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기반경제’란 ‘지식 집약 활동’에 기초해 주로 각국에서 이루어지는 재화와 서비스 생산 활동 부문을 지칭한다. (중략) 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은 완만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식기반경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현상을 통해 형성되어왔다. 그 하나는 지식(교육, 훈련, 연구 개발, 정보 및 경제적 조정)의 생산과 전달에 투입되는 자원이 장기적으로 증대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적으로 중대한 사건인 정보통신 신기술이 출현한 것이다. _8~11쪽
지식은 그 소비 측면에서 볼 때 비경합성을 갖는 재화다(Romer, 1993). 샌드위치나 신발과는 정반대로 지식은 아무리 사용해도 손상되지 않는다. 지식은 한 사람이 무한히 반복해서 사용할 수도 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용해도 본래 실체에는 어떠한 변화도 야기되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추가 사용할 때마다 사본을 추가로 생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추가 사용 비용도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통상적인 상품의 경우처럼-옮긴이) 한계비용곡선이 원점에서 볼 때 볼록한 형태를 띠지 않으며 사용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한계비용이 무한히 감소하는 극단적인 형태가 나타난다. _28쪽
선진국들은 선조들과 차별화된 20세기 남녀의 새로운 특징으로 글을 읽는 능력을 언급한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20세기는 ‘위대한 학습’의 시대다. 프랑스 경제발전 사례를 다루었던 생 미셸(S. Michel, 2002)은 “지식 발전의 논리가 물적 축적의 논리를 능가하는” 경향이 존재해왔음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즉, 현장에서 노하우를 직접 전수하던 것에서 ‘지적 교육’을 통해 일반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지식 보전 방식이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어서 전 생애에 걸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계기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증대되면서 교육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또한 교육은 자유시간을 활용한 ‘교육·여가’라는 독특한 형태를 띠기도 한다. _43~44쪽
정보통신기술은 지식의 생산을 위한 일군의 도구로서 갈수록 그 위력이 강해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덕분에 제품 기획자와 납품회사, 고객 간에 창조적인 상호작용이 활성화되었다. 관계된 사람 누구나 바로 접근할 수 있고 무한정 수정이 가능한 가상 대상물이 창조되면서 집단 작업과 학습이 용이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다양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게 되어 실험 비용이 대폭 감소되었으며 산업의 실험 활동이 혁신되었다(Thomke, 2006). 더욱이 정보통신기술은 빅 데이터 처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그 자체로 지식의 진보를 위한 강력한 시스템이 되었다(자연과학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인문사회 및 경영학 영역에도 해당된다). _49쪽
지식경제의 중핵을 이루는 혁신은 기존 역량과 지식을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운 역량과 지식이 진전을 이루어야만 가능하다. 즉, 지식경제에서 학습은 끝이 없다. 어떤 기술을 소화하고 난 뒤 곧바로 다른 기술을 익혀야 한다. 변화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누구든 당장 획득한 지식에 마냥 안주해 있을 수만은 없다(Enos, 1996). 따라서 특정 기술 능력만 갖추는 것보다 범용적인 학습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_63쪽
전통적으로 지식은 중대한 암묵적 차원을 띤다. 이 말은 지식이 ‘습득’, 즉 재생산에 비용이 많이 드는 활동이며 심지어는 그 재생산 자체가 어려울 수 있는 활동임을 의미한다. 폴라니(Polanyi, 1966)는 이에 대해 “우리는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암묵적 지식은 그 보유자의 행동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기는 어렵다. 게다가 보유자조차 자신이 그것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잘 알려져 있는 다음 사례를 한번 보자. 한 신문기자가 어느 럭비 선수에게 골을 넣기 위해서는 어떤 동작, 태도, 추론 등이 필요한지 물었다. 럭비 선수는 긴 설명을 끝낸 뒤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만약 당신이 두 개의 막대 사이로 정확하게 공을 보내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몸짓을 글로 옮기려고 한다면, 아예 그 작업을 끝내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마 끝내는 데 100만 년은 족히 걸릴 거예요.” 이것은 그 선수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동작이나 당시의 주의력을 설명하도록 하기 위해, 그가 동작 방식 하나하나를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도록 강요하는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_91~92쪽
코드화는 지식의 저장 및 전달을 용이하게 한다. 구디(Goody, 1977)는 코드화의 출현과 더불어 저장의 문제가 더 이상 지적 생활을 지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글로 적은 요리법이 시골에 계신 할머니의 빈자리를 부분적으로 채워준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부분적으로’라는 표현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코드화로 지식이 훼손될 수도 있고 지식의 코드화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록된 것 자체가 완전한 지식인 것은 아니다. 기록은 지식의 재생산을 도와주는 학습 프로그램일 뿐이다. 이 학습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완전해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지식이 재생산될 수 있는 경우(요리법, 기계 조작 매뉴얼 등)가 있는 반면, 테니스 학습 교본에 대해 앞서 지적한 것처럼 매뉴얼이 불충분하거나 거의 쓸모없는 경우도 있다. 이때 지식의 재생산은 주로 훈련, 연습 및 상황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루어진다. _96쪽
새롭고 ‘더 우월한’ 지식을 신속하게 대규모로 확산시키는 것은 지식 생산과 혁신 활동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기본 조건이다. 연구 과정의 측면에서 보면 이 조건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지식에 대한 신속한 가치 평가, 중복 연구의 감소, 연구 프로그램 간의 보완성 및 잠재적 파급효과가 보장된 영역이 확장된다(David and Foray, 1995). 또한 산업 부문 측면에서 지식의 확산은 최선의 기술이 최대한 빨리 채택되도록 만든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든 일국 차원에서든 열등한 기술의 사용에 집착하지 않고 더 빨리 신기술을 채택할수록 경제는 그만큼 더 빠르게 성장한다. 만약 한 기업이 최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다른 기업들이 그보다 덜 효율적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면, 모든 기업이 최선의 기술을 사용할 때보다 사정이 더 낫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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