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나를 ‘이삭’ 대신이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목사는 자신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일지 모른다는 착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어진 내 이름은 ‘조이삭’이다.--- p.9
처음에는 무심히 여겼다. 아니, 내심 길성(吉星)이라고 단정했다. 배다른 두 명의 형이 죽는 바람에 자신에게로 권좌가 이어지게 된 것을 여호와도 인정하고 있다는 증험이라고.--- p.14
목사에게 정면 도전을 했던 것은 대학 입학을 앞둔 고3 때였다. 스무 살 내 인생이 ‘신학도’로 규정된다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신에게 헌물 되기 이전에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었고 무엇보다 목회자가 내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나에게 신앙은 습관이었고 생활일 뿐이었다.--- p.42
일찍이 여호와의 선택을 받았다는 긍지로 살아온 유대는 이제 곪아터지기 직전이었다. 썩은 물은 정수리에서부터 내려왔다. 로마황제에게 아첨하기 바쁜 유대 분봉왕 헤롯에서부터 그 왕을 떠받치는 율법주의자인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까지. 그들에게는 자신의 현재 위상과 권력을 유지시킬 명분만이 중요했다. 그 명분은 여호와의 참뜻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p.96
젤롯당은 로마에서 유대를 무력으로 독립시키고자 은밀히 조직된 열혈당이다. 모두 알고 있지만 입에 올리기 꺼리는 당파다. 초기에는 점조직으로 활동하면서 게릴라 전술로 로마군대를 와해시키거나 분산시키는 것으로 로마에게 해코지를 해왔다. 그런 까닭에 로마 당국은 젤롯당은 경계하는 터였다.--- p.105
나를 향하고 있는 목사의 식지 않는 열정이 무섭다. 이제 포기할 만도 한데 그는 아직도 신의 이름으로 나를 조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컴컴한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나는 누구인가. 목사가 생각하는 나는 누구이며, 어머니 가슴속의 나는 누구였던 걸까?--- p.141
그래도 이천 년 전 실제로 살았던 예수는 웃고 울고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약한 자의 편이었고 스스로도 약자였잖아. 하지만 잘못된 권력과 강자의 불의를 향해서는 굽히지 않았지. 그러고는 결국 스스로를 살신(殺身)함으로써 사랑과 박애를 실천한 예수에 대해서는 어떤 잣대도 들이대기 싫은 마음이 있어. 그냥 무작정 믿고 싶은 거라고 할까.--- p.196
일개 목수의 아들이 유대를 구원할 메시아라니. 그게 말이 되는 걸까? 유대의 권력층인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자식도 아닌 제일 열세에 있는 에세네파 자식이 어떻게 메시아가 될 수 있는가 말이다.--- p.245
목사와 한국 기독교를 부정하지만 내 인생에서 예수는 커다란 축이었다. 나에게 그는 종교가 아니었다. 이천 년 전에 살과 피와 뼈를 가진 서른세 살의 청년이었고 고뇌와 고통을 가진 인간이었다. 나는 그를 연민하고 그리워했다.
조이삭은 목사인 양아버지와 진로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 그는 목회자의 길을 거부한 뒤 출판사의 팀장이 되었고, ‘예수’의 신성을 파헤치는 웹소설 [암살자들]을 출간하기로 결정한다. [암살자들]은 헤롯2세 안티파스의 명에 따라 예언의 아이인 여호수아를 찾는 암살자들의 이야기로 세간의 논란을 불러일으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와 동료 편집자들은 ‘파르헤지아’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를 찾아 나서고, [암살자들] 속 인물들의 갈등과 이야기도 절정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