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요절복통, 총천연색 사건 사고 이야기
뚜르드몽드와의 인연도 벌써 몇 해가 되었다. 처음 창간했을 당시, 반가운 마음이 앞섰지만 아직 여행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우리 나라에서 과연 여행 잡지라는 것이 얼마나 먹힐 것인가 걱정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를 비웃기나 하듯, 뚜르드몽드는 그 험난했던 IMF시절에도 폐간없이 버텨 왔고 독특한 컨셉과 허를 찌르는 편집, 풍부하고 색감 있는 화보로 더욱더 세련되어졌다. 뚜르드몽드는 이제 '우리나라 대표 여행 잡지'로 우뚝 섰으니, 그저 뿌듯하고 기특할 따름이다.
여행 잡지를 가까이 하는 독자들은 대개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게다. 정보 획득과 대리 만족, 사실 정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이고, 또 누구를 대상으로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나에게의 필요 유무가 결정되므로, 독자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 앞으로도 나와는 별 인연이 없어 보이는 그 어떤 곳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대리 만족 측면에서의 역할은 서점에서 여행 잡지 쪽으로 손을 내밀게 되는 큰 이유인 것이다.
대리 만족의 기쁨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코너를 꼽으라면 단연코 여행 실수담이나 에피소드를 들겠다. 내게도 얼마든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일, 익숙지 않은 여행길에서 벌어질 수 있는 총천연색 사건 사고 이야기는, 보석처럼 빛나는 해변과 늘어진 야자잎을 담은 근사하기 짝이 없는 그 어떤 사진보다도 더 빨리, 더 가깝게, 독자들의 마음을 여행지로 날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 하다.
나 역시 뚜르드몽드에서 가장 먼저 펼치는 코너가 바로 에피소드 페이지다. 여행 초보 시절, 내가 겪었던 비슷한 실수담에 추억을 되새기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사건에 요절복통 구르다 보면 어느새 런던에, 뉴욕에,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 코너가 한데 묶여 책으로 나왔다. 독자 여러분들도 사건의 주인공들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는 흥미진진한 시간을 즐기기 바란다.
-- 조정연 ( 드래고만코리아 대표이사)
길을 물으려거든 세 번 물어라
홍콩에서였다. 나를 안내한다고 서울서부터 따라온 미국 회사의 직원이 서울로 돌아가는 날 아침 항공권을 분실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태연했다. 돈 내고 산 거고 예약돼 있는데 다시 끊어 달라면 안 끊어주겠어? 노! 천만의 말씀.
서울의 항공권 구입처에 전화 걸어 현지에서 티켓 발부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안되면 홍콩 경찰서에 분실 신고 후 항공사 발권데스크에 찾아가 재발급 받은 뒤 출국해야 하는데 시계를 보니 아뿔싸 그 날은 토요일, 출발까지는 여섯 시간뿐이었다. 더군다나 홍콩섬쪽에 있으니 바다 건너 침사추이로 가서 해결해야 하는데 홍콩의 주말 교통 체증은 장난이 아니었다.
밥 먹다가 말고 일어나 짐 싸서 택시 불러 티켓 재발급 과정을 순서대로 진행시켜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 서울에 무사 귀환했다. 이 친구, 그날 운 좋았다. 내가 옆에 있었기 망정이지 내가 없었더라면 글쎄, 십중팔구는 비행기 놓치고 비싼 호텔비, 식사비 들여가며 일요일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월요일에야 겨우 수속 시작해 화요일쯤에야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을 터.
이런 실수담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꼭지씩 갖고 있다. 왜? 여행이란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예상치 않은 일이 꼭 일어나기 때문. 그래서 이런 격언이 있다.
'출발 전까지는 미우주항공국의 로켓 발사처럼 모든 계획을 꼼꼼히 세워라. 그러나 일단 출발하고 난 뒤에는 깡그리 잊어버려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이니까.'
이런 실수담이 여행객에게는 '채근담'이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는 내게도 언젠가는 돌발할 내재된 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알아두면 만사 오케이다. 남의 실수가 내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여행의 에피소드를 모은책. 그런 면에서 여행자에게는 지도만큼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여행 격언 한 가지 더. '길을 물으려거든 세 번 물어라'. 한두 사람쯤 잘못 알려 주더라도 세번쯤 물으면 개중에는 올바르게 알려 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물어물어 찾아가는 고된 여행길. 다른 이의 실수를 통해 나의 실수를 막는다면 여행길이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 조성하 (동아일보 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