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피의 발명》은 자유·평등이라는 민주주의 혁명 과정에서 보였던 포르노그래피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거칠게 말하면, 지배층 엘리트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세련된 음란물들이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일반인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곧 민주주의로 향한 혁명이었다. 지배층에서는 ‘그들만의 음란물’이 일반인들도 함께 즐기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한번 터진 봇물을 막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포르노에 덧씌웠던 나쁜 이미지가 도리어 그들을 공격하고 해체하는 무기로 쓰였던 것이다. --- p.24

근대 초기의 포르노그래피는 근대 문화 발생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일부를 드러낸다. 그것은 종교나 여타 권위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와 이단, 과학과 자연철학, 그리고 절대왕정 정치적 권위에 대한 공격과 관련이 있다. 또한 포르노그래피는 근대성의 문화 안에서 발달하고 있던 ‘성 차이’에 관해 특히 시사하는 바가 컸다. --- p.27

1740년대 포르노그래피 출판물이 증가한 시기가 유럽의 사회와 정치가 전반적인 위기를 겪었던 시기이면서 동시에 계몽주의 절정기가 시작되는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포르노그래피 출판물이 매우 많이 쏟아져 나온 1748년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과 라메트리의 《인간 기계론》이 출판된 해이기도 했다. --- p.52

처음 아레티노의 베네치아 작업실에서 시작된 포르노그래피 창작의 열기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위협적인 기세로 유럽으로 번졌다. 그에 따라 이 열기를 식히려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이 사실은 사회·도덕·언어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작가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는지 보여준다. 아레티노의 작품들을 금지시킨 트리엔트 공의회 당국의 눈에 아레티노는 에로틱한 작풍의 화가들과 인문주의 포르노그래피 작가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위험한 존재였다. 그가 성행위를 솔직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독자들을 ‘웅변과 우아한 품위’를 갖춰 에로틱한 고전을 읽는 것이 허락된 미덕을 지닌 사람들로 제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기 이후의 포르노그래피 세계에서 아레티노가 차지하는 권위적 지위는 16개의 〈체위〉와 그에 따른 소네트들의 악명 그리고 작품의 희귀성에 의한 것인 반면, 당대에 그가 얻은 명성은 자신과 친밀한 관계에 있던 궁정인과 인문주의자들의 관행을 폭로하고 그들을 배신하려는 욕망의 결과였다. --- p.132

《소녀들의 학교》의 유포나 금지에 관련되었던 모든 사람은 이 책을 “세상의 빛을 보거나 보게 될 가장 불법적인 작품들”에 속하는 것으로 집요하게 승격시켜왔다. 많은 사람은 《소녀들의 학교》가 소위 철학 서적 분야에서 특히나 프랑스적인 전통을 개시했다고 믿고 싶어 했다. 이 철학 서적이라는 것은 로버트 단턴이 일련의 매혹적인 연구를 통해 되짚은 바 있다. 그는 18세기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중 불온서적은 모두 ‘철학 서적’으로 분류된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분류된 책들은 별도의 카탈로그를 통해 광고되었고, 은밀한 관행에 의해 주문되었으며, 다른 일반서의 내지 사이에 숨겨져 프랑스로 몰래 운반되었다. 현대의 분류 기준을 적용하면, 이 철학 서적에 포함된 책들은 정치, 포르노그래피, 철학이라는 3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단턴은 계몽시대에 이 3개의 범주에 속한 작품들 사이에서 구축되고 유지된 상업적 유대관계를 단서로 삼아 핵심적인 질문을 되풀이한다. 그 핵심적인 질문이란, ‘모든 불법 저술과 계몽운동의 절정인 정치적 폭발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프랑스인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봉기할 수 있었던 까닭을 철학 서적이라는 범주를 통해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 pp.148-149

이렇게 정치와 성이 잡다하게 뒤범벅되어 있었다는 것은 왕실 또는 궁정의 성생활 이야기가 별도 범주로 분리되지 않은 채 정치적 담론의 일부를 차지했음을 보여준다. 왕의 육체, 그 힘과 약점, 건강 상태, 육체와 정치적 통일체의 관계에 대한 서사는 작가들에게 깊은 정치적 관심을 극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제공했다. --- p.180

주요한 유물론 포르노그래피 작가들과 일부 자연주의 포르노그래피 작가들이 새로이 만들어낸 대변자는 여성이었다. 포르노그래피의 자연철학적인 내용이 근본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이단적인 데카르트, 뉴턴 또는 홉스의 학설로 그 중심을 점진적으로 옮겨감에 따라 여성 화자와 여성의 육체는 독자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여성 화자들은 그들의 욕망이 육체를 이끌고 가듯 서술을 통해 텍스트를 이끌고 간다. 화자로서 그들이 지닌 힘은 성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텍스트의 능력에 있다. 이러한 텍스트의 능력은 이 문학 장르 자체에도 힘을 실어주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포르노그래피가 일부분으로 속해 있는 모든 새로운 소설문학에도 힘을 부여했을 것이다. 새로이 창조된 여성 화자는 감정을 자극하고 조종한다. 그녀는 확대된 문학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심지어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 p.208

매춘부는 자유사상 문학에 빈번히 등장하기 때문에 포르노그래피에서의 변화, 더 나아가 태도와 신념의 변화를 감지하게 해주는 뛰어난 도구다. 매춘부는 사회적 척도로 기능하며 구시대의 정치적 위계질서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매춘부는 자신의 고객들, 즉 구시대 귀족에서부터 신흥 부르주아까지 모두를 조롱할 수도 찬양할 수도 있다. 그녀는 사회 비평가일 수도 있고 자족하는 관찰자일 수도 있다. 그녀의 침실은 정치적 선동의 장소이거나, 아니면 단순한 성적 희롱의 장소일 수도 있다. 이와 동시에 매춘부는 여성에 대한 태도, 여성의 성생활,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매우 많은 것을 드러낸다. 포르노그래피 작가가 창녀를 희생자, 약탈자 그 어느 쪽으로 그리든 작품 속에서 그 시대의 성 정치학은 분명히 드러난다. --- p.272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이러한 ‘근대적’ 개념이 일찍이 채택된 까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에 언론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네덜란드공화국의 철학자와 정치 작가들은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서보다 확실히 더 많은 자유를 누렸고, 따라서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포르노그래피 같은 수단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다른 유럽 국가의 철학자나 정치 작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 p.352

혁명기의 포르노그래피가 새롭게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은 글과 함께 실린 판화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것들은 사드의 1795년작 《규방 철학》에 실린 뚜렷한 지식인 취향의 세밀 판화들에서부터, 수도승 같은 특정 집단 또는 정치계 인사들을 겨냥한 통속적이고 정치적 의도가 강한 판화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성은 혁명기에 포르노그래피가 하나의 장르로서 민주화되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앙시앵레짐기에 전적으로 상류계급 남성을 독자로 했던 자유사상 문학은 이제 부분적으로, 아니 어쩌면 지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장르가 된다. 혁명 지도층이 프랑스 국민의 모든 계층을 결집하고 싶어 했듯이, 정치적 포르노그래피 작가들도 모든 계층의 독자와 감상자가 자신의 작품을 소비해주기를 바랐다. --- pp.381-382

포르노그래피는 대체로 꾸준히 유물론적 사상을 기본으로 오랫동안 새로운 민주주의적 인간(때로는 남자, 때로는 남녀 모두를 의미하는)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최전선에 있어왔다. 그 연구는 새로운 인간의 육체적 작용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가 귀족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다른 모든 육체들과 갖는 유사성에 대한 것이었다. 또 물질적 육체에 의존한다고 설명되는 상상력의 작용에 대한 연구이기도 했다.

<b>검열의 대상 이전에 역사적 의미로 살펴본 포르노그래피 <br/>마침내 금서의 역역에서 해방된 “화끈거리고 음탕하지만, 교묘하고 날카로운 책들의 리스트”</b><br/><br/>현대 사회에서 포르노그래피는 검열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포르노그래피의 출현은 서양에서 근대성이 태동하는 순간과 맥을 같이함을 알 수 있다. 불온한 음란 서적이 급증하던 18세기 프랑스혁명이 발발했고, 이후 포르노그래피의 발달과 함께 자유사상, 계몽주의, 유물론 철학 등이 발전한다. <br/><br/>《포르노그래피의 발명》은 역사학자들과 문학이론가들을 주축으로 1500년에서 1800년대에 이르기까지 포르노그래피가 어떻게 변형되었고 그 당시 문화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서양의 근대성과 문화적 민주주의의 형성과 연결 지어 살펴본다. 이 책은 1991년 10월, 같은 제목을 주제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콘퍼런스에서 발표된 글들을 모은 것으로, 유럽의 근대사 및 문화사를 연구하는 명망 높은 9명의 교수가 참여하였다.<br/><br/><b>포르노그래피는 금기의 대상이 아니다</b><br/><br/>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라는 단어는 1857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처음 등장한다. 프랑스의 경우 그 시기가 좀더 빨라 《프랑스어 보전Tresor de la Langue Francaise》에 따르면 포르노그라프pornographe는 1769년 니콜라에듬 레스티프의 논문 《포르노를 쓰는 사람Le Pornographe》에서 ‘매춘에 관한 글’이라는 의미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금서 내지는 악서를 보관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지옥서가가 183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음란서가 비밀리에 유통되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1806년 파리에서 출판된 에티엔가브리엘 페뇨의 《불태우거나 금지하거나 검열해야 할 도서 사전Dictionnaire Critique, Litteraire et Bibliographique des Principaux Livres Condamnes au Feu, Supprimes ou Censures》은 음란하거나 비록 음란하지 않더라도 루소의 《에밀》처럼 기괴하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책들로 가득하다. <br/><br/>19세기 이전까지는 포르노그래피가 문학이나 시각적 표현으로서 독자적인 장르를 이루지 못했다. 포르노그래피를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성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포르노그래피는 18세기 중후반까지 거의 항상 다른 무엇의 부속물이었다. 주로 종교적·정치적 권위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16~17세기까지 귀족 출신에 자유사상을 지닌 엘리트 남성 독자층을 위해 쓰이던 포르노그래피는 18세기에 이르러 인쇄 문화의 발달로 독자층이 확대되었고, 이후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한층 더 탄력을 받아 마침내 하나의 자체적인 범주를 이루게 되었다. <br/><br/>그런데 이때의 포르노그래피가 출판물을 규제하려는 측과 출판 시장 양쪽 모두에 의해 만들어진 범주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종교·정치계에서 작품들을 검열하고 금지하려고 하는 욕구와, 이러한 책들을 쓰고 구매하려는 작가와 독자의 다른 한쪽의 욕구가 만나 포르노그래피라는 독립된 범주가 탄생한 것이다. 이 이중적인 ‘발명’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포르노그래피가 지닌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살펴볼 수 있다. <br/><br/><b>포르노그래피의 역사적·문학사적 의미</b><br/><br/>《포르노그래피의 발명》은 총 3개의 부에 머리말을 포함해 총 10개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포르노그래피의 정치적·문화적 의미〉는 포르노그래피의 역사 초창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의 의미를 각기 다른 관점에서 살피고 있고, 2부 〈포르노그래피의 철학적·형식적 특성〉은 포르노그래피에 담겨 있는 철학적 문학적 층위를 해석한다. 19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와 영국의 작품들이 포르노그래피 역사의 중심을 차지했지만, 전문가들 다수가 최초의 근대적 포르노그래피 작품으로 16세기에 등장한 이탈리아 작가 피에트로 아레티노의 작품을 꼽는다. 그의 산문《대화Ragionamenti》와 소네트 형식인 《음란한 소네트Sonetti Lussuriosi》가 17세기 포르노그래피 산문의 원형이 된 것이다. <br/><br/>《대화》에서 아레티노는 연장자인 경험 많은 여성과 그보다 어린 순진한 여성 사이의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대화라는 장치를 개발해냈다. 이러한 대화 형식은 250년 뒤 사드의 《규방 철학La Philosophie dans le Boudoir》에도 등장할 정도로 포르노그래피 작품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음란한 소네트》는 판화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에로틱한 판화들에 아레티노가 소네트를 덧붙인 것이었다. 판화 자체는 교황의 명령으로 공개가 금지된 상태였지만, 아레티노의 소네트에 의해 알려지면서 판화에 그려진 16가지 섹스 체위가 ‘아레티노 체위’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레티노의 베네치아 작업실에서 시작된 포르노그래피 창작의 열기는 곧 유럽 전역으로 퍼져 《방랑하는 창녀La Puttana Errante》를 시작으로 1650년대 말, 프랑스에서 《소녀들의 학교L’Ecole des Filles》와 《여성 아카데미L’Academie des Dames》가 출판되었다.<br/><br/>1부에 실린 세 편의 논문이 각각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포르노그래피 작품들과 그 의미를 살피고 있다면, 2부의 두 논문은 포르노그래피에 담긴 철학적, 문학적 함의에 집중한다. 특히 4장에서 신과학에서 유래한 철학적 유물론과 자연주의가 포르노그래피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마거릿 C. 제이콥은 유물론의 영향을 받은 포르노그래피 작품의 화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여성 화자들 또한 남성과 똑같이 성적인 욕망을 지니고, 더 나아가 감정을 자극하고 조종하며 능동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한 것이다. 1680년에 출간된 《여성 아카데미》의 프랑스 판본에는 사촌지간인 튈리와 옥타비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튈리는 곧 결혼할 예정인 순수한 옥타비를 유혹한다. 여성 동성애를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열정으로 묘사하며, 오히려 남자들 사이의 성교는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튈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욕망의 기원을 고전 철학을 비롯해 당대의 유물론에서 찾는다. 그녀는 기존의 생리학이 남성에게는 능동성을, 여성에게는 수동성을 부여한다고 비난하면서 당당하게 외친다. “나는 영혼의 실제 위치는 남녀의 고환에 있다고 생각해.” 유물론적 포르노그래피에서 여성이 여전히 사회적 희생자로서 열등한 위치에 있긴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참여자이자 감각세계의 안내자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br/><br/><b>프랑스대혁명과 포르노그래피의 관계</b> <br/><br/>2부가 포르노그래피의 이론적인 측면을 다뤘다면 3부〈포르노그래피를 보는 18세기의 관점들〉에 실린 네 편의 논문은 18세기 포르노그래피가 각국에서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졌는지 살펴본다. 6장은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하는 자유사상 창녀의 모습을, 7장은 영국 남성들의 자유사상을 다루는데 특히 남성들 사이의 동성애에 집중한다. 8장은 17~18세기 네덜란드공화국에서 포르노그래피와 정치가 지니는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있으며, 9장은 포르노그래피와 프랑스혁명 사이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br/><br/>특히 이 책을 엮은 린 헌트가 정리한 프랑스혁명과 포르노그래피의 관계는 눈여겨볼 만하다. 16세기 아레티노의 작품이 등장한 때부터 포르노그래피는 독립된 장르로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치적 비판과 연속선상에 있었다. 17~18세기에 걸쳐 독재자나 절대군주를 성적 방탕함과 관련짓는 경우가 많았고, 혁명이 시작된 1789년 이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궁정 주요 인물들을 공격하는 팸플릿들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귀족들은 발기부전인 데다 성병에 찌들고 주색잡기에 빠진 사람으로 묘사되었고, 어떤 책에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의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과 자신이 총애하는 폴리냑 공작부인과 난교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br/><br/>그러나 포르노그래피가 단순히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잉글랜드 내전 당시 왕당파 측에서 혁명정부를 비난하기 위해 포르노그래피 장치를 이용했다. 즉, 포르노그래피는 단순한 민주주의적 선전 전술이라기보다는 해당 지역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관점을 지닌 비판의 무기로 쓰였다. 이 때문에 “사적 소유가 가장 발달하고 도시적이며 교육받은 중산층이 많았던 네덜란드공화국”과 절대왕정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던 러시아에서는 포르노그래피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br/><br/>이렇듯 포르노그래피는 르네상스기 엘리트층에서 철학적·정치적 표현을 위한 매체로 사용되었고, 이후 인문주의,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프랑스혁명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를 띠며 다양한 독자층을 통해 발전해나갔다. 《포르노그래피의 발명》은 1500년대부터 1800년대에 이르기까지 포르노그래피의 이러한 변화상을 조명하면서 유럽 대륙에서 피어난 근대성의 흔적을 추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