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여기에……. 더구나 이런 계절에…….
레이스 커튼과 유리창 사이에 불쾌한 날갯소리를 내는 곤충이 있었다. 몸길이는 2, 3센티미터쯤 될까. 노란색과 검은색의 경계색은 틀림없이 말벌이다.
“아무쪼록 다시는 쏘이지 않게 조심하세요……. 처치가 늦으면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의사의 경고를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도 모르게 도망치려다 가까스로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눈을 뗐다가 말벌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면 말 그대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진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 한다. 더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하늘이 주신 좋은 기회가 아닌가. 말벌이 여기 있는 동안 레이스 커튼으로 누르면 간단하게 잡을 수 있으니까. 아니, 잠깐만. 그렇다고 맨손으로 죽일 수는 없다. 잘못하다 침에 쏘이면 큰일이 아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쏘여서는 안 된다. 이럴 때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슬리퍼는 어디로 갔을까? 잠들기 전에 분명히 신고 있었던 것 같은데. --- p.18
“실례지만 안자이 선생님이시죠? 《사신의 노크》를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밤새워 하루 만에 다 읽었습니다.”
3, 4년쯤 됐을까? 대형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신인 문학상 시상식 파티였다. 파티장은 수많은 사람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편집자나 작가뿐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여기저기 섞여 있었다. 그 무렵엔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무작정 참석하는 무법자가 많았다. 출판 관계자라는 명함만 내밀면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티 무법자들이 당당하게 먹고 마시면서 작가들과 담소를 나누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자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긴 머리칼은 기름기가 없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은 적당히 햇볕에 그을었다. 하얀 티셔츠 위에 플란넬 재킷을 걸치고 청바지를 입은 편안한 차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박한 차림도 주도면밀하게 계산한 것이었다. 꾸밈없는 순수한 젊은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긴 하지만 《사신의 노크》는 평판도, 판매율도 최악에 가깝습니다.”
때마침 안자이 도모야는 어두운 작풍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던 시기로, 《사신의 노크》도 일부에서 혹평을 했다. 유메코의 작품이 TV의 모 프로그램에서 거론한 것을 계기로 그림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어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래요? 이거 의외인데요. 아, 죄송합니다. 저는 미사와 마사히로라고 합니다. 신세기 대학교에서 곤충의 광주성光周性과 계절 적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지요.”
미사와는 그렇게 말하면서 명함을 건넸다. --- pp.49-50
하얀 울 스웨터 위에 포장용 에어캡을 감고 검 테이프로 고정한 다음, 스키용 재킷을 입었다. 흔히 뽁뽁이라고 하는 에어캡은 보온 효과도 있지만, 내 목적은 재킷과 피부 사이에 공간을 두는 것이다. 말벌의 침은 가죽점퍼나 청바지도 꿰뚫을 만큼 날카롭지만, 그 길이보다 떨어져 있으면 쏘이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면바지 위에 에어캡을 감고, 그 위에 스키 바지를 입었다. 그런 다음 추위에 얼어붙어 딱딱해진 스키 부츠에 간신히 발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스키용 가죽 장갑을 끼었다. 아마 여기가 최대의 약점이 되리라. 가죽 한 장으로는 장수말벌은커녕 노랑말벌의 침조차 막을 수 없다. 장갑 안에는 에어캡을 넣을 수 없어 바깥쪽에서 둘둘 감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두껍게 감으면 손을 쓰기 힘들다. 나는 몇 번을 감았다 풀었다 하며 그럭저럭 괜찮은 지점에서 마무리했다. 어쨌든 손이 약점이라는 것을 항상 의식하면서 말벌이 앉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좋아. 이번에야말로 반격 개시다. 백팩과 배낭을 메고 비척거리며 차고를 나섰다. 만약 누가 봤다면 기이한 차림새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으리라. 풀 페이스 헬멧에 목과 손목은 에어캡으로 둘둘 감았다. 더구나 재킷과 바지는 빵빵하게 부풀어 있다. 여기에 스키 부츠를 신어서 걸음걸이는 로봇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 pp.107-108
여기는 인간 사회가 아니라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사회성 곤충의 소굴이다. 구성원은 매일 부지런히 밖을 날아다니며 꿀벌처럼 꿀을 모아온다.
그들이 하는 일이 사기나 마찬가지인 선물先物 거래·매매의 실태는 없이 가치 없는 증서를 줄 뿐으로, 가치가 오를 때는 교묘하게 말해 해약에 응하지 않고 가치가 떨어지면 추가 투자 명목으로 돈을 빨아낸다, 라는 것을 생각하면 영업 사원은 말벌이나 마찬가지다. 판단력이 흐려진 혼자 사는 노인을 먹이 삼아 교묘한 말로 도장을 찍게 하는 것이다.
먹이를 얼마나 많이 갈취했느냐에 따라 구성원의 가치가 정해진다. 상대를 많이 죽여 고기를 많이 만든 녀석은 칭찬을 듣고 꿀을 받을 수 있다. 한편 더러운 방법에 적응하지 못해 망설인 사람은 처절하게 비난을 받은 끝에 목이 잘린 채 구경거리가 된다. --- p.135
내 작품이 소설 잡지의 신인상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문장이 안정되어 있다”라고 극찬해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장이다. 그것도 독선적인 비유나 천박한 표현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발을 땅에 딛고 있는 듯한 안정된 문장 말이다. 그런 문장은 언뜻 보기에 참신한 표현으로 찬사를 받고 금세 사라지는 풋내기들에게선 절대로 찾아볼 수 없다.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하고 많은 인생 경험을 쌓지 않으면 결코 몸에 배지 않는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작가와 편집자들이 내 소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꿈의 무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목을 길게 빼고 출판사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몇 번 편집부에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봤지만 반응은 더할 수 없이 냉랭했다. 도저히 출판계의 미래를 짊어질 신인(50대의 신인은 결코 드물지 않다)에 대한 태도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노골적으로 귀찮은 태도를 보이더니, 담당자가 있으면서도 없는 척하게 되었다. 2, 3년이 지나자 전화를 걸어도 즉시 끊어버리고, 시간을 내어 찾아가도 1층에서 경비원이 가로막는 형편이었다.
나는 새로운 작품을 써서 다른 출판사 신인상에 응모하기로 했다. 나를 무시한 녀석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도록 해주겠다!
그 작품의 제목이 ‘말벌’이었다. 이익을 얻기 위해 종업원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악덕 기업을 적으로 여기고, 세뇌를 거부한 채 고독하게 싸우는 주인공을 그릴 생각이었다. --- pp.214-215
나는 《말벌》을 사서 집에 오자마자 밤을 꼬박 새워 한 자도 놓치지 않고 탐독했다. 그리고 안자이 도모야의 모든 작품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심지어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은 에세이까지 그가 쓴 모든 글을 섭렵했다. (중략)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열광적인 독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무리 애써도 씻어낼 수 없는 의혹이 다시 불타올랐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쓰고 싶던 내용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예전에 생각하던 표현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구상하던 스토리가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그 녀석을 모델로 한 등장인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쓴 작품이다.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분신이 쓴 것이 아닐까?
그래, 틀림없다. 어느새 내 분신이 작가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내가 자신의 처지를 핑계 삼아 한탄하고 있는 사이에…….
그래도 처음에는 분신이 이루어낸 성과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감이 증폭되었다.
--- pp.2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