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천은 연어의 모천. 이야기는1950년대 말의 강원도 양양군의 남대천에서 시작된다.
남대천에는 함경도에서 피난을 나온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그들의 제2의 고향이 된다. 속초의 아바이 마을 청호동을 비롯해서 남대천 변에는 북에서 나온 피난민 1세대가 자리잡는다. 그 환경의 가족 구성 속에는 계부, 계모, 배다르고 씨 다른 남매 형제 등 시대의 필연적 상처가 고스란히 들어앉는다.
그 사이 자녀들의 갈등이 생성, 가난과 방황과 저항과 야성으로 남대천을 무대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기질을 형성하게 된다. 배 단실과 임 인혜도 그런 아이다. 어려서부터 계모 밑에서 자란 단실의 기질은 다분히 반항적이고 대담하다. 또한 전쟁미망인의 딸로 실향민인 계부 밑에서 자란 인혜는 단실에게 영향을 받는다.
피난민 계모, 계부 밑에서 분노와 야생의 성과 사랑에의 동경 속에서 성장하는 두 여자(단실과 인숙)의 얘기가 이 소설의 골격이다. 이른바 아바이들의 그늘에서 그들에게 생활철학을 물려받은 건전한 2세들은 남대천에 정착하는 사람들과, 그곳을 떠나서 연어처럼 타지에서 성장하는 사람들 두 줄기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단실의 아버지는 향수병에 걸린 피난민으로 그 지독한 향수병을 달래는 수단으로 여인을 얻어 성을 통해서 카타르시스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밤낮으로 새로 얻은 아내와 성관계를 하면서 성장기의 딸 단실을 밖으로만 나돌게 만든다.
단실의 집에는 군식구처럼 드나드는 계모의 아들 강 성태는 명색만 남매인 단실이란 누이동생을 좋아하게 된다. 그는 성장하면서 집요하게 단실과의 접촉을 시도하다가 드디어는 성적 접촉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성태는 집을 나가고 돌아오지 않게 된다.
그 접촉이 단실에게 임신이란 굴레로 다가오게 된다.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 단실은 자기가 좋아하던 극장 간판을 그리는 청년, 강호에게 다시 몸을 던져 관계를 가진다.
단실은 두 번째 강호와의 성 접촉을 통해서 풋사랑의 애틋함을 깨닫게 되고, 그러나 점점 배가 불러오는 임신 징후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하게 된다.
분노와 광기의 성을 그대로 안고 남대천을 떠난 그녀는 어떻게 회귀할까…
인혜와 양미 역시 질곡의 사연과 사랑에의 갈증 끝에 세상 바다 가운데 몸을 던지지 않고는 못견딜 욕망과 애욕 속에 남대천을 떠난다.(이하 줄거리 생략)
그들 생의 한가운데는 연어의 본능처럼 순수하면서 투명하고 처절하면서 장엄한 영혼의 노래와 분노의 에로티시즘과 작가의 광기와도 같은 예술혼이 어우러지면서 무서운 본능을 몸부림으로 가누는 처절함이 숨 가쁘게 담긴다. 특히 인간의 좌절과 가난을 에로티시즘의 극치로 승화시키면서 가난과 야성의 성에 대한 분노와 본능의 잔인함을 시처럼 서술, 황량한 강바람을 타고 번져 나가는 본능의 몸부림과, 그 참혹하고 가련한 몸짓 속에서 인생의 삶과 죽음이 연어의 그것처럼 진지하고도 숙연하다.
과연 야생의 性과 광풍의 애증(愛憎)은 어디로 회귀하는가
계부 계모로 구성된 가정, 배다르고 씨다른 형제 남매가 한지붕 아래 몸을 부대끼며 살아야만 했던 60년대 남대천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비화. 거기서 형성되는 성과 본능, 사랑의 상처는 한국판 페이톤 플레이스이다!
--- 박이도(경희대 국문과 교수)
잔인한 성 본능 속에 물굽이 되어 흐르는 가정사와 모정·부정이 눈물로 흐른다. 오빠의 아기와 혼혈아를 낳은 단실, 그 둘을 함께 기르고 끝내 자신과 똑같은 운명의 길로 떠나는 딸을 보내고 차라리 잔혹한 회귀본능에 생명을 맡긴 그녀. 나는 울었다. 그녀의 갈림길에서 나는 우리의 어제를 보았다
--- 장미희(명지대 교수·연기인)
가난에 대한 분노와 본능의 잔인함을 서술한 솜씨가 놀랍다. 생성과 소멸의 인간사를 펼쳐 놓은 이 소설은 바로 '나'의 성장 진통이다.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제 죽음까지도 채워 넣는 양미가 '남'이 될 수 없듯
--- 박석준(한국방송 작가상 수상)
멀티미디어 하이퍼텍스트 시대에 강하게 저항하는 인간 냄새가 독자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끌어당긴다. 산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 중 아버지를 택할 수밖에 없던 인혜, 그 애증의 심연에 '내'가 떠있는 건 아닐까
--- 유한근(문학평론가· ADU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