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문무왕이 절을 지었는데, 그냥 절이 아니라 나라를 지켜 달라는 절이었대. 그때는 일본이 자꾸 신라를 성가시게 굴던 때여서 제발 못된 적들을 물리치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비는 절이었겠지. 그런데 그만 그 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된 건데, 유언을 남겼어. 자신이 죽거든 바다에 묻어서 일본군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게 해 달라고 말이야. 그 임금이 용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를 장사 지낸 바위가 바로 대왕암이고, 용이 된 임금이 바다 밑에서부터 땅 위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구멍을 뚫어 두었지. 그런 훌륭한 뜻을 가진 임금과 관련되는 바위니까 신비로운 거야.
--- p.17 『첫째 놀이. 신비로운 것을 찾아라』중에서
부득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말했다.
“이곳은 부녀자가 더럽힐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역시 보살의 수행 중 하나이겠지요. 게다가 궁벽한 산골에 밤이 어두우니 어찌 홀대할 수 있겠소.”
그는 곧 그녀를 암자 안으로 친절히 맞아들였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부득은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가운데 벽에 등불을 켜고 희미한 벽 아래 염불을 했다. 그런데 밤이 이슥해지자 처녀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제가 불행히도 해산을 하게 생겼습니다. 스님께서는 짚자리나 깔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부득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 청을 거절할 수 없어 촛불을 은은하게 밝혔다. 그녀는 이미 아이를 낳은 후였고, 이번에는 목욕을 시켜 달라고 청했다. 부득은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불쌍한 생각이 한결 더해서 목욕통을 가져다 놓고 처녀를 통 속에 앉혀서는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켰다.
--- pp.144~145『일곱째 놀이. 누가 더 고수인가』중에서
이목은 늘 절 옆에 있는 작은 연못에 살면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불교의 이치가 퍼져 나가도록 도왔다.
그러던 어느 한 해, 몹시 가물어 밭의 채소가 말라 타들어 갔다. 보양 스님이 이목을 시켜서 비를 부르도록 했더니 그 일대에 비가 충분히 내렸다. 그러자 하느님은 이목이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이목이 보양 스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스님은 그를 마루 밑에 숨겨 주었다.
잠시 후 천사가 뜰에 와서 이목을 내어놓으라고 했다. 스님은 뜰 앞에 있는 배나무를 가리켰다. 그러자 천사는 이내 배나무에 벼락을 내리치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래서 배나무가 부러지고 시들었지만 용이 어루만지자 되살아났다. (*보양 스님이 주문을 외워서 살렸다고도 한다.)
이목은 용의 아들 이름이잖아. 한자로 풀면 ‘유리 눈[璃目]’이라는 뜻이야. 용의 눈이라는 게 유리구슬처럼 생겼으니까 그런 이름이 붙었겠지. 그런데 천사가 이목을 내놓으라고 호령을 하는데 뻔히 감추고 있으면서도 없다고 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보양 스님이 순간적으로 꾀를 낸 거야. 하느님의 사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자기 말을 들어 착한 일을 한 이목을 죽일 수도 없었던 거야. 스님은 ‘이목’을 한자 ‘梨木(이목)’으로 쓰면 그 음은 같지만 전혀 다른 뜻이 되는 걸 이용했지. 이 이목은 바로 배나무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유리 눈이라는 뜻의 이목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배나무라는 뜻의 이목을 가리킨 거야.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를 이용하여 이목을 구해 냈으니까, 말장난을 통해 목숨까지 구한 거야. 이런 말장난은 한자를 모르면 전혀 할 수 없으니까, 말장난을 잘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건가?
--- pp.191~193『아홉째 놀이. 말의 힘, 노래의 힘』중에서
진정은 군대에 있을 때, 의상 대사가 태백산에서 불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돼. 의상 대사는 당시에 가장 훌륭한 스님으로 꼽히던 분이라 그를 찾아가 꼭 배우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지.
“어머님께 효도를 다한 뒤에 꼭 의상 법사 밑에 가서 머리를 깎고 불교를 공부하겠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해.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몹시도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다. 네 말대로 효도를 마친 뒤라면 너무 늦지 않겠니? 효도를 받는다고 어찌 살아생전 네가 공부하러 나아가 부처님의 도를 이루었다는 말을 듣는 것만 같겠니? 머뭇대지 말고 속히 가는 게 옳다!”
이 대목은 몇 번을 읽어도 참 멋있어. 아들은 계속 멈칫대고 어머니는 강하게 밀어붙이지.
“나 때문에 출가를 못한다면 나를 지옥에 빠뜨리는 셈이다.”
급기야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아들을 다그쳐. 그러고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
--- pp.211~212『열째 놀이. 하늘을 움직여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