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말여.”
조웅남이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시선이 마주치면서 김경지가 빤히 올려다보자 침을 삼켰다.
‘꿀떡.’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소주잔으로 하나쯤은 넘어간 것 같았다. 김경지는 잠자코 기다렸다.
“거시기 말인디.”
그러면서 그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김경지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다시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녀도 조그맣게 침을 삼켰다. 조웅남이 갑자기 그녀를 노려보았다.
“거시기, 나, 키스혀도 돼야?”
그는 버럭 화가 난 듯 말했다. 김경지는 욱 하고 터져 나오는 가슴속의 바람을 진정시키려고 이를 악물었다. 조웅남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혔고 이마에도 돋아난 땀이 보였다. 자동차 문짝을 뜯어낼 때보다도 더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아, 싫으면 싫다고 혀. 아픈 사람한티 내가 어쩔 사람은 아닝게.”
그가 화난 듯 다시 말했다.
“어쪄? 혀, 허지 마?”
김경지는 이를 악무느라고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녀의 얼굴에도 조그마한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를 내려다보던 조웅남은 김경지가 오줌을 참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오줌 매린 거여?”
조웅남이 얼굴의 근육을 풀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김경지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리둥절한 조웅남의 얼굴을 보자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웃음을 참으려고 눈을 감았으나 이젠 더욱 힘이 들었다. 이를 악물자 얼굴이 새빨개졌고 딸꾹질이 났다.
조웅남은 깜짝 놀랐다. 상체를 반쯤 일으켜 엉거주춤 선 자세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지랄병이나 간질병이 발작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눈을 뜬 그녀는 조웅남의 얼굴을 보았다. 다시 목구멍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으므로 참느라고 눈물이 흘렀다. 조웅남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졌다.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내려다보던 조웅남은 돌아서서 방문을 열었다.
“저.”
당황한 김경지가 겨우 웃음을 멈추고 그를 불렀다. 그는 문짝이 부서질 듯이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김경지는 입술을 깨물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사정없이 두근거리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
“야, 너는 기집애들만 다룽게로 잘 알겄고만.”
조웅남이 입을 열었다.
“너도 비디오를 많이 본담서?”
김칠성은 이야기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멀뚱히 조웅남을 바라보았다.
“비디오 많이 보잖여?”
다시 조웅남이 물었다.
“예, 많이 봐요. 그런데 왜요?”
“음.”
조웅남은 입을 다물었다.
“비디오 좋은 것 빌려드려요? 형님은 홍콩 무술 영화만 보신다면서요?”
“인자 그런 거 안 본다.”
“왜요?”
“그놈의 시키들 줄 달고 날어댕기는 것에 질려 뻔졌다.”
“그럼 어떤 걸 보세요?”
“애정물.”
김칠성은 어금니를 힘주어 다물었지만 콧구멍이 씰룩거렸다.
“야, 연애헐 때 말이다.”
“…….”
“내가 며칠 전에 개 좆 같은 비디오를 하나 보았는디.”
조웅남은 김칠성을 힐끗 보았다.
“그래서요?”
“알아먹지를 못허겄단 말여.”
“왜요, 자막이 없어요?”
“이런, 씨발 놈.”
조웅남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아니라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겄단 말여. 영 찜찜허도만.”
“무슨 장면인데요?”
“거시기, 연애헐 때 웃는단 말여.”
조웅남은 주의 깊게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웃어요? 아아, 그거야, 뭐.”
김칠성이 시답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뭣이 어쩠단 말여? 너도 알어?”
“그거 할 때 웃는 여자도 있고 그래요. 서양 년들은 밑에 깔렸을 때 별짓을 다 하던데요, 뭘. 웃고 고함치고 난리예요, 난리. 그런 비디오 많아요.”
“이런, 씨발 놈이.”
조웅남이 김칠성을 노려보았다.
“왜 이렇게 침을 튀기고 지랄여, 지랄이. 야, 이 시키야. 누가 그것 할 때라고 했어?”
“아니, 그럼 뭔데요?”
욕을 얻어먹자 김칠성도 기분이 상했으므로 곱지 않게 물었다.
“키스헐라고 헐 때 말여.”
“키스하려고 할 때… 말입니까?”
김칠성이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려. 남자가 여자한티 키스혀도 되겄냐고 물응게로… 여자가 막 웃어버렸는디 그것이.”
“비디오에서 그래요?”
“그려.”
“그러고 어떻게 되었는데요?”
“응? 뭣이? 아, 그것으로 끝여.”
“쪼다 같은 자식이구먼.”
“응?
조웅남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병신 같은 놈이 키스하려면 그저 붙잡고 쩍 하고 입을 맞춰 버릴 것이지 묻기는 뭘 물어요? 병신 같으니까 여자가 웃었겠지요, 뭘.”
“응.”
조웅남의 이마에 진땀이 배어 나왔다.
“유치한 영화를 보셨구먼요. 내가 애들 시켜서 화끈한 것 몇 개 보내드릴게요.”
“…….”
“온 김에 형님한테 저녁이나 얻어먹고 갈까요?”
조웅남이 김칠성을 노려보았다.
“야, 너, 가봐라.”
“예?”
“이 새끼야, 난 바쁘단 말여.”
김칠성도 부아가 났다. 언제는 곰살맞게 손바닥을 까불대며 들어오라고 하더니 이상한 비디오 이야기나 늘어놓다가 다짜고짜 나가라고 하는데 성질이 안 날 리가 없다.
“앞으로 난 부르지도 마쇼.”
김칠성이 벌떡 일어섰다. 조웅남이 그를 노려보았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김칠성은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갔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