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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 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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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70g | 133*195*6mm
ISBN13 9788997581948
ISBN10 89975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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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좀 보아라
봄은 올해도 아랫마을
청보리밭 뒤흔들고 온다
보드라운 모반의 몸짓

얼음 아직 풀리지 않아
바람은 갈피 잡지 못하고
먼지 자욱한 보릿고개 너머로
미처 죽지 못한 것들
미친 듯이 머리 풀고 분다

때때로 돌개바람 스치는 시내
마른 갈대 숲 소스라칠 때
긴긴 겨울 참 오래도 참았나
참마자 각시붕어 무리 지어
오도 방정 팔도 떼 방정을 떨어
봄볕 찬물 속 비늘 가득 반짝인다

봉기하는 봄이다
강가 버들가지마다 물오르듯
우리 보살 보리암에도 단물이 올라
축 처진 반야봉도 봉긋 솟고
두 볼 둔덕에 복사꽃도 활짝 피어
자다가도 자네 벌떡 일어날 봄
그래 여기 봄이 왔단 말이다.
--- p.12-13

우포 주막

습지는 사철 살아 있는 것들 사랑받아 늘 흥건하다. 내가 우포를 자주 찾는 까닭은 널배 위에 엎드려 가시연잎 사이로 종일 미끄러지고 싶기 때문이다.
손등에 개구리밥 달라붙으면 마른 눈시울 쉬이 젖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저릿한 고니 떼 장엄한 추풍낙엽 반주에 맞추어 유영할 때 무심한 검독수리 물끄러미 먼눈팔고 있을 뿐이다.
내 고향 가락국 옛 터전에는 날개 죽지 상한 날짐승 여럿 보인다. 왜가리 고라니 너구리 흑두루미 두루 동무 삼아 묵은해를 보내는 자리, 산란 끊긴 노계 한 마리 볶아 놓고 거나해지면 황새목으로 새 타령 한 가락 길게 뽑는다.
동무들이 손뼉 치며 밍고니 살아 있네 하면 할매! 아재! 여기 털 뽑고 보지 사바하! 내지른다. 문득 물 먹은 상고니 성 생각도 난다.
--- p.95

두레

내 어머니 베틀 밑에서
지름대 갖고 놀던 작은 방
혼자 놀다 곤히 잠들면
어머니는 두레를 나갔다.

동네 어머니들은 삼을 키워
금줄 두른 수백 살 느티나무 옆
참새미 개울가에 걸어놓은 큰 삼 솥에
집집이 돌아가며 삼을 삶을 때
우리 고이 벗은 것들은
껍질 벗긴 제릅대로 제웅을 만들거나
총싸움 칼싸움도 벌였다.

그 시절 미국군은 멀리 떨어져 있어
마을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대마초 따위 알지 못했다.
(중략)
짧은 여름밤 모깃불 자욱이 피워놓은 마당에
두런두런 동네 이웃 질고 마른 이야기 두루 나누며
달그림자가 기어들 때까지
두레를 했다.

사람들 모여 사는 동네가 거기 있었다
새벽 종 새 아침 새마을이 오기 전에는.
--- p.7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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