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군은 일종의 농민봉기지만, 배경에는 종교적이기까지 한 비장감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전투원은 많아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솟아나오듯 배출된다. 아마추어여서 전투 훈련 따위는 없다. 수는 많은데 실전에는 약하다. 조정에 대한 충절 같은 대의명분은 없다. 있다면 종교인데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신념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싸우는 것이니 참으로 가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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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로 전리품은 전쟁에 뒤따르는 축복이었다. 장군들은 미술품을, 일개 병사들도 목걸이 등을 얻어 걸치고 기쁨에 들떴다.
“전리품이 승리한 자들의 몫이 되는 관습을 사람들은 조금도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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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에는 사로잡힌 몸이 된 관우가 매일 밤 유비 부인의 숙소 앞에 서서, 말하자면 불침번을 선 것으로 돼 있다. 조조의 가신들은 이를 흥미 본위로 이상하게 여기면서 몰래 그 모습을 엿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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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나 경극京劇으로 단련된 사람들의 선입관과 대비시키면서 정사적인 생각을 얘기하면, 그게 좀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릴 때 잘못 생각해서 그게 선입관이 돼버리면 머리의 일부로 자리를 틀고 앉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도 그 선입관을 뒤집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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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만 간추려 얘기하자면, 예컨대 ‘적벽 대전’이라는 큰 전투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주전장은 어디였는지, 수십만 명의 눈앞에서 벌어진 그런 전쟁조차 그것을 알 수 없는데, 그 전후에 진중의 깊숙한 곳에서 은밀하게 오고간 노숙과 제갈량의 대화를 어떻게 그토록 자세히 알 수 있겠는가. “실은 이것이 중국 사서의 특질 내지 습관인데, 앞뒤의 사실적 맥락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인물의 발언은 자유롭게 만들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또는 그거야말로 역사가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날조해서는 안 되지만, 등장인물들의 발언은 어차피 누구도 들은 바 없고, 들었다 하더라도 그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할 수 없으며, 어느 쪽이든 이미 모두 죽어버렸으므로 그것은 이미 역사가의 자유재량 범주 안에 놓여 있으니, 연대椽大붓(서까래만한 크기의 붓. 당당한 문장의 비유)을 휘갈기며 화려한 발언을 창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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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가 남긴 것은 일차적인 역사 사료이고, 부수된 주해는 아무래도 이차적으로 해설자의 주관이 들어간다. 배송지의 주해는 극력 그것을 피하려 하고 있고, 일차적인 사료마저 넘어서서 사실에 육박하려는 대학자의 작업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해로, 미심쩍은 주까지 주워담았는데, 역사란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제각각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전제만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창조적으로 해석해도 좋지만, 다만 새로운 견해를 덧붙일 때는 익명이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 해석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이해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선인들의 해석을 알게 됐을 때 역사는 추리소설보다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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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거기에 신辛이라는 남자가 운영하는 술집이 있었고 그 집에 매일 술을 마시러 가는 노인이 있었다. 돈을 내지 않았지만 신은 싫어하는 기색도 없이 말없이 술을 마시게 해주었다. 어느 날 노인은 술값 대신이라며 가게 벽에 황색의 학 그림을 그려주고 갔다.
그런데 손님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자 벽에 그려진 학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게 아닌가. 이것이 큰 화제가 돼 손님들이 점차 늘었다. 10년 정도 지나 노인이 다시 그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피리를 불자 흰 구름이 피어올랐고 벽 속의 학이 거기에 훨훨 내려앉았다. 노인은 그 학을 타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신은 그 뒤 누각을 짓고 ‘황학루’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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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아랫사람에게는 부드러웠고 윗사람에게는 엄격했다. 거기에 비하면 장비는 부하들에게 냉혹할 정도로 엄했다. “사형 처분이 너무 많았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걱정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유비는 형제의 결의를 맺고 전장을 함께 누비면서, 용맹해서 한 사람이 만 명 몫을 한다고들 했던 두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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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이 보이는 장소를 찾아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눈 아래 숲 쪽에서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그 아이는 이가 가지런한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로 남동생을 데리고 있었다. 동생은 한껏 발돋움을 하고 군침을 삼키며 내 그림을 들여다봤다. 케이블카 있는 데로 가는 길 양쪽에는 귤과 자몽 가게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고 회양목으로 만든 빗이 눈에 띄었다. 이 부근이 그 산지인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귤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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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후주後主 유선에게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글을 남겼다. “소신은 성도에 뽕나무 8백 그루와 가족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논밭을 갖고 있습니다. 원정군의 책임자로서 의복 등을 지급받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여분의 재산을 더 쌓아서 폐하의 신뢰를 저버리는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제갈량의 삶의 자세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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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국지』를 읽으면서 아주 먼 옛날 이야기다, 정사라고는 하지만 과거의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발굴된 유적이나 새로 발견된 고문서 등이 정사의 기록을 입증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펄 벅의 『대지』를 읽은 뒤 이 『자야』까지 읽고는 『삼국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간들의 삶이 서로 잇닿아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영웅들의 흥망의 역사라기보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우리들 인간의 역사로 보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