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96년 [창작과비평]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캔들 플라워], [물의 연인들]과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가 있다. 청소년 소설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그 외 다수의 시해설서가 있다. 현대문학상과 천상병시상을 수상했다.
“말해 보라. 왜 하필 서라벌이냐?” 휘몰아치는 노인의 기세에 주저하던 그가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지금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흐읏! 희한하게 한 번 웃은 노인은 다그치기를 멈추고 삿갓을 다시 눌러쓰더니 삼태기를 추어올리며 휙 몸을 돌렸다. “흥, 꼴값 좀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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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무날의 낮과 밤. 그동안 원효의 내면에 일었다 사라진 것들이 공기 속에 스미어 모든 생명의 찰나를 구성하는 물질들로 화한 것 같았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기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스민 어떤 강력한 물질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지난 밤, 그는 하산의 때가 왔음을 그저 알아차렸다. 서라벌에 와 네 해. 귀족과 화랑, 전쟁, 아미타의 벗들, 출가, 사찰, 승려, 왕의 알현까지 가장 높은 이들과 가장 천한 이들을 두루 겪었다. 많은 인과들이 한꺼번에 출현하여 원효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네 해가 지났다. 그 모든 인연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지 확언할 수는 없었으나, 이제 원효는 새로이 펼쳐질 길을 성심을 다해 걸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느꼈다.
---p.206
원효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나는 부처로 살겠다!” 산을 내려오너라. 흉내 내지 말라. 너는 스스로 온 자, 배움의 장소가 산속에 따로 필요한 자가 아니다. 만나는 모두를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자, 그것이 위대한 스승의 모습이다.
---p.207
혼돈에 가득 찬 물음들 저 너머에 육신을 벗어 놓고 저세상으로 간 소녀의 얼굴이 자주 보였다. 단아, 너는 지금 괜찮은 것이냐. 나도 너처럼 육신을 그만 벗고 싶구나. 단아, 너와 내가 가져야 하는 힘이란 무엇이냐. 힘없는 백성 속에서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어떤 힘을 가져야 참으로 힘인 것이냐. 단이를 부르며 원효는 울었다. 육체가 흘릴 수 있는 눈물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으므로 산산이 찢긴 몸을 붙들고 한 줄기 마음이 울고 또 울었다.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
20년 전 대학원 시절부터 소망했던 나의 꿈, 언젠가 원효에 대한 근사한 소설을 쓰리라는 꿈을 이제 나는 접을 것이다. 이건 모두 김선우의 소설 [발원] 때문이다. 나는 그냥 [발원]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일까, [발원]을 읽은 뒤 나는 그만 김선우 작가에게 설복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