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청 한 가운데는 도가(都家)에서 일을 마치고 나온 상고(商賈) 너댓이 술상에 둘러 앉아 왁자하게 떠들어댔다.
“허허 참, 봄에 모심을 때는 목비는커니와 피죽바람만 불어대더니, 이제 건들장마라도 시작된 건가? 이틀 전에도 자드락비가 퍼붓더니 오늘도 마찬가질세 그려. 윤유월이 끼어서인지 가을걷이가 늦어져서 다행이긴 하다만.”
“누가 아니래나. 불가물에 강더위만 이어져 곡식 다 시르죽을 판에 반갑지. 진작 이리 쏟아졌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것 참, 가뭄도 가뭄이지만 바람이 무척 사납네 그려. 바람 때문에 곡식 다 말라 죽게 생겼으니 올해도 어김없이 흉년일세.”
“왜 아니겠는가? 유난히 바람이 심하네 그려. 궁궐의 정문마저 무너졌으니 말일세.”
“나도 보았네. 돈화문 동쪽 서까래가 무너졌더군. 이거 참 세상이 어수선하구먼. 큰 바람에 나무가 부러지고 집도 무너졌는데 팔도가 다 그렇다더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원.”
“그나저나 시전은 뭐 땅 파먹고 장사하나?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은 성화같이 재촉해 놓고 값은 제때에 주지 않으니 말일세. 그 때문에 파산한 이도 있다지 않은가? 아, 우리한테는 꼬박꼬박 세금 거둬가면서 세금도 안내고 장사하는 사상(私商)들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니 말일세.”
“누가 아니래나? 도성밖에 마포, 서강, 용산, 송파에서 활개 치는 경강상인들 좀 보게나. 금난전권이 미치지 않는다고 미곡, 어염(魚鹽)은 물론이고 시목(柴木)이나 재목까지 도매로 팔지 않는가? 어물전, 염전, 시목전, 미전이 한강변을 따라 점점 많이 생겨나고 있지 않던가?”
“그 말도 말게. 도성밖은커니와 도성안의 칠패, 배우개(梨峴)만해도 사상들이 활개를 친지 벌써 언제 이야기인가?”
“앞으로 크게 장사하려면 경강상인과 동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술이나 마시세.” --- p.38-39
바로 위 붓골(筆洞)의 초가에서는 파리 떼가 마당 한구석에 수북하게 모여 있었다. 밭을 매는 남편에게 갖다 주려고 자배기에 기승밥을 담아 머리에 이고 부엌을 나서던 아낙이 가까이 다가갔다. 파리 떼가 날아가니 사람의 발꿈치처럼 생긴 살덩어리가 드러났다. 아낙은 기함을 하고 자배기를 떨어뜨렸다. 붓골 바로 옆 생민골(生民洞)의 한 농가 돼지우리 안에서도 비슷한 살덩어리가 발견되었다. 붓골에서 활 한 바탕 거리의 오래된 은행나무 옆에는 폐포파립의 선비가 두 발꿈
치와 오른 손목이 잘린 채 죽어 있었다. 이 사건으로 포도청은 난리법석을 떨어야 했다. 그날 오후 좌포도청의 포도부장 남경식(南慶式)이 이양걸을 찾아왔다.
“피살자는 먹절골(墨寺洞) 사는 운관의 관원일세.”
“먹절골? 중들이 먹을 만들어 판다는 그 절이 있는 마을 말인가? 그곳은 좌포도청 소관이지 않나? 그리고 운관이면 교서관이란 말인가?”
“그러니 내가 기찰했지. 교서관 창준인데 체아직이고 이름은 최한길이네.”
포도부장과 종사관의 품계는 같은 종육품이었지만 종사관이 포도부장보다 직급은 높았다. 그러나 좌포청의 포도부장 남경식은 우포청의 종사관 이양걸과 오랜 지기였다.
“빈대이던가? 아니면 모기이던가?”
“남촌이니까 모기가 맞겠지만 이상하게도 그자의 옷깃이 길던걸.”
남 포교가 대답하자, 이양걸이 “그래?”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노론과 소론의 분쟁이 격렬했다. 숙종은 장씨를 희빈으로 맞아 경종을 낳았고 인현왕후의 무수리였던 숙원 최씨를 맞아 연잉군을 낳았는데, 경종은 소론의 지지를 받았고 연잉군은 노론의 지지를 받았다. 경종의 나이 열한 살 때 생모인 장희빈이 사사되자 심한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병약해졌고, 심지어 경종이 고자라는 소문까지 궁중에 퍼졌다. 소론의 세력을 등에 업은 경종이 즉위하자 소론은 노론을 척결하고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왕위를 이을 세자를 정하는 건저 논의에서 노론과 소론은 극명하게 갈라섰다. 노론은 경종이 병이 있으니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할 것을 주장한 반면, 소론은 경종이 아직 젊으니 왕의 아들을 기다렸다가 세자를 삼아야 한다며 노론을 반박했는데, 당시 소론의 맹주는 유봉휘였다. 노론과 소론은 길에서 만나도 서로 모르는 척했으며, 노론은 소론을 모기라 불렀고 소론은 노론을 빈대라 불렀다. 옷깃도 서로 달랐는데, 노론은 옷깃을 길게 하였고 소론은 짧게 하였다. 경종 즉위 시에 영의정 김창집과 좌의정 이건명은 노론이었고 우의정 조태구는 소론이었다. 그러나 권력의 무게는 점차 소론으로 쏠리고 있던 터였다. --- p.84-85
“그런데 궁금한 게 있소. 그 서역에 나타났다던 야소가……, 그의 가르침이 어떻게 중국의 경전과 한자에 있을 수 있다는 게요?”
재서가 이 상황에서 그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소는 희백래(希伯來, 히브리) 민족으로 여덕아국(如德亞國, 유대국)에서 약 1,700년 전에 태어났소……. 그런데 야소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여덕아의 예언자와 현인들에 의해 예견되었다고 했소……. 그 민족은 원래 아각포(雅各布, 야곱)란 조상이 낳은 열두 형제가 기원인데……, 아주 오래전에 열 형제의 후손들은 이색렬국(以色列國, 이스라엘)으로, 나머지 두 형제의 후손들은 여덕아국으로 나뉘게 되었소. 그런데 이색렬국은 야소가 태어나기 721년 전에 아서리아(?西利?, 앗시리아)라는 왕국에 의해 망하고 그 열 형제의 후손들은 동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소……. 희백래 민족의 일부는 야소 탄생 약 700년 전부터 중국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 시기는 중국의 경전이 작성되기 전이오. 이들은 미새아(???, 메시아)라 불리는 구원자의 도래를 알고 있었고, 마서(摩西, 모세)라는 그들의 조상이 만든 다섯 가지 경전(모세오경)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오. 중국의 경전과 고전, 공자의 주석서, 역사, 철학, 종교 등 모든 방면에 걸쳐 이들 희백래인들의 규범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소.”
--- 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