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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 차현호 1

세무사 차현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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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2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228g | 128*188*16mm
ISBN13 9791104906145
ISBN10 110490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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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엎질러졌어.’
현호는 서류 봉투와 USB 그리고 재킷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의지해 로비에서 내렸다. 오늘은 지하 주차장이 아닌 외곽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왠지 음침한 지하는 피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들어가세요?”
“아, 예. 고생 많으십니다.”
눈에 익은 경비가 현호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이유 없이 경비의 시선이 찜찜해서 현호는 짧게 고갯짓을 하고 서둘렀다.
차에 올라타고 키를 꽂았다. 시동을 걸려는데.
띠리리… 띠리리…….
‘젠장.’
친구 강진우였다.
강진우와의 인연은 중학교 3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곱씹어 생각해 보면 너무도 질긴 인연이었다.
현호는 강진우를 나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친구라고 생각했다.
녀석의 집안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고, 녀석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것도 알았지만,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가난으로 얼룩져 버린 현호의 인생에 부잣집 도련님의 존재는 어떻게든 붙잡아야 될 동아줄이었다.
뭐, 녀석이 그렇게까지 그를 개무시한 적은 없었기에 그럭저럭 이어온 관계였다.
첫사랑이 그를 뻥 차고 강진우와 사귀었을 때도… 뭐, 나름 이해했다.
남녀 사이라는 게 그럴 수도 있지.
물론 생각은 이래도 정작 견디지 못하고 군대에 가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강진우를 원망한 게 아니라 속 좁은 자신을 원망한 현호였다.
전역 후 연락 없이 지내다가 종로의 세무사 학원에서 녀석을 마주쳤을 때도, 또 그 녀석이 지금의 아내에게 집적거렸을 때도, 그저 친구의 짓궂은 장난으로 여겼다.
그런데 나중에 친구들에게 들으니 아주 가관이었다.
녀석은 현호를 단 한 번도 친구라 여긴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현호의 첫사랑과 사귄 것도 정확히는 빼앗은 거였다.
녀석이 유일하게 실패한 것은, 현호의 아내를 꼬시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녀석은 그런 새끼였다.
띠리리… 띠리리…….
현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핸드폰이 잠잠해지더니 다시금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여동생이었다.
결국 현호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 왜?”
-오빠, 나 좀 보자.
“옆에 진우 있냐?”
강진우는 현호의 아내는 꼬시지 못했지만, 대신 그의 여동생을 꼬셨다. 물론 그 더러운 인성이 어디를 갈까.
허구한 날 여자, 그리고 폭력…….
현호가 알고 있는 강진우의 세컨드만 족히 다섯은 될 것이다.
-오빠가 진우 씨 아버님 회사 장부를 가지고 있다며?
“뭐?”
현호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USB의 자료.
그래, 이 자료는 강진우의 아버지 회사, 그리고 강진우가 곧 물려받을 회사의 자료였다. 정말 운명이란 게 있는 건지, 그 회사의 온갖 썩은 비리가 기막히게도 현호의 손에 흘러온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잠깐만.
부스럭거리는 소리.
-현호야.
강진우.
“지금 뭐 하는 거냐?”
-그거 너 못 건드려.
“너희들 정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현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시치미를 뚝 떼는 것밖에 없었다.
-현호야… 아니, 형님.
형님은 무슨. 결혼하고서도 한 번도 호칭을 제대로 부른 적이 없는 놈이다.
“할 말 없으니까 끊는다.”
-이거 그냥 넘어가자. 내가 크게 보상할게. 너 혹시 무슨 일 생길까 봐 그래? 걱정하지 마.
“끊는다.”
-너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우리 이혼하는 거 보고 싶어?
날이 선 강진우의 목소리에 현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병신인 줄 아냐? 얼마 전에 신전그룹 본사 사옥에서 신전 법무팀 변호사가 뛰어내린 사건… 그걸 보고도 나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널 어떻게 믿어, 개새끼야!”
-너, 후회한다.
싸늘한 목소리다. 그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후회는… 널 만난 게 후회야.”
현호는 전화를 끊었다. 조수석에 핸드폰을 던져 넣고 키를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윽!”
현호는 갑자기 두통을 느꼈다. 아주 미세하게, 정수리에서부터 전신으로 뻗어나가는 찌릿함이었다.
끼기기긱.
그 와중에도 그는 차 키를 돌렸다. 한데 아주 느릿느릿하다.
모든 것이 느린 세상에 갇혀 버린 느낌이었다.
그런 현호의 눈에 발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파란 불꽃이 들어왔다. 그것은 화염이었다.
불길은 아주 느리게 현호의 다리를 타고, 차 안 가득 퍼졌으며, 차는 크게, 그러나 천천히 공중으로 솟구쳤다. 차창이 깨지고, 엄청난 굉음이 밀려와 현호를 덮친 순간이었다.
‘죽는 건가.’
죽음의 순간, 펼쳐진 과거의 순간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순간순간의 시간의 필름들.
‘안 돼!’
현호는 손을 뻗었다.
눈앞에 빠르게 스쳐 가는 필름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뻗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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