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육에 대한 접근법은 형식 중심 접근법, 의미 중심 접근법, 활동 중심 접근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접근법에 따라서 어휘 학습이 강조되기도 하고 소홀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 장에서는 영어 교육에 대한 접근법에 따라 어휘 학습이 어떻게 다루어졌는가를 살펴보고, 어휘를 영어 학습의 핵심으로 보는 어휘 중심 영어 교육에 대해서 논의한다.
1.1 형식 중심 접근법과 어휘 학습
국제어로서 영어 교육의 목표는 목표어인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인데, 의사소통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주로 언어를 사용하여 의미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휘(vocabulary)는 의미를 전달하는 요소로서 의미를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물건을 사기 위한 의사소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물건에 대해 말하기, 물건의 가격 묻기 등의 의미를 영어로 표현하고, 원하는 물건과 가격 정보에 관한 영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영어를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물건과 가격에 관한 어휘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의사소통의 핵심은 언어로 전달되는 의미의 이해와 표현인데, 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은 어휘이므로 영어 교육에서 어휘 학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영어 교육에 대한 형식 중심 접근법에서는 언어가 전달하는 의미보다는 의미를 구현하는 언어 형식을 중요시하면서 형식과 관련하여 문법을 강조한 반면에 어휘 학습은 소홀이 이루어졌다.
외국어 교육의 역사는 적어도 로마 사람들이 그리스어를 배우던 B.C. 2세기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당시 로마에서는 외국어인 그리스어가 교육, 상업, 종교 등의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그리스어를 배워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어 교육에서는 설득력 있는 표현을 강조하는 수사법(rhetoric) 지도에 중점을 두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어휘를 중요하게 다루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중세 시대에는 라틴어가 그리스어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라틴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라틴어 교육에서는 문법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연습 활동을 통하여 문법을 익히도록 하였다. 반면에, 어휘는 문법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주로 제시하고, 그러한 어휘들은 모국어로 번역하여 의미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다루었다. 이 당시에는 언어 능력의 핵심을 언어 형식에 관한 지식으로 보고 문법을 강조하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어휘 학습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 라틴어가 쇠퇴하면서 라틴어 교육에 대한 관심과 요구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문법 중심으로 라틴어를 가르치던 전통은 외국어 교육의 패러다임으로서 19세기까지 이어져 왔다(Schmitt, 2000).
19세기에 이르러 국제어로서 영어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영어 교육이 실시되었는데, 영어 교육 또한 라틴어를 가르치던 전통의 영향을 받아 언어학적 지식으로서 문법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접근법은 문법 번역식 교수법(Grammar-Translation Method)으로 발전하면서 그 당시에 외국어로서 영어 교육의 패러다임으로 널리 적용되었다. 문법 번역식 교수법에서는 주로 영어로 쓰여진 문학 작품을 제시하여 이를 모국어로 번역하고, 번역을 하는데 필요한 문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목표어의 문법을 익히는데 중점을 두었다(Richards and Rodgers, 2014).
즉, 문법 번역식 교수법에서는 문학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문학 작품을 이용하여 목표어의 문법을 익히도록 한 것이다. 때로는 목표어의 문법을 설명하기 위해 문법만을 고려하여 문장을 창작하면서 의미적으로 매우 어색한 예문을 제시하기도 하였는데, 그 예는 다음과 같다(Titone, 1968: 28).
The philosopher pulled the lower jaw of the hen.
My sons have bought the mirrors of the Duke.
The cat of my aunt is more treacherous than the dog of your uncle.
문법 번역 교수법에서 영어 교육의 목표는 문법 지식을 익히는 것으로, 문법 지식이 있으면 의미를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문법 중심으로 학습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실제 의사소통에서의 목적과 의미를 고려하지 않으면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어색한 표현들을 다루기도 하였다. 한편, 어휘 학습 측면에서는 주로 문법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어휘만을 다루었다. 어휘의 한 유형으로서 낱말(word)은 전달하는 의미에 따라 내용어(content words)와 기능어(function words)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교수법에서는 문법적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어를 주로 강조하였으며 어휘적 의미를 전달하는 내용어는 문법 학습에 필요한 낱말만을 제시하였다. 즉, 문법을 학습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휘를 활용한 것이다.
문법 번역 교수법의 원리는 현재 영어 교육에서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데, 문법 중심으로 학습 내용과 활동을 구성한 예는 14쪽에 제시되어 있다(Murphy, 1997: 48-49). 이 예는 문법 번역식 교수법이 영어 교육의 패러다임으로 적용되었던 시대의 학습 내용과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문법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과거(past simple)를 현재 완료(present perfect)와 비교하여 두 형식, 두 형식의 문법적 의미, 두 형식의 문법적 의미에 있어서 차이를 학습하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휘 학습 측면에서 보면 목표로 하는 형식을 익히기 위한 낱말들이 주로 제시되어 있으며, 낱말들을 익히기 위한 별도의 학습 내용과 활동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은 형식 중심 접근법에서는 목표어의 형식 학습이 우선시되고 어휘는 주로 낱말 수준에서 언어 형식을 익히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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