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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대통령 2부 3

밤의 대통령 2부 3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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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426g | 128*198*22mm
ISBN13 9791104906527
ISBN10 110490652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손채석은 턱을 조금 치켜든 채 벽을 바라보았고, 이강일은 그와 반대로 방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명 모두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이 얼핏 보면 학생이 벌을 받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앞쪽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것은 조웅남이다.
그는 물컵에 따른 소주를 냉수 마시듯이 벌컥이며 삼키고는 물컵을 내려놓았다.
“느그덜도 한 잔씩 혀라.”
“예, 형님.”
대답은 얼른 하였지만 손채석은 앞에 놓인 잔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 옆에 앉은 이강일도 주춤거리며 조웅남과 손채석의 눈치를 살피다가 역시 술잔을 잡지 않았다. 그는 아래층에서 심부름을 왔다가 조웅남에게 잡힌 것이었다.
“내가 술에 약혀졌어. 왕년에 소주 30병은 족히 먹었는디.”
물컵에 소주를 따르며 조웅남이 말했다. 벌써 빈 소주병이 7, 8개가 한쪽으로 놓여 있다.
“지금은 열댓 병만 먹어도 알딸딸허단 말여.”
스무 번도 더 듣는 이야기였으므로 손채석은 잠자코 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조웅남의 레퍼토리를 훤히 외우고 있었다.
술 이야기 다음에는 오유철의 이야기였고, 마지막에는 강만철 순서가 된다. 조웅남이 말을 이었다.
“내가 유철이허고 제수씨를 합장시켜 주고 말여, 쇠주를 먹었는디 한 50병은 먹었을 거여. 근디 배만 부르고 하나도 안 취혀. 그리서 오짐을 쌌는디 오짐에서 술 냄새가 나더란 말여.”
그는 다시 벌컥이며 술을 삼켰다.
이강일이 힐끗 손채석을 바라보았다. 좀이 쑤시는지 연신 몸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조웅남이 말을 이었다.
“그리서 양푼에다가 오짐을 받아서 마셔 봉게로 그것이 쇠주여. 하, 그것참, 희한허드만. 그리서 그걸 마셨당게. 술병을 깔 필요가 없었단 말여. 오짐 싼 걸 마시고, 또 싸고, 마시고.”
방문이 열리더니 부하 한 명이 전화기를 손에 쥐고 들어섰다.
“형님, 전화가 연결되었습니다.”
조웅남이 수화기를 받더니 귀에 대었다.
“여보시오.”
―여보세요, 저예요.
만탄 섬에 있는 김경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귀에 들렸다. 조웅남은 트림을 했다.
“거시기, 제수씨 바꿔.”
―아이참, 오랜만에 목소리 들었는데…….
투정이 섞인 김경지의 목소리는 그래도 반가움에 밝게 들렸다. 섬에 온 후 처음 받는 전화인 것이다.
―별일 없으시죠? 식사 제때 하시구요?
“그려, 잘 있어. 그니까 제수씨 얼릉 바꿔.”
―영옥이 엄마 말씀이세요?
“이런, 지기미.”
조웅남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거시기 상도동 말여, 상도동.”
상도동은 강만철이 살았던 곳이다.
―어쩌나, 지금 묘지에 갔는데. 형님하고 태훈이 묘를 손질한다고 영옥이 엄마하고 이재영 씨하고 같이 갔어요.
“뭐여?”
조웅남이 눈을 껌벅이며 앞에 앉은 손채석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혔어, 시방? 태훈이 묘에 갔다고?”
―네, 묘에 풀들이 많이 자라서요.
침을 삼키고 난 조웅남이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태훈이가 묘지에 왜?”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가 형님하고 태훈이 묘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우린 매일 묘지에 가요.
“죽었어?”
손채석은 초점을 잃은 조웅남의 눈을 보았다. 반쯤 벌린 입가에서 술인지 침인지는 모르지만 물기가 흘러나와 있다.
“긍게, 죽었단 말여? 그러고 형수님은 또 무슨…….”
―당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동문서답 비슷하게 조웅남과 말을 주고받던 김경지가 이제는 짜증을 내었다.
―당신, 술 마셨어요?
“묘지에 있단 말여, 형수님허고 태훈이가?”
―그래요, 편히 잠들고 계세요.
“언지 죽었는디?”
그러자 김경지가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다.
“빨리 말 안 혀?”
조웅남이 버럭 고함을 치자 앞에 앉아 있던 이강일이 번쩍 상체를 세웠다. 손채석은 이제 술잔을 내려다보고 있다. 수화기를 내던진 조웅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는 방문을 박차고 나가서는 곧장 아래채의 현관으로 들어섰다. 방에서 나오던 김칠성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너, 이 시키, 이리 좀 와.”
그는 김칠성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방으로 끌고 갔다. 그것을 본 집 안에 있던 부하들이 놀라 멈칫했다. 김칠성이 그의 팔을 쥐었다.
“왜 이러는 거요, 형님?”
“나는 니 형님 아녀. 너 같은 동생 없고.”
입맛을 다신 김칠성이 멱살을 잡힌 채 방으로 발을 옮겼다.
“너 이 시키.”
방문이 닫히자 조웅남이 김칠성을 벽에다 세차게 밀어붙였다. 얼굴이 검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악문 잇새에서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겨 나왔다.
“도대체 왜…….”
김칠성도 눈을 치켜떴다.
“대낮부터 술 마시고 이게 뭡니까?”
“이 씨발 놈아, 형수씨허고 태훈이가 죽었담서?”
악문 잇새로 조웅남의 말소리가 흘러나오자 김칠성이 온몸을 굳혔다.
“왜 나헌티는 말 안 혔냐? 나는 형제간 아니냐, 이 씨발 놈아?”
“형님.”
“내가 미친놈이 될랑가 겁나서 그렸냐?”
“…….”
“왜 나헌티만, 나헌티만 말 안 허고…….”
“형님.”
“어이고, 어쩐디야.”
갑자기 김칠성에게서 떨어져 나간 조웅남이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은 채 머리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그의 앞에 선 김칠성에게 절을 하는 모습이 되었다.
“어이고, 형님…….”
조웅남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조웅남의 옆으로 다가온 김칠성이 무릎을 꿇었다.
“형님.”
그러자 조웅남이 번쩍 머리를 들었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칠성아, 형수씨허고 태훈이는 어뜨케 죽었냐?”
“고통 없이 죽었습니다. 만철 형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저는 못 봤습니다.”
“갸가 봤다냐?”
“예, 봤답니다.”
“직사혔단 말이지?”
“…예.”
“그 씨발 놈은 그리서 죽었고만.”
“…….”
“긍게로 섬에 묘똥이 세 개고만.”
“형님, 죄송합니다.”
김칠성이 머리를 떨구었다.
“저도 그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녀, 다 이해혀.”
조웅남이 손을 들어 김칠성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니가 살어서 다행여. 만철이가 죽은 것도 이해허고. 나헌티 말들을 안 혀 준 것도, 그 속 다 알어. 그런디 형수씨허고 태훈이가 죽은 것은 이해 못 혀.”
조웅남은 소매를 들어 눈물을 훔쳤다.
“갸들이, 아니 형수씨허고 태훈이가 무신 죄가 있다고.”
이제는 김칠성이 손바닥으로 눈을 씻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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