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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곤지왕 하

백제와 곤지왕 하

정재수 | 논형 | 2016년 02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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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574g | 152*225*30mm
ISBN13 9788963571683
ISBN10 896357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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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재수
전북 김 출생으로 전주영생고, 전북대학교, 학사장교를 통해 배움의 길을 닦았다. 교보생명은 삶의 공간이었다. 현재 한일고대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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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야기였다. 수레바퀴 불꽃 출현사건이 있던 해였다. 비유어라하는 자문을 얻기 위해 북한산의 현인을 찾아 갔었다. 때마침 임나에서 모자도태자와 모자가왕자가 왕위 다툼을 벌였는데 싸움에서 패한 모자가왕자가 덜컥 신라로 망명하였다. 이를 두고 비유어라하는 모자가왕자의 배신행위에 대해 곤지에게 물었었다.
「지금 왕자님의 상황이 자가왕자의 상황이군요. 그땐 제가 왕자님의 말씀을 흘려들었습니다.」
「백성이 우선이고 나라가 우선입니다. 한 개인의 욕심으로 이를 무너뜨려선 안 됩니다.」
「흠…」
연길이 가벼이 신음하였다.
「왕자님.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도대체 권력이란 무엇입니까?」
「권력은…」
곤지는 잠시 망설였다.
「쌓고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베푸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권력은 탐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두 꾀꼬리의 맑은 소리만 좋아하고 매의 거친 영혼은 싫어합니다. 권력에 집착하면 웃음거리만 될 뿐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곤지는 또박또박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알겠습니다. 왕자님의 뜻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른 분들께는 왕자님의 뜻을 다시 전하고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연길은 시선을 접었다.
---「흑룡의 출현과 좌절」중에서

고구려군의 총본영.
개로대왕과 왕실 가족, 내두좌평 연건, 조정좌평 백두는 포박되어 무릎을 꿇린 채 마냥 내팽개쳤다. 강보에 쌓인 어린 왕자는 울다 지쳐 대후 품에 곤히 잠들었다. 개로대왕의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이 속절없이 흘러 내렸다.
고구려 장수들이 하나둘 천막 안으로 모였다. 한 장수가 포박한 한 사내를 끌고 나와 개로대왕 뒤쪽에 무릎을 꿇렸다.
그때 둥둥둥 북소리가 일었다.
장수태왕이 수뇌부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어좌에 앉았다.
「백제왕 경사는 들으라. 너희 백제는 천손국인 우리 대고구려에게 노객의 맹약을 했음에도 조공은 커녕 호시탐탐 우리 영토를 넘본 이유가 무엇이냐?」
심문을 시작하였다.

「참으로 어리석구나. 지금 신라군이 어디 있는 줄 아느냐? 북상하고 있다고… 어림없는 소리이다. 신라왕 자비는 겁이 많은 자이다. 우리 태왕폐하를 제일 무서워하지. 일모성에 발을 꽁꽁 묶어놓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하더라. 하하하…」
화덕이 큰 소리로 웃었다. 천막 안에 있는 고구려 장수들이 일제히 따라 웃었다.
개로대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덕의 말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개로대왕은 목줄 맨 강아지마냥 신라군의 도착만을 눈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나 신라군이 북상하지 않다니 통탄 그 자체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신라군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개로대왕이었다. 모두 허사였다. 개로대왕은 고개를 떨군 채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
개로대왕이 눈을 떴다.
언제 날아들었던지 까마귀 떼가 나뭇가지에 쭉 둘러 앉았다. 까마귀 떼는 개로대왕의 죽음을 재촉하였다.
「나는 패자가 되었으니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나 대후와 어린 왕자, 공주들 그리고 부덕하고 우매한 군왕에게 충성을 바친 신하들에게는 태왕의 하해와 같은 성은이 베풀어지길 바란다.」
개로대왕은 짤막한 말로 모든 것을 대신하였다.
제우가 신호하자 한 병사가 개로대왕에게 다가와 포승줄을 풀었다. 개로대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쪽 한성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대후, 어린 왕자, 세 명의 공주, 좌평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눈빛을 마주하며 작별을 고했다. 다시 처음자리로 돌아와 무릎을 꿇으니 한 장수가 다가와 장도를 빼어들어 개로대왕의 목을 내리쳤다.
개로대왕의 유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로대왕의 시신은 매장되지 않은 채 아단성 돌 더미 위에 던져졌다. 대후, 왕자, 공주와 좌평들 역시 모두 목이 베였다.
---「한성의 몰락」중에서

나는…
1500년 이상을 현해탄 바다에 머물며
내 나라 후손이 때론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때론 서로에게 아픔을 주는
모습들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같이 즐거워하고 아파하면서 그 긴 세월을 버텨왔습니다.

누군가 나를 부릅니다.
이제 그만 굴곡진 업을 내려높고 당당히 앞으로 나서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부름에는 응하겠지만 결코 앞으로 나서지 않겠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나의 미완의 삶을 여러분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욕심을 버렸지만 꿈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는
서로 아끼고 도와주며 혹이 잘못하면 용서하고 화해하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것이 [곤지의 나라]입니다.
나는…
또 다시 가슴 벅찬 꿈을 꿉니다.
그러나 [곤지의 나라]는 나의 몫이 아닌
여러분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의 몫으로 남겨놓고 싶습니다.

나는…
이제 고향 한성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곤지의 나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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