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회창 '대세론'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굳히기'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흘러나온다. 이회창 총재는 최근 '표정 관리' 하기에 바쁘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각 당의 후보가 결정된 상태도 아니고, 어떤 후보가 출마해 어떤 식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아가 충분히 예고되는 악재와 예측 불가능한 돌발 변수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더 나아가 대선이 아직도 1년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저마다 심각한 표정으로 '굳히기'를 이야기하니 이처럼 재미있는 풍경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 글은 10·25 재보선이 있기 이전에 이미 완성한 글로서 주요 내용은 이회창 대선 가도 아킬레스건 등 이회창 대세론의 허와 실에 관한 것이다. 이와 함께 대세론을 유포시켜온 세력들이 종국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본질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무엇보다 예비 후보자들의 '자질론'이 화두가 되어야 할 시점에 '대세론'만이 횡행하는 풍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을 더욱 상승시킨 재보궐 선거가 있기 이전에 이미 글이 완성된 관계로 시점상 효력이 떨어지는 내용도 등장하겠지만, 나는 원래의 이 글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싣겠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독자들께서 끝까지 읽으신 뒤 지금까지 있어 왔던 이회창 대세론에 대한 논의가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
--- 저자의 글 가운데
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가의 중대사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 있어서 예비 후보자들에 대한 자질 검증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는 때로 '검증'과 '비방'을 혼돈 할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생산자와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 양측 모두 이따금씩 그러한 우를 범하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이 결코 독자들에게 단순한 이회창 총재 비방서로 읽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걸 위해 나 스스로부터 최선을 다해 왔다. 그래서 이 책엔 자료 인용이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건 독자들로 하여금 사실성과 신빙성을 갖게 하려는 노력의 한 방편임과 동시에 내가 하는 말에 대한 책임감 차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 p.23
'우리가 남이가'를 '이북이 남이가'로!
끝으로 우리 국민들과 정치인들에게 간곡히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불쑥 튀어나오는 이야기가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다. 나는 이말을 '이북이 남이가'로 대체시켜 주시길 소망한다.
'우리가 남이가'
이건 모든 이성적 논리를 압도시키는 전근대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주의의 망령을 되살려 한국 정치판을 혼탁시키는 죄질이 가장 나쁜 죄질 중의 하나이다. 반미주적 폐쇄회로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파괴시키는 건 물론 이기주의와 패거리주의의 최전선에서 좁은 땅덩어리를 더욱 좁게 만들어버리는 구호가 바로 '우리가 남이가'이다.
그러나 '이북이 남이가'는 다르다.
여기엔 민족에 대한 사랑이 있고 관용이 흐른다. 이성과 감성이 펄펄 살아쉬면서 우리 사회를 보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모든 이기주의와 패거리주의에서 벗어나 '이타주의'의 최전선에서 좁은 땅덩어리를 더욱 웅장하게 확대시켜 주는 구호, 냉전과 분단의 족쇄를 벗어나 조국통일로 나아가게 하는 미래지향적인 구호, 그게 바로 '이북이 남이가'이다. 같은 '남이가'라도 한쪽은 꿈을 좌절시키지만 다른 한쪽은 꿈을 앞당겨준다는 사실, 한번쯤 되새겨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 p.148-149
우리 사회는 이총재에 대한 언급을 좀처럼 하지 않으려 한다. 역으로 지지를 한다면 어떠한 내용과 자질때문에 지지를 하는지 그걸 적나라하게 밝혀주면 좋으련만, 그것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대세론이니 뭐니 그런데에만 온통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이건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 내용을 가지고 활발하게 논쟁하고 토론해야 마땅한 일 아닌가. 왜 이회창 총재라면 한사코 그의 자질론을 회피하려 하는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 이쯤되면 이회창 총재에 대해 뭔가의 말이 나올 시점도 되지 않았을까?
--- 머리말 중에서
반사적 이득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안임을 인정하나 그게 결코 지배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자질과 노력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 그걸 가지고 국민들에게 심판 받고 사랑을 받아야지 언제까지 이와 같은 반감의 정치를 유지해야 할 것인가.
---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