짓은 조금 위험한 일이었어.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질책의 의도는 역시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질책하는 일이 없었다. 서로를 질책하거나 나무라거나 섭섭해 하거나 그래서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래, 그건 내가 조금 위험했어. 나는 모처럼 순순히 말했다. 고속버스 실내는 지나치게 온도가 높았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내의를 입고 있었다. 웃옷은 아니고 아래만 입고 있었는데, 겨울이었기 때문이었다. 밤이었고, 좌우 옆 좌석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잠이 들었거나 눈을 감고 잠든 체했거나 눈을 감고 생각을 하거나 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바지를 벗고 속내의를 벗고 다시 바지를 입었다. 속내의를 뚤뚤 뭉쳐서 의자 아래 구겨 넣었다. 지나치게 실내 온도가 높아서 곧 숨이 막혀 죽을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려나 그런 것은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으나 위험한 일이긴 했다. 좌우 옆자리의 누군가가, 눈을 감고 잠이 들었거나 눈을 감고 잠든 체했거나 눈을 감고 생각을 하거나 하고 있던 옆자리의 누군가가 그런 나를 봤다면 아마 나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너도 그 건 할 일이 아니었잖아. 나도 그에게 질책의 마음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은 채 말했다.
그래, 그건 내가 조금 위험했어. 그는 순순히 말했다. 언젠가 나의 친구는 금남로 3가 옛 가톨릭센터 건물 뒤에 있는 골목으로 밥을 사 먹으러 간 모양이었다. ‘복순이네’라는 매우 소박한 간판을 달고 있던 청국장집에서 그는 얼큰 청국장을 가끔 사 먹었다. 문제는 그 골목이 워낙 비좁아서 차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었다. 작은 주차장들이 더러 있었으나 유료 주차장에 차를 두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친구는 청국장집 건너 비좁은 공간에 차를 두었다가 다시 차를 빼내면서 청국장집 바로 옆에 있는 돼지국밥집 가마솥을 건드리거나 받아버린 게 아니라 그 돼지국밥집 가마솥 아주 가까이에 차의 앞범퍼가 닿을 듯 말 듯했나 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허, 친구는 잠시 말을 잃었다. 좀체 드문 일이었다. 분노가 일렁거리는 어조로 그가 입을 열었다. 그 청국장집 바로 옆에 있는 돼지국밥집 돼지 같은 주인 남자 새끼가 나를 향해 마구마구 욕을 날리는 거야. 아니 마구마구 퍼붓는 거야. 야 이 시발 놈아, 운전을 그따위로 하려면 집에 자빠졌어야지. 나도 차 있어, 이 시발 놈아. 그러네, 그 참 돼지 같은 새끼네. 가마솥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가마솥 아주 가까이에 차의 앞범퍼가 닿을 듯 말 듯했다면서 겨우 그걸 가지고 지랄을 할 건 뭐야. 나도 덩달아 분노의 마음이 생겼다.
친구는 아주 깜깜한 밤중에 그 돼지국밥집으로 갔다. 자정이 지난 시각이었고 금남로는 이제 예전처럼 밤도 낮 같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더구나 뒷골목이었다. 친구는 낮에 마켓에서, 그것도 집에서도 멀고 그 돼지국밥집에서도 먼 곳으로 일부러 가서 계란 한 판을 샀다. 그러고는 그 돼지국밥집 간판과 굳게 닫힌 옛날식 양철 문에다 계란 한판에 들어있는 계란들 모두를 스트라이크로 던져주고 왔다. 시원했어?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아니, 기분이 별로였어. 그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러게. 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 돼지국밥집 주인 남자는 가마솥을 건드리거나 받아버린 게 아니라 그 돼지국밥집 가마솥 아주 가까이에 차의 앞범퍼가 닿을 듯 말 듯하게 차를 뺐던 사람이 100킬로그램에 육박하거나 키가 180센티미터 가까이 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형편없이 막되게 굴지는 못했을 것이다. 친구와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있는 자들은 교묘하게, 없는 자들은 티 나게 못된 것들 천지라고 우리는 종종 의기투합했다.
아무튼, 우리는 별로 괜찮지 않은 과거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고 사실은 나도 친구도 모르는, 그래서 나와 친구 혼자서만 알고 있는 얼룩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각이 다르다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죽여 버리는 일이 더 끔찍하고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체 만해마을은 언제 가는 거야. 그가 잊었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아, 만해마을. 안동에 갔었어. 아니 그 전엔 경산에 갔어. 나는 경산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애초에 경산에 사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안동에 사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될 것이었다. 구태여 대구에서 부산방면으로 가야 하는 고속도로를 타고 경산까지 가야 할 일은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경산에 사는 사람 역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경산에 사는 사람은, 그러니까 여자였다. 물론 안동에 사는 사람도 여자였다. 그러니까 그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만나러 가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사람을 좋아해야 하는가? 나는 그 까닭을 아직까지 알지 못했다.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도 그랬다. 우리는 다만 우리를 좋아할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라는 그 범주를 싫어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가족, 우리 학교, 뭐, 그런 우리가 수식어로 붙는 낱말을 싫어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라는 금을 긋는 순간 우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밀어내고 혐오하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경산에서 만난 그 사람은 어땠어? 우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낱말들을 다 같이 좋아하지 않는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가 아주 약간의 호기심을 나타냈다. 그런데 너는 발기가 잘 안 된다면서? 언제부터 그런 거야? 그가 두 개의 질문을 한꺼번에 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경산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에 대해 그가 흥미를 갖고 있구나 싶어서 나는 달떴다. 아니 들떴다. 남자 친구 사이에 달뜰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 것이고, 그뿐 아니라 나는 언젠가부터 발기부전증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발기부전과 경산에서 만난 사람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어. 그래? 그럼 왜 갔어? 이번에는 그와 내가 서로 묻고 답하는 것이 엇갈렸다. 아무려나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경산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났다.
업그레이드가 안 된 내 차의 내비는,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었으나 제조사가 부도처리 돼서 이젠 더 이상의 업그레이드가 안 되는 내 차의 내비는 가끔 엉뚱한 도로를 빙빙 돌게 하는 괜찮지 않은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가르쳐 준 주소를 입력하고 경로 안내를 시작한 지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그녀가 가르쳐준 주소지는 아직 가까워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금방은 약 8.9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다시 13.2킬로미터로 멀어졌다가 다시 7.5킬로미터로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산의 그녀를 만나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얼마간 난감했다. 그녀도 나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처음 그녀의 모바일 주소를 알려주던 사람은, 아니 사실은 그녀의 모바일 번호를 알고는 있었으나 바로 번호를 내게 알려주지 않고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동의를 구했던 그 사람도 내게 그런 의미의 말을 조심성 없이 했던 것이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그녀를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데요? 그분이 묻더라고요. 뭐하러?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하고 말이죠.
그러니까 경산에 산다는 그녀는 그해 봄 대학생이었다며? 무용을 전공하는. 응, 친구가 묻고 내가 선선히 답해 주었다. 그랬다. 경산에 산다는 그녀는 그해 봄 대학생이었다.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친구와는 달리 그리고 경산에 산다는 그녀와는 달리 제 나이에 공부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의지라거나 내 뜻이라거나 내 마음이 아니었다. 다만, 사정과 형편이 그랬다. 아무튼, 나는 그해 봄, 대학생은 아니었다. 대학생이 아니어서 다행이기도 했고 다행이 아니기도 했다, 괜찮기도 했고 괜찮지 않기도 했다. 친구는 대학생이어서 다행이기도 했고 다행이 아니기도 했다. 괜찮기도 했고 괜찮지 않기도 했다. 경산에 사는 그녀도 대학생이어서 다행이기도 했고 다행이 아니기도 했다. 아무튼, 경산에서 그녀는 작은 카페를 하고 있었다. 무용이 아니고? 친구가 약간 놀라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무용은 그해 봄 무렵에 하고 있었고, 지금은 나이가 얼만데. 하긴 내 나이가 얼만데. 친구가 풀 죽은 소리를 했다. 네 나이가 어때서? 아니, 내 나이가 어때서? 그래, 얼마 있으면 죽을 나이지, 우리 나이가. 아냐, 아직은 아니지. 우리는 다시 서로의 말 사이로 말을 섞느라 서로의 말이 다소간 어긋났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카페는 조그마한 규모였다. 다탁이 네 개쯤 있었고, 기다란 한쪽 탁자 위엔 책들이 많이 있었고 벽 쪽에 피아노가 있었는데, 삼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일어나 나를 맞았다. 어머니를 찾아오셨군요? 그가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 말했다. 우선 저 고분군 쪽으로 걸었다 오실까요? 젊은이의 조금 어색하게 정중한 말투였다. 나는 조금 어색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만 안동을 거쳐 만해마을에 이르는 여정에서 경산을 잠시 들른 것뿐이었다. 더구나 나는 박물관의 학예사도 연구소의 연구교수도 아니었다. 다만, 한때 그해 오월의 현장에 있었고, 잠시 체포되어 있다 나온 후 무엇을 해야 옳은가 하는 문제로 고민을 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다만 나는 안동을 거쳐 만해마을에 이르는 여정에서 경산에 잠시 들른 것뿐이었다. 만나고 싶기는 했다. 그해 봄, 광주가 피바다로 변했을 때, 체포를 피해 부산으로 숨어든 대학생이 있었다. 나는 그때 대학생이 아니었으므로 그가 나는 아니다. 그럼 친구인가? 너였어? 나는 웃지도 않고 물었다. 친구는 웃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카페 바로 인근에 경산 조영동 고분군이 있었다. 신라 인근에 자리 잡고 있던, ‘압독국’을 지배했던 이들의 무덤들이었다. 규모가 굉장했다. 네댓 개씩의 무덤이 연달아 있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택지를 조성하다가 발굴된 고분군으로 근동에는 고분에서 나온 사기그릇이나 주전자와 같은 유물들이 집집마다 가득하다고 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짧게 언급되고 있으나 우리 역사에서 사실상 제외된 역사라는 설명을 하면서 젊은이는 약간 상기되는 표정이었다. 이 고장에서 태어나서 이 고장에서 살아간다는 자부심이 얼마간 있나요? 나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살아간다는 자부심이 얼마간 있나요? 젊은이가 내게 되물었다. 넌 어때?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살아간다는 자부심이 얼마간 있어? 나는 영랑시를 연구해서 박사가 된, 그러나 십 오 년 넘게 시간강사로만 있는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에게 쓸쓸하게 물었다. 넌 어때?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살아간다는 자부심이 얼마간 있어? 만해시를 연구해서 박사가 된, 짧은 기간 초빙교수를 했으나 결국은 십 년 동안 시간강사로만 있는 그의 유일무이한 친구인 내게 그가 쓸쓸하게 물었다.
경산에서, 젊은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내기란 마음고생이 좀 있겠네.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나야 알 까닭이 없었으나, 경산은 경상지역에서도 지역 감정이 매우 심한 고장이라고 젊은이가 침울하게 말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경산 지역은 말이 튼튼하고 장정들이 용감했던 모양이었다. 김유신이 백제를 치고 고구려를 칠 때 이 지역 장정들을 훈련시켜 맨 앞에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아주 매우 오래전의 일이 아닌가. 더구나 신라에 점령당한 지역의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신라는 적이 아닌가. 아닌가? 신라를 자꾸 건드렸던 백제 사람들이 적인가? 아무튼, 이상도 하지. 이 지역과 그 지역이 그 지역과 이 지역이 상대에게 괜찮지 않은 감정을 가질 까닭이란 대체 뭘까? 전쟁은 항상 늙은이들이 일으켰다. 젊은이들만 전장에 나가 죽었다. 그 죽은 젊은이들의 자손과 후손인 각각의 고장에서 태어나고 각각의 고장에서 자라고 각각의 고장에서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왜 상대지역의 사람들에 대해 괜찮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 우리는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만해를 연구해서 박사가 된 나나 영랑을 연구해서 박사가 된 친구나 우리는 그 까닭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다가 일어나 정중하게 나를 맞았던 경산의 젊은이는 꼭 한 번 광주에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두꺼운 손을 쥐고 흔들었다. 광주는 그래도 싸워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장소가 아니냐고, 그가 그랬다. 그렇구나, 우리는 어쨌거나 총을 들고 싸워 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고장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피아노를 치다가 일어나 정중하게 나를 맞았던, 꼭 한 번 광주에 가 보고 싶다고 말했던 경산의 젊은이가 내게 깍듯했던 까닭은 그러니까 어쨌거나 총을 들고 한 번은 싸워본 고장에서 내가 왔기 때문이었다. 그도 내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넌 그해 봄, 정말로 진짜로 총을 들고 싸우기는 싸운 거야? 내가 정말 알지 못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아니, 알잖아? 나는 총 쏘는 법도 몰라. 배운 적도 없어. 그런데 어떻게 무슨 총을 들고 싸워. 그가 여전히 무심한 듯 말했다. 내가 그를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로 여기는 까닭은 그가 어떤 경우든 그 무심함을, 그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물론 오래전 금남로 3가 옛 가톨릭센터 뒷골목 돼지국밥집에 밤중에 가서 계란 한 판을 던지고 온 것 말고는 그랬다. 그해 봄 광주교도소 창고에서도 비슷한 일이, 그러니까 그 무심함을, 그 평정심을 잠시라도 잃었던 적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낮과 밤과 다시 낮에 그리고 밤에 아침과 저녁에 저녁과 아침에 죽어 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도시와 도시 변두리에서 낮과 밤과 다시 낮에 그리고 밤에 아침과 저녁에 저녁과 아침에 죽어 나가고 있었다. 불시에 들이닥친 군인들의 조준 사격에 피를 내뿜으며 나무토막처럼 쓰러져가고 있었다. 박달나무 몽둥이에 맞아 머리가 으깨지기도 했고, 예리한 칼에 복부가 쓸려나가기도 했다. 오랫동안 소식을 몰랐던 그와 나는 아주 우연하게도 광주교도소 창고 안에서 다시 만났다. 누가 먼저 체포되고 누가 먼저 끌려와서 누가 먼저 곤죽이 되도록 매를 맞고 창고 안 흙바닥 위에 쓰러져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데모를 한 게 아닙니다. 그는 묵사발이 되도록 맞으면서도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럼 뭐야 이 새끼야? 데모를 한 것도 아니고 데모를 사주한 것도 아니라면 그럼 네가 한 짓은 뭐냐고? 구둣발과 몽둥이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그래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그는 나는 데모를 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럼 뭐 했니, 이 새끼야? 구둣발과 몽둥이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그래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나 역시 그에게 마음속으로 물었다. 그냥 무서워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정말이라고요. 그는 정말인 것처럼 말했다. 이 새끼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먼. 그는 끝까지 데모를 한 게 아니고 그냥 무서워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끝없이 구둣발과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고, 그래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다시 쓰러지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몸피 못잖게 약골의 체구인 그가 그 독한 매질에도 버티고 있는 것을 나는 정신이 돌아왔다 다시 잃었다를 반복하며 듣고 보고 있었다. 그것은 참 곤란하고 곤혹스럽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한편 슬픈 일이었다.
정말이었다고. 물론 총을 들고 싸운 사람도 있어. 총을 들고 싸우다가 죽은 사람도 있어. 총을 들고 싸우다가 다친 사람도 있어. 총을 들고 싸우다가 도망간 사람도 있어. 총을 들고 싸우다가 잡혀 온 사람도 있어. 그러나 다 그랬던 건 아니잖아? 물론 돌을 들고 싸운 사람도 있어. 돌을 들고 싸우다가 죽은 사람도 있어. 돌을 들고 싸우다가 다친 사람도 있어. 돌을 들고 싸우다가 도망간 사람도 있어. 돌을 들고 싸우다가 잡혀 온 사람도 있어. 그러나 다 그랬던 건 아니잖아? 그런데 다 총을 들고 싸우다가 죽었고 다 총을 들고 싸우다가 다쳤고 다 총을 들고 싸우다가 잡혀 들어갔다고 하면 안 되잖아? 다 돌을 들고 싸우다가 죽었고 다 돌을 들고 싸우다가 다쳤고 다 돌을 들고 싸우다가 잡혀 들어갔다고 하면 안 되잖아? 그가 여전히 그 무심함과 그 평상심을 잃지 않고 말했다.
나는 조금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무언가 괜찮지 않은 느낌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개별적 상황은 다 다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총을 들고 혹은 돌을 들고 싸우다가 죽거나 다치거나 잡혀갔거나 그런 건 맞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집에 돌아가다가, 도망가다가 죽거나 다치거나 잡혀간 것도 사정은 다르지 않잖아? 아니, 그건 아니지. 우리라고 하지 말고 ‘나는’이라고 해야지. 이번에는 그가 얼마간의 그 무심함과 그 평상심을 잃은 듯한 표정과 어투로 말했다. 그런데 경산에서는 어땠어? 내 친구는 내가 내 친구의 얼굴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말이야. 난 네 얼굴이 자꾸만 흐릿하게 보여. 나는 안경을 눈썹 위로 밀어 올리며 근심 어린 표정과 어투로 말했다. 괜찮아. 말해봐. 경산은 어땠어?
경산에서는 그 여인을 만나지 못했다. 다른 데에서 만난 것도 아니었다.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정중하게 나를 맞이한 그 여인의 아들은, 어머니께서 지금 나를 만나기는 어려운 모양이라고 어렵지 않게 말을 했다. 그렇기는 할 것이었다. 그 여인은 그러니까 경산으로 오기 전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아니 다니고 있었다. 그해 봄, 광주에서 체포를 피해 숨어든 남자대학생을 그녀는 부산에서 만났다. 운동은 무용밖에 할 줄 몰랐던 여인은, 아니 그때는 그녀도 아직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누군가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 남자 대학생을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 숨겨주었다. 그녀가 세든 작은 아파트는 방이 두 개짜리였고 화장실은 하나였고, 무엇보다 그와 그녀는 어쨌거나 젊디젊은 청년이었다. 그녀는 그의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그는 곧 체포되어 광주로 이송되었고, 단식으로 저항하다 끝내 죽고 말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가 침울하게 말했다. 그런데 넌 괜찮아? 너도 발기부전이라며? 나는 정말로 걱정이 되어 물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라도 발기부전이었던 것이다. 발기부전은 골다공증과도 관계있고, 당뇨와도 관계있고, 복부비만과도 관계있고, 흡연과도 관계있고, 스트레스와도 관계있었으므로 나와 친구는 그러니까 이런 경우 우리는 모두가 발기부전이었던 것이다. 응, 괜찮아. 쓸 일이 없으니까.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는 아이가 없다. 아내도 없다. 집도 없다. 부모도 없다. 형제도 없다. 네가 백석이니? 한번은 내가 짜증을 내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는 영랑시를 연구해서 박사가 되었고, 십오 년 동안을 시간강사로 지내고 있다. 아이가 있고 아내가 있고 집이 있고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는 나는 만해시를 연구해서 박사가 되었고, 짧은 기간 초빙교수를 했으나 결국 십 년 동안 시간강사로 지내고 있다. 죽지 않고 살아내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단 한 푼의 강의료가 들어오지 않지만, 그래도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내고 있다. 경산의 그 여인 이야기를 더 해 줘. 친구가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애원하듯 말했다. 나는 친구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그래, 하고 말했다. 그러나 더 할 말이 없었다. 그 여인에 대해, 그 여인이 그해 겨울, 아이를 낳기 위해 그 아이의 아빠 고향인 광주를, 처음으로 오던 날 마침 폭설이 내렸다던가, 지원동인가 소태동인가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탯줄을 자르고 그런 다음 그 동네, 무등산 증심사로 가기 전에 건너야 하는 작은 돌다리, 배고픈 다리 근처에 유난히 많았던 보육원 중에 어느 한 곳에 핏덩이를 맡기고 나오다가 어느 팥죽집에 들어갔다는 것. 그런 이야기들을 나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여인은, 처음으로 팥죽에 노란 설탕을 넣어서 먹어보았다고, 그 달달한 팥죽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울음 울지도 않고서 말했다. 전라도에서는 왜 팥죽에 설탕을 넣어 먹는지, 지금도 팥죽에 설탕을 넣어 먹는지, 언젠가 한 번은 다시 그 사람의 넋이 있는 그곳에 가서 뜨거운 팥죽에 노란 설탕을 넣고 그것이 잘 녹도록 휘저어서 후후 불어가면서 한 그릇 가득 먹고 싶다고, 그렇게 울음도 울지 않으면서, 먼 길 온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여인은 차마 나를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연구소의 연구교수도 아니고 더더구나 광주의 특사도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한번은 싸워본 고장에서 온 사람이었다. 내가 경산에서 그 여인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안동을 거쳐 만해마을을 향해가던 밤길에서 나는 그런 내용의 그녀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아무리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지만, 나는 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그 여인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봐, 우리 팥죽 먹으러 갈까? 아니 먹으러 가자. 뜨거운 팥죽에 노란 설탕을 넣어 그것이 잘 녹도록 저어서 훌훌 불어가며 우리 뜨거운 전라도 팥죽 먹으러 가자. 그래, 가자. 그런데 지금은 여전히 낮인가, 저녁인가, 밤인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으나 시야가 뿌예져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다만,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의 손은 따뜻했다. 아니 따뜻했다기보다는 축축했다. 그는 막 설거지를 마친 사람처럼 손이 축축했다. 다한증이었다. 앞으로는 커피 말고 칡즙을 마셔. 내가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면 귤껍질을 불에 구워 가루를 낸 다음 한번에 3그램 정도를 따뜻한 물에 타서 마셔. 만해시를 연구한 논문에는 그런 내용이 없던데? 영랑시를 연구해서 박사가 되었으나 십오 년 넘게 대학의 시간강사로 있는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가 표정 없이 말했다. 바깥은 아직 여름이 물러간 것도 아니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도 아니어서 그냥 밋밋했다. 그냥 밋밋하다고 느낀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만해 생각을 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될 수 있을까. 아니,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들불처럼 번질 수는 없을까.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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