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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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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99쪽 | 554g | 153*224*20mm
ISBN13 9791156341260
ISBN10 115634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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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박옥순
경북 상주의 아름다운 두메에서 태어나, 2000년 대구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환희의 송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88년 단편소설 ‘부활의 노래’로 신라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휘파람새의 선물’, ‘본향’, ‘검은 목련’ 등 다수를 발표했다. 대구소설가협회와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구생명의전화에서 전문가 상담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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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녀가 호명되어 나간다. 궁체로 닉네임이 쓰인 혼백 앞에 그녀는 다소곳이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잃어버린 태아를 부른다.
“아가야, 안녕? 나야, 엄마. 어른들의 잘못으로 처참하게 너를 보내고, 이 엄마는 한순간도 마음 편해 본 적이 없었단다. 잠시 머문 세상에서의 일은 한낱 흉몽이었다고 잊어 주렴. 지금 엄마가 너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미안하다는 말밖에 없구나. 잘못했다 아가야, 정말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내 예쁜 아가야. 이제 조금 뒤면 이 엄마도 네 곁으로 가게 되었단다. 그래도 이 엄마, 모른 척하지는 않을 거지…….”
유서를 거의 읽어 내려갈 때, 그녀는 또 명치가 저려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남편의 말처럼 눈물이 가슴속으로 흐르는 것을 절감한다.

그런데 정작 호박씨만 한 눈을 가리고 보니 오히려 시야가 한 꺼풀 걷히는 느낌이다.
그녀는 비로소 ‘젊은 오빠’(깡패 출신의 닉네임)의 손을 힘주어 잡는다. 고맙다. 험한 길에 그가 있어 안심할 수 있어 좋다. 겉치레에 치중됐던 고정관념이 한순간에 깨지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것은 그녀에게 뜻밖의 수확이다. 삼십여 명의 훈련 행렬이지만 어디에서도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뽀드득뽀드득. 눈길을 딛는 발걸음 소리와 서걱대는 마른 풀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그녀는 평온히 마음이 가라앉았고 파란만장한 지난날을 주마등처럼 돌려본다.

‘젊은 오빠’의 손은 투박하다. 그와 파트너로 정해졌을 때, 그녀는 순간적으로 손을 밀쳐 버릴 뻔했다. 신부와 스님, 교사, 목사 등, 많은 훈련생 중에 하필 점박이 사내라니. 그녀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게다가 사내가 주먹 세계에서 놀았다는 전력과 혐오감을 주는 외모가 구토를 일으킬 지경이다. 하지만 그의 손은 뜻밖에 따뜻하다. 투박한 손을 통해 전해져온 온기는 건장한 체격과 더불어 조금씩 신뢰감을 주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산을 오르면서 비로소 그가 든든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피상적으로 사람을 대했구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옛날 어느 장터에 마음을 찍는 사진기가 있었단다. 유명한 정치가를 찍었더니 돈다발이 찍혀 나왔고, 돈 많은 사업가를 찍었더니, 술과 여자가 찍혀 나왔다. 어떤 남자는 늑대가 되어 나오고, 예쁜 여자는 뱀이 되어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장터에 얼굴이 험상궂은 한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미역을 한 꾸러미 들고 있었다. 틀림없이 무시무시한 흉기가 찍혀 나올 거야! 사람들은 저마다 그렇게 속단했다. 그러나 사내가 사진기 앞을 지났을 때, 방긋 웃는 아기의 얼굴이 찍혔을 뿐 다른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지금 그녀는 ‘젊은 오빠’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다음 시간에는 역할을 바꿔 그녀가 그를 도울 차례다. 그녀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덕을 베풀어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준 일도 없다. 쳇바퀴 틀에 갇혀 정신없이 돌다 보니 시야를 들어 앞을 바라볼 틈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호박씨만 한 눈을 가리고 보니 오히려 시야가 한 꺼풀 걷히는 느낌이다.
---「겨울 광시곡」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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