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아이는 심각한 중증 장애아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이후 3년 10개월 동안, 우리 부부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비록 평범하고 건강한 아이는 될 수 없을지라도 때때로 병원에서 나와 집에서 가족과 같이 지내는 날이 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러나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요. 그 어떤 소망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의학적으로 아이가 우리 부부를 엄마, 아빠로 의식할 리 없다고 설명해 주었고, 그것은 나 자신이 책을 읽고 알아낸 정보로도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극적으로 계속하여 노력했습니다. 과연 이런 노력에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요?
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일에 매진하여 쉼 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지금 전 세계 엘리트들이 몸소 실천하는 ‘시간 관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저 ‘시간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겠지요. 의식도 없이 거의 혼수상태에 가까운 아이를 매일 만나러 가는 것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요?
--- p.17~18
세상에는 노력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노력이란 고작 성공한 자들이 하는 빤한 소리다’, ‘어느 세계든 성공하는 건 일부 몇몇 사람으로, 대다수 사람들은 승리의 술잔을 맛볼 수 없다. 따라서 노력 따윈 무의미하다’며 싸늘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재능이 모든 것’이라며 말이지요. 노력이 좀처럼 결실로 이어지지 못할 때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나 역경에 부딪혔을 때는 특히 노력이 얼마나 허무한지 뼈저리게 느끼지요.
그러나 노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기만 해도 지금 보이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 p.21
‘의탁한다’는 것은 정열의 반대로, 모든 것을 수용하고 맡기는 온화한 마음가짐이지요. 숭고한 노력을 실천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추었을 때 노력이 결실로 맺어질 확률은 높아집니다. 즉 올바른 노력은 진심 어린 정열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되어, 온 힘을 기울인 뒤엔 정열을 내려놓고 맡기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그저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고 백 퍼센트 결과가 나올 만큼 이 세상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동안에는 노력에 대해 고작 반밖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과를 맡기는 마음과 숭고한 노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을 때에 믿기지 않는 엄청난 힘이 솟아납니다. (…) 노력과 결과는 결코 일직선으로 연결되지 않는 ‘비선형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노력이 가지는 재미이기도 하고 심오함인 동시에 어려움이기도 하지요.
--- p.29~30
노력해도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노력 없이 빛나는 미래가 찾아오는 법도 결코 없지요.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노력의 필요 여부가 아닙니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삼고,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할 때도, 노력하는 가운데 큰 장벽이나 역경에 부딪혔을 때도 끊임없이 노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 p.42
물론 메달을 따는 게 당연히 좋지요. 그것이 금색이라면 분명 더 좋지요. 시험은 합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요. 회사에서도 출세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지요. 그러나 우리는 제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자신의 운명, 숙명을 짊어지는 가운데 살아갑니다. 숭고한 노력을 하고 그 결과 가령 목표인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해도 스스로 긍지를 가질 만큼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은 ‘훈장’이 됩니다. 바로 거기에 노력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 p.61~62
그러나 ‘자부심’은 자칫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자만심’, ‘교만’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노력과 결과는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요. 아무리 노력해도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련은 느닷없이 닥쳐오지요. 한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갑자기 영광이 멀어져 가지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하루하루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투성이입니다.(…)
그때 자부심은 산산이 부서져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바로 이 시점입니다. 마음이 꺾인 이때가 바로 ‘진정한 출발점’인 것이지요. 그곳에서 분연히 일어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긍지, 자부심은 조금씩 회복돼 갑니다. 이른바 자부심을 상위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엔 결과가 나오든 나오지 않든 최고의 ‘자긍심’이 싹틉니다.
--- p.65
노력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역경에도 끄떡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정면으로 맞서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폭풍이나 격류 속에서 오로지 참고 견디는 노력이지요. 전자는 ‘동적’인 노력이고, 후자는 ‘정적’인 노력입니다. ( …)
시간이 흐르면 이번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무엇이 좋지 않았던 걸까? 왜 나만어째서, 왜……’라는 답도 없는 의문에 갇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사고회로 속을 끝없이 방황하게 되지요. 물론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쩌면 좋지’ 오늘도 내일도 이 생각 속에서 충분히 괴로워하세요. 울고 싶으면 우세요. 슬플 때는 슬퍼하고 괴로울 때는 괴로워하며 발버둥 치세요. 마음껏 말이지요. 나는 이 모든 행동이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p.67~69
역경이나 시련에 처했을 때는 ‘비효율’, ‘비생산성’이야말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 효율은 매우 중요하지요. 그러나 역경 속에서는 비효율과 비생산성이 중요해집니다. 거기에는 부활을 위한 기회, 보물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보물을 찾아내는 노하우는 없습니다. 원래 노하우나 재능으로 쉽사리 극복해 낼 수 있는 건 역경도 시련도 아닐 테니까요.
‘비효율’, ‘비합리’, ‘비생산성’이 마냥 이어진다면 다들 ‘바보나 하는 짓’이라며 놀림거리로 삼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늘 ‘효율’, ‘합리성’, ‘생산성’을 추구하는 자일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아마 젊은 사람의 눈에도 인생의 깊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한 어른일 게 분명합니다. 어린 왕자가 말했듯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요.
--- p.74
때로는 노력을 자랑삼아 내세우며 ‘난 이만큼 하고 있다!’며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기도 하지요. 특히 ‘동적’인 노력을 할 때 이런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노력은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결과로도 이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노력의 대부분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으로,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인생을 걸고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달리 말하면, ‘열심히 했으니 도와달라’는 ‘응석’이나 ‘억지’인 것이지요.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 결과가 아닌 과정을 강조하거나 노력을 자랑으로 삼을 때는 노력하기 싫거나 결과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를 찾는 경우이지요. 이런 노력은 억지 사랑을 구걸하는 것만큼 볼썽사납습니다. --- …) 노력하든 안 하든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력이나 과정은 어디까지나 타인이 평가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게 아니니까요.
--- p.105~106
숭고한 노력을 하는 데 잊어서는 안 되는 다른 한 가지는 기쁨, 슬픔과 잘 지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슬픔을 자기본위로 생각하기 십상이지요. ‘당신은 고생을 해보지 않았으니 내 슬픔을 알지 못한다.’ ‘이토록 노력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보상 받지 못했다. 이 고통을 누가 알까.’ ( …)
슬픔이나 불행을 겨루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요. 그 결과 인생은 온통 변명으로 가득하게 되고 도전정신도, 운명이나 숙명에 도전하는 용기도 그리고 노력이라는 행동도 잃게 되지요. 슬픔이나 불행, 고통을 볼 때는 차라리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괴로운 상황일지라도 ‘나의 고통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슬픔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지 않는 게 중요하지요.
한편 기쁨은 주관적이어도 좋습니다.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에 빠져 있기만 해도 좋지요.
--- pp.114~115 기쁨은 주관적으로 슬픔은 객관적으로)
그렇다면 역경에 처했을 때,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바로 ‘과거의 노력’입니다. 다시 일어서도록 북돋워 주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과거의 동적?정적인 노력과 한 번 부서졌지만 다시 성장하고 진화해 왔다는 자부심과 긍지이지요. ( …) 나는 가정이 무너지고 병에 걸렸던 고교 시절에는 다시 일어서기까지 2년, 그리고 장애를 가진 아들을 낳고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후엔 무려 1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보루였던 자신에 대한 긍지 때문이었습니다.
--- p.137~138
그 아이는 나의 아들처럼 의식이 없었지요. 인공호흡기를 달고 매일매일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어머니는 간병을 위해 거의 매일 병원에 면회하러 왔고, 의식 없는 아이의 머리를 빗겨 주고 침대 옆에서 동화책을 읽어 주었지요. (…) 그 어머니의 따스하고 아름답지만 강인한 삶의 태도에 나는 몇 번이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했지요. 인간이란 이토록 숭고할 수 있는 존재이구나!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해도 사랑을 베풀 만큼 강인하고 아름다운 존재이구나! 그와 동시에 슬며시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기대하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지요. 어떻게 하면 힘든 일을 이토록 담담히 해나갈 수 있을까? 당시 얄팍했던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 어머니는 본디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숭고한 노력, 인생에 대한 태도는 이런 데서 나타나는 것임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 p.147~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