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蠶室)
“조선시대 누에를 쳐서 비단실을 뽑는 養蠶(양잠)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중국에서도 이 蠶室(잠실)이라는 단어의 우선적인 새김은 우리와 같다. 명주실을 뽑기 위해 누에를 키우는 곳이다. 그러나 그 다음 뜻으로 넘어가면 아주 아연해지기 십상이다. 후에 번진 2차적인 새김이 바로 남성의 생식기를 자르는 宮刑(궁형)과 동의어로 발전하니 말이다. 이 말이 궁형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사람들의 입에 본격 오르는 데 기여한 사람은 바로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司馬遷(사마천)이다.…그는 저서『史記(사기)』를 통해서 중국 역사의 系譜(계보)를 세웠다.…그가 스스로 남긴 한 문장에서 “나는 (강제로) 잠실에 들어가 앉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궁형을 당했다는 고백이다.…사마천은 황제에게 괘씸죄를 얻어 궁형을 당했고, 그가 몸을 가까스로 추스른 곳이 누에를 키우는 잠실이었다.“ --- p.51~55
합정(合井)
“이곳은 천주교가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생겨난 무수히 많은 순교자들의 자취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합정동 구역 안에 절두산 성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천주교의 지향을 따랐던 조선의 많은 사람들이 숨졌고, 그를 이끌었던 외국인 선교사와 주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원래 이곳에는 한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형을 집행하는 장소였다. 그것도 극형이었다. 머리를 베는 斬首(참수)의 형벌이 벌어졌던 곳이다.…사람의 목을 베는 사람을 우리는 ‘망나니’라고 한다.…한자어는 ?子手(회자수)다. ‘끊다’, ‘자르다’, ‘잘라내다’의 새김을 지닌 ?(회)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그 대상이 사람의 목이라는 게 문제다.…합정동에도 그런 망나니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던 모양이다. 지금은 동명으로 변했지만, 원래 이 合井(합정)은 한자로 蛤井(합정)이었다고 한다. 원래 이름 앞의 한자 蛤(합)은 ‘조개’를 가리킨다.…그래서 얻은 이름이 조개우물, 즉 蛤井(합정)이었다고 한다.…사람의 목을 베는 망나니들이 이 우물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잔인한 형벌 끝에 제 칼을 씻는 물을 이곳에서 길어 올렸고, 형을 집행할 때 입에 물었다가 ‘훅’하고 뿜어내는 물도 이곳 우물에서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가비 우물’이라고 해도 좋을 아름다운 우물 이름에 ‘망나니’라는 험악한 이미지가 곁들었던 것이다.” --- p.190~192
아현(阿峴)
“아현이라는 이름이 어떤 유래를 타고 흘러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했는지를 두고서는 설이 여럿이다.…먼저 지금 아현이라는 이름의 순우리말 명칭은 애오개, 아기고개, 애고개, 애우개 등이다.…이 고개는 큰 고개 사이에 끼어 있다는 지형적 이유로 ‘작은 고개’라는 의미의 ‘아이 고개’ 또는 ‘애고개’, 나아가 애오개, 애우개 등의 이름을 얻었다는 설명이 있다. 실제 아현동에서 볼 때 남쪽의 만리동 고개는 매우 가파르고 고개의 몸집도 크다. 그런 만리동 고개, 즉 ‘만리재’와 서북쪽으로 신촌을 향하고 있는 큰 고개, 즉 大峴(대현)이 아현동을 감싸고 있다.…옛 조선의 서울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운구해 사대문 밖으로 옮겨 매장을 했는데…광희문과 서소문은 줄곧 시신이 빠져나가는 문이라는 뜻의 屍口門(시구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실제 지금 아현동 산7번지 일대에는 조선시대 아이들만을 매장토록 한 兒?(아총)이 있었다고 한다.…풍수로 설명하는 내용도 있다. 사람들은 인근의 산들이 이루는 지형이 아이가 부모 품을 떠나 막 도망치려는 모양새와 닮았다고 여겼고, 도망치는 아이의 발을 묶어두기 위해서 이곳에서 애를 달랜다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이다.” --- p.163~165
뚝섬(독도, 纛島)
“이름이 다양하게 발전했던 곳이다.…이성계가 쏜 ‘화살(箭)이 차일 기둥을 꿰뚫다(串)’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 곧 ‘살(箭) 곶이(串)’이며, 아예 한자 이름으로는 그냥 箭串(전관)이라고도 적는다.…아주 낯선 한자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纛島(독도)다.…앞의 纛(독)이라는 글자는 커다란 깃발을 가리킨다. 주로 임금의 행렬 앞에 세우는 크고 장엄한 깃발이다. 아울러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의 대열이나 그 지휘소 앞에 세웠던 깃발이다.…뚝섬에서 벌어지는 군사훈련 등을 보려는 임금의 행차를 위해 정자인 聖德亭(성덕정)을 지금의 성수동 자리에 지었다는 점도 말했다. 그런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깃발이 纛(독)이었고, 임금의 행렬이 자주 이곳을 찾으면서 지금 뚝섬에는 언젠가 ‘임금의 깃발이 닿는 섬’이라는 뜻의 ‘纛島(독도)’라는 한자 이름이 붙었으리라는 추정이 있다. 그런 한자 명칭은 어느새 다시 발음하기 편한 우리식의 ‘뚝섬’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p.94~95
서초(瑞草)
“이곳에 서리풀이 무성했다고 한다. 사전 등을 찾아봐도 서리풀이라는 이름을 단 식물이 좀체 눈에 띄지 않으니, 아무래도 서리 맞은 풀을 가리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서리풀을 한자로 적으면 霜草(상초)라고 한다.…霜草(상초)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그저 ‘서리 맞은 풀’, ‘시든 풀’이라는 뜻이다. 딱히 특정할 수 있는 어떤 풀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대기가 차가워져 서리가 나타나는 무렵에 찬 기운을 띤 서리를 맞아 시들어가는 풀 전체를 가리킨다고 봐야 하겠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 서리풀이 한자 霜草(상초)라는 이름으로 전화했다가, 이제는 상서로운 풀이라는 뜻의 한자 瑞草(서초)로 바뀌어 지금의 동명과 역명을 이뤘다는 설명이다.…서초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牛眠山(우면산)이다. 말 뜻 그대로는 ‘소(牛)가 졸고 있는(眠) 산(山)’이다.…풍수적으로 소가 잠을 자는 모습의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관직에 있으면 승진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떼돈을 벌게 한다는 곳이다.…그런 풍수야 믿는 사람만 믿는 이야기지만, 옛 동양사회의 풍파 많았던 사람들 삶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서리풀을 霜草(상초)로 전환했다가, 다시 상서로운 풀이라는 瑞草(서초)라는 이름으로 바꿔 불렀던 그 저간의 한구석에는 상서로움에 올라타려는 간절한 염원이 섞여 있을 테다. 그런 동네에 ‘소 잠든 모습의 땅’이라는 우면산의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
--- p.282~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